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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증시가 21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한 8일 오후, 도쿄 증권거래소앞을 지나는 행인들이 증권 시세표를 쳐다보고 있다.
 일본 증시가 21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한 8일 오후, 도쿄 증권거래소앞을 지나는 행인들이 증권 시세표를 쳐다보고 있다.
ⓒ 연합=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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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미국발 금융위기 사태에 대해 미연방준비제도(FRB)의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은 "100년에 한번 올까 말까 한 위기"라고 고개를 숙였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으로 불거진 사태는, 프라임론의 연체율 상승으로도 연결되고 있어 손실은 더욱더 늘어날 것으로 보여진다.

문제는 원인을 알아야 메스라도 들이댈 수 있는데 손실액조차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 그런 새 환율시장과 주식시장은 붕괴되었고 신용경색으로 인한 기업도산, 금융기관의 국유화, 금리정책 등 기업·정부 할 것 없이 긴급 체제에 돌입했다.

10월 8일, 일본 닛케이225 평균지수도 9.38% 하락해 불패신화로 보였던 1만엔선이 붕괴되면서 9203.32엔으로 마감했다. 올들어 9월까지 도산한 상장기업수는 20개. 10월의 중간결산 이후 파산기업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경제평론가 모리타니 니키는 "전후 상장기업이 도산한 건수는 2002년 29개 기업이 최대였는데 올해는 벌써 20개다, 10월 중간결산을 넘기지 못할 기업이 50여개로 예상되고 있고 재작년 기준으로 충분히 은행권 대출을 받을 수 있었던 기업도 자산재조정을 하지 않는 이상 위험하다, 그러한 기업이 무려 100여개로 점쳐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고이즈미식 구조개혁의 브레인이었던 경제평론가 다나카 나오키는 이번 사태가 해결되는 데에 "전치 5년"은 걸릴 것이라고 진단하면서 근본적 패러다임 전환을 촉구했다.

 9일 닛케이평균지수(오후 3시 현재). 대폭락 했던 전날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9일 닛케이평균지수(오후 3시 현재). 대폭락 했던 전날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 박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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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 다로 일 총리는 고이즈미식 신자유주의 구조개혁과 결별을 선언하면서, 내각의 지원을 강화시킬 의향을 나타냈다.

8일 중소기업지원안이 대폭 강화된 보정예산안은 야당인 민주당, 국민신당의 전원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아소 총리는 "(내각 총해산을 하면) 이런 경제위기에 뭐하는 짓거리냐면서 국민들의 비판을 받을 것"이라며 10월 중으로 예상되던 총해산을 연기하겠다는 뜻을 명백히 했다.

이런 현실들을 죽 나열해 보면 일본도 상당히 위험해 보인다. 한국의 매스컴도 8일 대폭락한 닛케이 지수를 언급하며 전세계적인 경제위기에 일본도 휩쓸린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전치 5년 일본... 과연 그럴까?

10월 11일자 일본의 경제주간지 <주간 다이아몬드>에 의하면 파산한 리먼 브라더스의 유럽·중동·아시아태평양 부문을 공격적으로 매입한 노무라 홀딩스의 한 간부는 이번 금융위기를 "100년에 한번 올 찬스"로 표현했다고 한다.

모건 스탠리에 최대 90억달러를 출자하기로 최종 결정한 미츠비시 UFJ 파이낸셜 그룹의 수뇌진 역시 "갑자기 뻥 뚫린 고속도로에 나온 기분"이라며 격변하는 투자환경을 묘사했다. 물론 찬스가 도래했다는 의미다.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자는 미즈호 은행, 미쓰이 스미토모등도 있지만, 일본의 투자그룹들은 제철을 만난 듯 연일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10월 18일자 <닛케이 비즈니스>는 '불황에 공격적으로 나서는 견실한 기업들'을 권두 특집으로 내놓았다. 닛케이가 기업을 중심으로 했다면 <동양경제>는 '가계&투자 철저 가이드'로 개인을 타겟으로 삼았다. 세계의 흐름인 수세적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10월 18일자 주간 경제지 <닛케이 비즈니스>. 불황일수록 공격적으로 나가는 견실한 기업들을 다루고 있다.
 10월 18일자 주간 경제지 <닛케이 비즈니스>. 불황일수록 공격적으로 나가는 견실한 기업들을 다루고 있다.
ⓒ <닛케이 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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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뭘까?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번 금융위기에서 상대적으로 상처받지 않은 나라가 일본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

과거 그린스펀 의장은 "제로금리인데 저축하는 나라, 그리고 그 국민들이 이해가 안된다"는 말을 했다. 물론 일본을 겨냥한 말이다. 저축하지 말고 금융상품에 투자하라는 뜻이다.

실제 2006년 7월 일본은행에 의한 제로금리정책이 실시된 이후 '엔 캐리 트레이드'는 개인투자자들의 독무대이기도 했다. 국제외국환증거금거래(FX) 시장을 주름잡은 마담 와타나베(국제환율시장에서 활약하는 일본인 주부들을 통칭하는 표현)가 등장한 시기도 이때와 거의 일치한다.

