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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딸들 아침 잠이 많은 게 이렇게 미안한 일이 될 줄은 몰랐다. 아내가 구박해도 잠을 주체하지 못하는 내가 솔직히 좀 한심했다.
나와 딸들아침 잠이 많은 게 이렇게 미안한 일이 될 줄은 몰랐다. 아내가 구박해도 잠을 주체하지 못하는 내가 솔직히 좀 한심했다. ⓒ 주재일

 

"분유값이라도 벌어야지."

 

아이를 낳고 더 악착 같이 일하는 남자들이 농반 진반으로 하는 말이다. 분유 대신 기저귀가 등장할 때도 있다. 아버지가 되면 알 수 있다. 식구가 한명 늘어나는 게 어떤 책임감을 주는지.

 

결혼할 때와는 다른 결연한 의지를 품는다. 품을 수밖에 없다. 모든 게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아이와 함께 자고 함께 일어난다. 집안 배치도 달라진다. 저녁 시간도 아내와 오붓하게 지내거나 공부 따위를 하며 보내려는 생각은 사치다.

 

'그렇게 살게 되겠지'라고 대충은 짐작했다. 각오도 어느 정도 되어 있었다. 그래도 막상 육아휴직을 하니 나만의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 부족하다는 현실이 왜 그렇게 아쉬울까. 가끔이라지만 답답한 나머지 애먼 식구들에게 짜증도 냈다. 그러다가도 밤낮없이 젖을 주고 젖을 짜는 아내를 보면서, 내 수고를 한없이 작게 느꼈고 내 시간을 쓰고 싶어 안달했던 일을 후회했다.

 

직장 다니며 모유 수유한다는 것

 

아내는 직장을 다니면서도 첫째딸 별에게 2년 동안 젖을 먹였다. 이제 돌이 된 둘째 솔도 두 돌이 될 때까지는 젖을 먹일 생각이다. 참고로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모유 수유 기간이 2년이다. 엄마젖만 먹고 자란 우리 아이들은 '우량아'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토실토실하다. (집안 내력인지 모르겠지만….)

 

아이를 낳으면 젖을 먹이는 일이 당연하지 뭐 그러느냐 싶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우리 현실을 조금만 돌아보면 직장을 다니면서 아이에게 신이 준 최고의 음식인 엄마젖을 먹인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금방 알 수 있다.

 

직장 안에 젖을 짤 공간이 확보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흔하다. 젖을 짤 공간이 없어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짰다고 말한 친구도 있다. 젖짤 시간을 내기 위해서는 점심시간을 쪼개야 한다. 상사 눈치를 보다가 머뭇거리면 금세 젖이 가득 차 가슴이 돌덩이가 되고 만다. 그렇게 가슴 졸이며 젖을 짜면 편안한 마음으로 짤 때보다 훨씬 적게 나온다고 한다.

 

유축기와 냉장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고, 유축 부품을 소독하며 관리하는 일도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젖에서 나오는 지방으로 미끄러운 젖병과 깔때기는 쓸 때마다 씻고 삶아야 한다.

 

적지 않게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여유가 있어야 하고, 이런저런 주변 시선을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배짱도 필요하다. 그래서 직장에 다니는 많은 엄마가 모유 수유를 시도조차 않거나 조금 하다가 포기한다.

 

젖 짜는 건 피나는 노력

 

젖짜면서 책 읽는 아내 아내는 수시로 젖을 짜 냉동실에 보관했다. 그리고 젖이 부족한 이웃에게 나눠줬다.
젖짜면서 책 읽는 아내아내는 수시로 젖을 짜 냉동실에 보관했다. 그리고 젖이 부족한 이웃에게 나눠줬다. ⓒ 주재일

젖량이 많은 편인 아내는 분명히 좋은 조건을 타고났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아내는 그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노력했다. 아내가 젖 짜는 모습을 지켜보면 꼭 의무감에 사로잡힌 사람 같았다. 저게 엄마의 사랑일까 싶었다.

 

아이가 젖을 빠는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젖먹던 힘까지 다했다'는 말에 담긴 뜻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첫째 아이를 낳고 한 달 동안 아내 젖꼭지에는 피딱지가 앉아 있었다. 매일 두 시간 간격으로 20분 넘게 젖꼭지를 힘차게 빨아대는 아이 덕에 피딱지가 떨어졌다가 다시 앉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처녀 총각이라면 출산하는 고통만 힘들다고 생각하겠지만(고통을 보상하고 남을 환희가 출산 직후 찾아오는 것도 처녀 총각 시절에는 잘 모른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면서 찾아오는 유두 통증은 그보다 훨씬 아프다.(나도 간접 경험일 뿐이지만.)

 

아내가 젖몸살을 할 때는 죄인처럼 미안해졌고 아내가 안쓰러웠다. 멀쩡하던 가슴이 순식간에 돌덩이마냥 단단해지는 젖몸살을 지켜보며, 아내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그토록 신비로울 수 없었다.(신음하는 아내에게 이런 느낌을 차마 말하지 못했다.)

