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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리 '모티프원'과 이웃한 ‘식물감각’의 마숙현선생님은 우리꽃뿐만 아니라 와인에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와인을 즐기는 와인애호가입니다.

태양이 헤이리의 중심언덕에 위치한 식물감각의 2층 레스토랑에서도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어둠이 깔리면 와인 생각이 간절해지는 때입니다.

간혹 손님이 머츰한 날이면 2층의 식물감각 테이블에 와인을 세팅하고 이웃을 청합니다. 저희 부부도 두어 번 마선생님 부부와 그 레스토랑을 밤늦도록 독차지한 적이 있습니다. 지난달에는 김기덕감독님과 자정이 훨씬 지난시간까지 가족과 가족에 있어서의 주부의 정체성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번에는 좀 더 이른 시각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마선생님의 후배인 더스텝 작가동 ‘다인하우스’의 신철호 선생님과 함께하는 자리였습니다.

계단에 진열된 와인병들이 마선생님의 와인 이력을 말해줍니다.
▲ 식물감각의 와인 계단에 진열된 와인병들이 마선생님의 와인 이력을 말해줍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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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갈하게 세팅된 테이블에 ‘1865’가 놓여 있었습니다.

산 페드로San Pedro 와이너리의 설립연도를 레이블로 달고 있는 칠레 와인입니다. 산 페드로는 칠레에서 가장 품격 높은 와이너리로 인정받고 있는 5대륙의 시장을 점령한 칠레와인 부동의 판매율 1위를 수성하고 있습니다. 지속적인 품질관리를 통해 프랑스에 와인을 역수출하고 있는 와이너리이지요.

정갈하게 세팅된 테이블에서 ‘1865’가 저를 맞았습니다.
▲ 식물감각 정갈하게 세팅된 테이블에서 ‘1865’가 저를 맞았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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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퍼들이 즐겨 마시는 와인입니다. 18홀을 65타에 치고자하는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면서……. 또한 18세부터 65세까지의 전 연령층이 모두 즐겨 마실 수 있다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와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도둑이 와인샵에 들어왔다가 1865를 그 빈티지로 알고 이 와인만을 몽땅 훔쳐갔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헛수고를 한 이 도둑은 아마 오래된 와인일수록 비쌀 것이라는 생각이었겠지요.”

입안에서 묵직한 중후함이 느껴졌습니다. 까베르네 쇼비뇽Cabernet Sauvignon의 향을 머금은 이 와인은 동급와인의 블라인드 테이스티에서 1위를 하기도 한 리저브급의 와인입니다.

테이블 중앙에 놓인 얇게 저며서 레어로 그릴된 안심 샐러드가 짙은 붉은 벽돌색의 클래식하고 우아한 느낌으로 충만한 이 풀 바디 와인Full Body Wine과 절묘하게 어울렸습니다.
장현숙선생님께서는 읽은 저녁시간이라 저녁식사를 했을 리 만무하다며 스타게티를 권했습니다.

“지난번에는 크림소스의 스파게티을 드셨으므로 이번에는 해물과 마늘, 올리브오일로만 요리한 해물스파게티를 주방장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신선하고 건강한 자연재료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몸에도 좋을 것입니다.”

갓 삶은 면과 갖은 해물이 듬뿍 올려진 봉골레비안코 스파게티는 쓴맛의 탄닌과 신맛의 무게와 단맛의 부드러움이 적절하게 조화된 밸런스를 가진 이 와인과도 균형을 깨지 않았습니다.
칠레 산 페드로San Pedro 와이너리의 설립연도를 레이블로 달고 있는 ‘1865’
▲ 1865 칠레 산 페드로San Pedro 와이너리의 설립연도를 레이블로 달고 있는 ‘1865’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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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선생님께서는 지난해 북시티의 ‘노을’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동안 적지 않은 경제적 희생을 치르더라도 자신의 빈티지와인을 꼭 먹어 보고 싶어 하셨습니다.(*빈티지/와인을 만든 포도가 재배된었던 해. 불어로는 밀레짐이라고 한다)

지난 8월에 그 소원을 이루어셨다고 하셨습니다. 8명이 함께하는 와인클럽 동호인들과 시음회에서 각자의 빈티지와인을 준비하기로 약속했고 마선생님은 작년 12월에 신청하여 올해 7월에 100만원에 인도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샤토 라피트 로칠드Chateau Lafite Rothschild 1952였습니다. 프랑스 보르도 메독 지구에서 그랑 크뤼Grand Cru 등급을 받은 샤토는 61개입니다. 그 중에서 1등급 샤토는 단 5개 뿐입니다.

샤토 라피트 로칠드는 샤토 무통 로칠드Chateau Mouton Rothschild, 샤토 라투르Chateau Latour, 샤토 오 브리옹Chateau Haut Brion, 샤토 마고Chateau Margaux와 함께 특1등급 5대 샤토입니다. 라피트는 1등급 와인 중에서도 최고의 균형미를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마선생님은 아직도 자신의 빈티지를 개봉하던 때의 흥분을 잊지못해하셨습니다.