투자자들은 세계적으로 봤을 때 절대적 저금리인 엔을 빌려, 고금리 국가에 매도하는 것으로 환차익을 노리거나 다른 나라의 주식, 채권등을 운용해 이익을 올린다. 경상수지의 흑자로 인해 엔고현상이 지속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반대로 엔약세로 돌아선 것도 외국에서의 엔화 매도, 즉 엔 캐리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이 엔 케리 자금이 2007년 이후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과 저금리 현상으로 속속들이 일본으로 복귀하고 있다. 토카이 도쿄 조사센터의 나가이는 8일 <닛케이 비즈니스 >와의 인터뷰에서 "엔 캐리 자금 회수는 최종 국면에 들어선 상황"이라고 보았다.

엔 캐리 자금이 들어오면서 10월 들어 엔고 현상이 나타났다. 100엔/1달러의 벽이 무너져 9일 현재 99엔/1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러한 엔고현상은 물론 수출을 중심으로 하는 일본기업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고 있다. 도요타 자동차는 하반기 영업이익을 당초 예상보다 40% 축소할 것이라고 한다. 내수시장과 해외 최대시장 북미에서의 판매저하가 가장 큰 이유지만 엔고현상도 한몫 차지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 8일자에 의하면, 도요타의 경우 달러당 1엔의 등락에 영업이익 300억엔 손실차가 발생한다고 한다. 히다치, 미츠비시, 소니등도 내년 3월 결산수지를 대폭 하향조정했다.

"엄살 부리고 있지만, 다들 안도하고 있을 것"

그러나, 기업취재를 10년 이상 해온 <니혼게이자이>의 전직기자인 H는 "오히려 잘 되었다, 언젠가는 이 엔저 현상으로 인한 버블이 빠졌어야 하는데, 세계적인 위기와 더불어 빠졌기 때문에 그렇게 손해를 본 것도 없다, 엄살 부리고 있지만 속으로는 다들 안도하고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오히려 지금같은 전세계적인 환란상태에서는 통화로서의 가치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한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닛케이지수의 대폭락에 대해서도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들은 적정가격선에 왔다고 분석한다. 적정가격선은 손해를 볼 가능성도 있지만, 자산 포트폴리오를 잘 구성해서 분산투자 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절대적 이익"을 가져 올 수 있다는 가격선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그 근거로 지금의 닛케이지수 등 각종 주식시장의 수치가 주가순자산배율(PBR, 혹은 P/B)에 거의 근접했다는 것을 들고 있다. PBR은 기업의 자산면에서 주가의 상태를 판단하는 지표를 의미하는 것으로, 현재의 주가를 1주당 순자산액으로 나누어서 나온 수치를 의미한다.

가령, 현재의 주가가 1만엔에 1주당 순자산액이 5천엔이라면 2가 나오는데, 이는 발행액의 2배의 가치를 지닌 주식이라는 의미다.  당연히 1에 근접할수록 순자산에 일치하게 된다. 속된 말로 바닥을 쳤다는 것이다.

신코증권의 수석애널리스트 세가와 쇼이치씨는 8일 <닛케이 머니&마켓>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도쿄증권소의 약 80%에 해당하는 상장기업이 PBR에 일치하거나 근접하고 있다"고 하면서 "상장기업의 평가가 보유자산액 이하로 내려간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라고 밝혔다.

일본에 '공황공포'는 없다... 노벨상 희소식까지

 11일자 주간 <다이아몬드>. 아시아 경제 특집에서 한국을 다루면서 외국자본의 "한국팔기"와 부동산 버블 붕괴"를 우려했다.
 11일자 주간 <다이아몬드>. 아시아 경제 특집에서 한국을 다루면서 외국자본의 "한국팔기"와 부동산 버블 붕괴"를 우려했다.
ⓒ 주간 <다이아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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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일본의 경기도 침체기임에는 확실하다. 뉴욕증시의 공포는 여전히 닛케이, 토픽스의 지수에 영향을 주고 있다. 다만 세계가 공포에 떨고 있는 금융대란, 공황공포 같은 분위기를 일본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TV와 신문·잡지 등 언론은 너나 할 것 없이 세계적 금융대란이 일본에 미치는 영향을 특집으로 내보면서 세계금융정세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가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역사상 처음인 노벨상 4명 동시 수상 소식이 사람들에게 활력을 불어넣고 있으며, 여야는 정치권의 힘싸움을 잠시 미루며 중소기업 지원에 나섰다.

환율시장이 요동치고 있는 한국은 과연 어떻게 될까? 11일자 <주간 다이아몬드>는 아시아 경제 특집란에서 한국을 따로 다루면서, 한국경제가 상당히 위험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지적하면서 "외국자본의 처절한 '한국 매도'가 지속되고 부동산 버블이 터지면 본격적인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경종을 울렸다.

그 본격적인 위기를 대비한 정책과 고난을 헤쳐나갈 각오가 있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을 시기가 온 것 같다.


#일본#닛케이#엔캐리트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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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부터 도쿄거주. 소설 <화이트리스트-파국의 날>, 에세이 <이렇게 살아도 돼>, <어른은 어떻게 돼?>, <일본여친에게 프러포즈 받다>를 썼고, <일본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를 번역했다. 최신작은 <쓴다는 것>. 현재 도쿄 테츠야공무점 대표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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