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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태산은 품이 너르고 골이 깊은 산이다.
▲ 방태산 방태산은 품이 너르고 골이 깊은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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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7일, 방태산에 다녀왔습니다. 방태산은 바깥에 난이 일어나도 모를 만큼 외지고 격리된 곳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잘 포장된 도로가 방태산를 더 이상, 오지로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주억봉과 깃대봉 등 여러 봉우리와 긴 능선, 그 아래에 갈래진 여러 계곡들을 품은 방태산은 여전히 한국에서 손꼽히는 자연림입니다.

막 물들기 시작한 방태산의 단풍
▲ 방태산 내린천의 단풍 막 물들기 시작한 방태산의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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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린천 맑은 물에 몸을 투영하고 있는 온갖 활엽수들도 이제 서서히 홍엽과 황엽으로 옷을 바꿔 입고 있는 중입니다. 갖은 열매들은 타는 붉은색이거나 찬란한 황금색으로 가을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먼저 가락으로 신명을 돋운다
▲ 방태산 산신제 먼저 가락으로 신명을 돋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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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산이 붉은 기운을 띄는 이때쯤, 산삼을 캐는 심마니나 산약초를 캐는 산꾼, 산나물을 채취하는 아낙, 송이를 찾는 촌부 등 골 깊은 방태산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이 산의 후덕함에 감사하는 산신제를 올립니다. 인제군의 상남면 미산리 사람들입니다.

음력 3월 3일에 올리는 산신제는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이며, 9월 9일에 올리는 산신제는 그 베풀어준 풍요에 감사하는 의미입니다.

성지스님의 집전으로 산신제가 진행되었다.
▲ 방태산 산신제 성지스님의 집전으로 산신제가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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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음력 9월 9일(양력 10월 7일) 아침, 미산리 사람들은 전날, 정성스럽게 마련한 음식들을 미산리의 부처상이 있는 계곡의 향소(享所)로 옮긴 다음, 대금과 나팔의 가락으로 신명을 띄우고 성지스님의 기도로 정성을 바쳐 자연의 시혜에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소지를 올리며 소원을 빌었다.
▲ 비손 소지를 올리며 소원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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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함께했던 각 개인이 비손을 하고 소지(燒紙)를 올립니다.

이 제례의 마지막은 방태산신과 천지신명(天地神明)과 일월성신(日月聖神)께 올렸던 제수(祭需)로 음복하면서 동민간의 일체감을 다집니다.

방태산의 산신제는 무량사 주지이신 정암스님께서 앞장서서 마을 사람들을 돕습니다.

이번 방태산을 오가는 긴 시간동안 함께했던 소엽선생님과 야초스님과 더불어 가슴을 터놓는 긴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거지나 동냥아치가 돌아다니며 구걸하는 동냥이나 스님이 경문을 외면서 집집이 다니며 동냥하는 탁발(托鉢)은 매 한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배고픈 거지에게 한 끼의 값을 건네는 것이나 탁발승에게 보시(布施)를 하는 것이나 그 효험은 다름이 없습니다. 시혜를 받는 즉시 거지는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스님은 축원을 해주지요. 거지의 감사하는 마음이 스님의 축원인 셈입니다. 사람은 그 나눔의 대상을 거지나 스님이나 가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시혜의 효과는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부자에게 구걸을 하면 몸을 사립니다. 그들에게는 사회공헌이니 사회환원 같은 가다듬은 용어를 사용해야합니다. 부를 움켜쥐고 있기만 한다해서 지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도가 나거나 누군가가 사고를 내기도 하지요. 과거에 화려하게 부상했던 대기업들이 일대를 지탱하지 못하고 사라진 사례를 잘 알고 있습니다.

12대에 걸쳐 만석 재산을 누렸다는 경주 최부잣집의 가장 큰 비결은 나눔입니다. 소작료를 낮추어 만석이상으로 재산이 늘어나는 것을 막았고 흉년에는 논을 사지 않았습니다. 무명옷을 헤질 때까지 입고 보릿고개 때는 보리밥을 먹었습니다. 나눔의 실천을 거지와 스님으로 나눌 필요가 없지요. 나눔은 곧 상생입니다."

미산리의 부처바위에서 산신제가 진행된다.
▲ 방태산 산신제 미산리의 부처바위에서 산신제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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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의 성품이 솔직한 야초스님이 계속 말씀을 이었습니다.

"산신제에서 비손을 마친 두 분께 무엇을 소원했는지 물었습니다. 인천에서 오신 부인께서는 가족들의 연중무병을 기원했다했습니다. 일산에서 오신 한의사께서는 사업의 번창을 발원(發願)했다 했습니다. 그 원장님께 좀 더 솔직하게 말해 달라고 했지요. 그분은 농을 섞어 고쳐 말했습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아프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산신은 아마 이 이율배반의 기원에 어떻게 답해야할지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우리가 전혀 상반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행과 불행조차도 사실은 한 몸임을 방태산 산신은 말하고 있었습니다.

방태산을 뒤로하고 내린천을 돌아 나올 때 산신의 목소리가 귓전에 맴돌았습니다.

"방태산을 보아라. 산은 끝없이 포용하고 나눈다. 산삼과 송이, 약초와 산나물! 이 산이 가진 모든 것을 너희들에게 아낀 적이 있더냐? 이 산이 품은 나무들을 보아라. 다람쥐에게는 도토리 떨구는 것을 아낀 적이 있으며, 새들에게 노박덩굴의 빨간 씨앗과 작살나무의 보라색 열매 내놓는 것을 아낀 적이 있더냐?"

등나무의 붉은 옷을 입은 나무들
▲ 등나무 등나무의 붉은 옷을 입은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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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방태산, #내린천, #산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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