"한국에서는 값을 얼마로 매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희소성 때문이지요. 코르크를 따는 것부터가 어렵습니다. 그 세월 탓에 자칫 바스라져버리기 때문입니다. 낡은 라벨에서 그 시간의 가치를 읽을 수 있습니다. 와인은 오래되었다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상해버리지요. 수십 년의 장기가간의 보관이 가능한 것은 장인이 만든 좋은 와인만이 가능합니다. 또한 오래되었다고 맛이 더 월등한 것도 아닙니다. 저의 빈티지는 보르도지방에 기후가 좋지않았어요. 하지만 제 빈티지가 제게 준 그 복잡하고 미묘한 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와인의 라이프 사이클은 모두 다르지만 보르도의 고급와인은 15년, 레드와인은 5년, 보졸레 와인은 2-4년이 맛과 향이 절정일 때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월과 함께 맛이 퇴행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남편의 빈티지와 함께했던 사모님에게도 잊을 수 없었던 추억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 세월동안 변해왔을 맛을 역으로 추적했습니다. 5년 전의 맛, 10년 전의 맛, 20년
혹은 50년 전의 맛이 어떻게 변해왔을 것이라는 상상이 가능했습니다. 한 모금의 와인을 머금고 수십 가지의 맛을 음미한 것이지요."

마숙현 선생님의 빈티지인 샤토 라피트 로칠드Chateau Lafite Rothschild 1952
▲ 1952년도에 수확된 포도로 만든 샤토 라피트 로칠드 1952 마숙현 선생님의 빈티지인 샤토 라피트 로칠드Chateau Lafite Rothschild 1952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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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선생님은 지금 우리가 비운 1865는 두 번째 와인을 개봉하기위한 전초였음을 알렸습니다.와인셀러에서 나오는 마선생님의 손에 들려 진 것은 본 로마네(Vosne-Romanee)였습니다.

꼬뜨드늬 지방의 본 로마네는 부르고뉴Bourgogne(버건디Burgundy) 지방에서도 특히 유명한 마을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인 로마네꽁띠의 고향이지요. 아주 작은 마을이지만 철분과 석회석의 토양으로 인해 신이 점지한 최고의 와인산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깨가 높은 남성적 느낌의 병과는 달리 유연한 여성적 곡선을 가진 부르고뉴 병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습니다.

본 로마네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인 로마네꽁띠의 고향입니다. 아주 작은 마을이지만 철분과 석회석의 토양으로 인해 신이 점지한 최고의 와인산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 이날밤 수다의 동반자였던 본 로마네Vosne-Romanee 본 로마네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인 로마네꽁띠의 고향입니다. 아주 작은 마을이지만 철분과 석회석의 토양으로 인해 신이 점지한 최고의 와인산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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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베르네 소비뇽, 까베르네 프랑, 메를로같은 보르도Bordeaux와인은 오래 숙성되어야 맛이 나는 남성적이고 무게감 있는 강한 느낌이라면 아로마티컬 품종으로 유명한 피노누아, 화이트와인의 왕 샤도네이의 메카인 부르고뉴 와인은 까다롭고 변덕스러우며 섬세한 맛이지요. 기후에 따라 제품 생산이 절대적으로 좌우되는 까탈스러운 여성의 느낌입니다. 종류에 따라 여러 꽃향기를 즐길 수 있으므로 디켄딩이 중요합니다."

와인을 좋아하는 것은 서버가 코르크 마개를 열고 서브되어서 투명한 와인잔을 관통한 신비한 빛이 눈에 들어오고 오목한 잔입구로 모아진 향이 코끝에 닿은 후, 마침내 한 모금의 와인이 입안을 한바퀴 돌아 혀에 닿을 때까지의 그 설레임을 사랑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마선생님이 와인을 애인처럼 감싸 안고 테이블머리에 서계신 그 더딘 움직임은 저을 충분히 안달나게 했습니다.

와인은 코르크 마개가 따지고 자신에게 서빙될때까지의 그 기대감이 큰 몫을 합니다.
▲ 식물감각의 마숙현 선생님 와인은 코르크 마개가 따지고 자신에게 서빙될때까지의 그 기대감이 큰 몫을 합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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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깊은 계곡의 용소龍沼에 떨어지는 폭포수 소리를 내며 따라진 와인은 붉은 색을 머금었지만 투명했습니다.

저는 마선생님께서 서브해주신 이 와인에서 낙엽의 향기를 맡았습니다. 피노누아Pinot Noir의 그 까다로운 포도풍종만으로 만든 부르고뉴의 와인들. 부르고뉴의 넓지 않은 지역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 시골 마을에 2800개가 넘는 자부심 강한 포도밭이 있고 100개가 넘는 AOC(원산지명칭통제제도 Appellation d'Origine Contrle)가 있는 곳입니다.