 

게다가 아내는 아이 요구에 맞춰 밤에 두세 시간 간격으로 일어나서 젖을 물렸다. '한 번 푹 자면 좋겠다'는 아내의 넋두리를 들으면 가슴이 저미지만, 애틋한 마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곯아 떨어지는 나라는 인간은 도대체 뭔가 싶었다. 둘째가 돌을 맞은 지금은 옛이야기 같지만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우리 집은 불이 꺼지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가 젖을 빠는 건 나은 편이다. 직장에 나갈 때를 대비해 젖을 모아두려고 유축기로 젖을 짤 때는 또 다른 고통이 찾아온다. 아이는 부드러운 혀로 젖꼭지를 감싸 압축 상태를 만든 다음 자기 호흡에 맞게 젖을 빤다. 그런데 이 유축기라는 놈은 전동 모터가 돌아가며 젖가슴에 댄 플라스틱 관에 공기 압력을 가해 젖을 뽑아낸다. 이 기계적인 작업을 수십번 반복하면, 겨우 아문 젖꼭지는 여지없이 다시 헐고만다.

 

그렇게 애면글면 짜냈는데, 간에 기별도 안 가는 5㏄·10㏄라니. 아내도 나도 기가 찼다. 들이는 공에 비해 너무도 초라한 결과를 얻더라도 유두가 유축기의 젖짜는 방식에 익숙해질 때까지 참아야 한다. 유축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그 고통을 참아가며 잠을 줄이고 유축 횟수를 늘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새벽을 깨우는 남편이 되기까지

 

출산 휴가 기간에 아내는 틈날 때마다 유축기로 달려가 젖을 짰다. 그리고 냉동실 한 칸에 차곡차곡 쌓았다. 모유 저장팩에 몇날 몇시에 젖을 짰는지 기록하는데, 그 기록을 살펴보면 편안한 낮에 짠 젖은 거의 없다. 낮에는 아이에게 젖을 주어야 하니 젖을 짜는 시간은 새벽 1시, 새벽 4시 30분, 새벽 5시 20분….

 

새벽에 아내가 젖을 짜는 사이 아이가 깨서 보챌 때가 있다. 이때 아이를 달래는 일은 내 몫이다. 젖짜는 동안 아이를 달래다가 전동모터가 멈추는 소리와 함께 아이를 아내에게 넘기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아침형 인간이 좋다고 세상이 아무리 떠들어도 콧방귀조차 뀌지 않았다. 평소 아내가 짜증내며 깨워도 되레 화를 내던 나였다.

 

밤늦도록 깨어 있다가 늦게 일어나는 게 몸에 밴 나에게 새벽에 잠깐 깨 아이를 보는 정도면 할 만큼 한 거로 생각했다. 그래도 아내와 딸을 두고 돌아누우면 조금은 미안했다. "어쩜 인간이 그러느냐"는 아내의 핀잔이 뒤통수를 때리면 죄책감을 느꼈다.

 

올해 들어서면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다시 잠들지 않고 육아 관련 책을 읽고 성서를 묵상했다. 물론 길게 가지는 않았지만. 아침 밥상을 차려놓고 아내와 큰딸을 깨운다. 내가 먼저 일어나 자기를 깨우는 게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아내 바람이었다. 아내가 입버릇처럼 말했건만 나는 결혼한 뒤 다섯 해가 지나도록 한 번도 아내의 작은 소원을 들어준 적 없었다.

 

일찍 일하러 가야 하는 날조차 알람 소리에 깬 아내가 나를 깨워야 겨우 일어났다. 그러던 내가 한동안 아이들을 재우면서 잠들었다가 새벽 다섯 시쯤 일어나니 아침부터 좋은 기운이 집안 가득 찼다. 부디 오래가기를 빌었지만, 어느 순간 나는 야밤형 인간으로 돌아가 있었다.

 

젖은 나눠먹으며 일용할 양식

 

우리는 젖을 짜서 꼭 필요한 분량만 남기고 모두 필요한 이웃에게 나누어 주었다. 첫째 아이 때는 젖을 짜서 젖이 부족한 아이에게 나눠줄 수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같은 마을에 사는 후배가 우리보다 석달 먼저 쌍둥이를 낳았다. 그 후배는 첫째 아이 때 젖이 모자라 분유를 먹였는데, 아이는 아토피가 심했다. 둘째 쌍둥이는 꼭 엄마젖을 먹이고 싶은데 젖이 많이 부족한 형편이었다.

 

아내는 둘째 아이에게 젖을 주면서 그 후배에게 젖을 주려고 시간이 날 때마다 다시 젖을 짜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루에 200㏄ 정도만 줄 수 있었다. 사람 몸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젖을 짜면 짤수록 많이 나왔다. 일주일쯤 지나자 400㏄, 또 며칠 지나자 600㏄, 그리고 한동안 800㏄를 주었다.

 

이 과정을 지켜보며 젖이 꼭 '만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약성서를 보면 하나님이 이집트에서 노예살이를 하던 히브리인들을 광야로 불러낸 장면이 나온다. 그때 사람들이 굶어 죽게 생겼다고 따지자 하나님이 만나라는 음식을 선물로 주었단다. 참 신기하게도 만나는 사람들이 욕심부려 쌓아두면 하룻밤 사이 썩어버렸다.

 

젖도 꼭 일용할 만큼 나온다. 보관하면 상온에서는 하루이틀을 넘기기 어렵다.(요즘엔 냉장고가 있어 냉동 보관하면 3개월까지도 쌓아둘 수 있지만.) 또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려고 더 짜면 조금씩 늘어난다. 우리 몸은 그렇게 생명의 요구에 민감하도록 지어졌다. 아이를 키우며 이렇게 하나님의 신비를 맛보면서도 내 생활이 없다고 투덜댔다니. 참 구원받기 어려운 남자 같으니라고.


#육아일기#모유수유#유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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