“같은 마을에서 생산되어다고 모두 좋은 포도주가 될 수 있는 것을 아니지요. 포도는 토양이 절대적입니다. 좋은 토양과 생산자의 솜씨가 결합하면 폭발적인 효과를 내는 것이지요. 토양에도 다양한 변수가 존재합니다. 토질뿐만 아니라 기온과 바람, 햇빛을 받는 포도밭의 경사까지도 품질에 영향을 주는 요소입니다. 클로 부조Clos Vougeot라는 마을의 경우 약 50㏊의 면적에 83개의 도메인이 있습니다. 밭 한 뙈기에 80명의 생산자가 있기도 합니다. 고랑마다 주인이 다른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밭에서도 10만원짜리의 와인이 나올 수도, 1천만원짜리 와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생산자는 자연의 은총을 최고 혹은 최악의 와인으로 가르는 중간에 존재합니다.”

와인은 장인들의 장구한 세월의 제조경험이 녹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같은 밭에서 수확된 같은 품종의 와인이라도 천차만별의 등급이 매겨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와인에는 샤또의 유구한 솜씨로도 어쩔 수 없는 점이 있습니다. 신의 손길이 필요한 것이지요. 매년 날씨가 같을 수가 없습니다. 햇볕과 바람 그리고 강우는 신의 영역입니다. 와인이 땅에 뿌리를 뻗고 하늘을 배경으로 열매를 맺는 포도로 만들어지는 한 신과의 합작품입니다. 유구한 역사와 솜씨를 가진 샤또 장인의 도도함만으로는 될 수 없는 요소입니다.

마선생님께서는 디켄팅을 했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말했습니다.

와인은 설익은 사람의 품성까지 더욱 숙성되게 만드는 묘약입니다. 사람들은 한 잔의 포도주를 사이에 두고 추억을 얘기하고 희망을 얘기합니다. 회한을 말하기도하지만 주로는 사랑을 말합니다. 그 수많은 세상의 와인 리스트들처럼 각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와인의 향으로 감아 하나로 만드는 마법 같은 효능 말입니다.

얘기가 익고 와인잔에서 그 얘기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와인도 점점 더 공기와 마찰되어 숙성되어갑니다. 결국 디켄터로 순간숙성을 한 효험을 내므로 뒤로 갈수록 와인의 풍미는 더욱 감칠맛이 더해갔습니다.

마선생님께서는 이 아름다운 식물감각에서 간혹 와인에 대해 강의를 하기도 합니다. 이즘은 폭음을 즐기던 시절에서 와인과 함께 얘기를 즐기는 시대로 바뀌었고 각 기업에서 그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간혹 마선생님께 도움을 구하기도 합니다. 식물감각에서 정기적인 와인강좌를 가질 꿈도 가져봅니다.

본 로마네는 부르고뉴 와인으로  까다롭고 변덕스러우며 섬세한 맛이 특징입니다.
▲ 본 로마네Vosne-Romanee와 1865 본 로마네는 부르고뉴 와인으로 까다롭고 변덕스러우며 섬세한 맛이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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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선생님께서는 평생을 개포동에서 사시다가 양평의 중미산 중턱에서 6년을 사시던 추억을 말씀하셨습니다. 중미산의 숲에서 뿜어 나오던 피톤치드는 대처에서 얻은 마선생님가족의 모든 잔병들을 깨끗이 씻어주었습니다. 중미산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나무와 야생화를 누렸던 그 기억이 오늘의 식물감각을 이루게 했던 것입니다.

아직 헤이리는 우리가 꾼 꿈을 실현하는 과도기에 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저의 이웃들은 다양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식물감각도 갤러리 레스토랑의 그 고급함에 비해 그것을 즐기는 분들이 충분치 않습니다. 헤이리는 식사 한 끼를 위해 길을 나서기에는 대처와 먼 거리이기 때문입니다.

척박한 땅에서 자란 포도가 더 좋은 와인이 된다고 합니다. 그 메마르고 거친 토질이 포도의 뿌리를 더욱 깊고 넓게 뻗게 만들고 그 깊은 곳에서 다양한 영양분을 받아들인 포도가 명품 와인이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의 와인을 목줄기로 넘기면서 헤이리사람들은 스스로의 삶을 더 윤택한 명품으로 만들기 위해 척박한 곳을 택한 포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믈리에Sommelier의 가장 큰 역할은 모든 사람들에게 와인으로 소소한 일상의 행복과 즐거움을 일깨워주는 역할일 것입니다.
▲ 소믈리에 소믈리에Sommelier의 가장 큰 역할은 모든 사람들에게 와인으로 소소한 일상의 행복과 즐거움을 일깨워주는 역할일 것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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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은 사람을 수다스럽게 하나봅니다. 저희들의 수다에 밤이 깊어지는 줄도 몰랐습니다. 마지막으로 들린 정두홍무술감독님께서 자리를 뜨고 저희들도 식물감각을 나왔습니다. 신철호선생님께서 하늘을 올려다보시며 별자리 얘기를 하셨습니다.

“아마 저 희미한 구름 같은 작은 흔적이 플레이아데스 성단일겁니다. 헤이리에서는 도시의 불빛이 미치지 못함으로 맨눈으로도 국자모양을 한 6개의 별과 그 성단의 반사성운을 어림잡을 수 있습니다.”

도시의 전깃불대신 별빛이 내 어께에 내려앉는 헤이리가 참 다행이다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모티프원'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motif_1 )에 업로드 되었습니다.



태그:#와인, #빈티지와인, #헤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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