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부 기자가 사건 취재를 통해 민완 기자로 성장한다면, 정치부 기자는 선거 취재를 통해 성장한다. 그만큼 선거는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정치부 기자들에게도 중요한 성장 과정이다.
[1997년] '꾀'에 '꾀'를 거듭해 대선후보 초청- <시사저널> 대선후보 합동토론회필자는 97년 <시사저널>에 근무할 때 그 해 대통령선거를 기획취재한 적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였다.
<시사저널>은 여론주도층에서 정론지로 평가받는 매체였으나, 그 때만 해도 신문·방송이 대선보도를 주도하던 때였다. 대선 경쟁이 시작된 상황에서 텔레비전 방송3사와 조중동, <한겨레> 등이 합동토론회를 선점하는 바람에 후보들 시간을 맞추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당시 유력한 대선 후보는 김대중·이회창·이인제 3인이었는데 특히 이회창 후보측은 토론회 참석에도 미온적이었다.
그래서 꾀를 냈다. 유력한 시민사회단체와 공동 주최하면 이 후보 측도 거부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때나 지금이나 엄격한 선거법이 문제였다. 언론사가 아닌 시민사회단체는 합동토론회를 열 수 없다는 것이 선관위 유권해석이었다.
그래서 또 꾀를 냈다. 그렇게 해서 '시사저널·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주최 대선후보 초청 정책 간담회'를 개최할 수 있었다. 명칭을 '합동토론회'가 아닌 '정책간담회'로 붙인 것이다.
그러나 실제 내용은 합동토론회였다. 강문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가 사회를 봤고, 시사저널측에서 김훈 사회부장과 필자, 그리고 시민단체 측에서는 지금도 대북 식량지원에 앞장서고 있는 법륜 스님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 그 때는 물론 그 뒤로도 선관위나 검찰에서는 별다른 얘기가 없었다.
[2002년] 몸싸움까지 하며 참석 시도한 노무현 - <오마이뉴스> 대선후보 초청토론회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02년 초 필자는 처음에는 편집위원으로 <오마이뉴스>와 결합했다. 당시만 해도 신생 인터넷신문이던 <오마이뉴스>는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을 앞두고 인터넷으로 생중계하는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를 준비했다.
그런데 선관위가 태클을 걸었다. 인터넷신문은 현행법상 언론이 아니기 때문에 후보 초청토론회를 열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만약 이를 어기고 토론회를 개최하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하겠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오연호 대표와 간부들은 긴급대책회의를 했다. 결론은 "일단 개최하자"는 쪽이었다. 이미 현실에서 현직 대통령(김대중)까지 인터뷰하는 등 언론으로서 기능과 역할을 다하고 있는데, '법의 미비'로 언론이 아니기 때문에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를 열 수 없다는 것은 수긍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럼에도 '실정법 위반'을 걱정하는 후보들이 참석하지 않으면 토론회를 할 수가 없었다. 실제로 선관위 직원들이 회사 앞에서 진을 치고 막는 바람에 토론회는 두 번이나 무산되었다.
그런데 <오마이뉴스>로서는 운이 좋았다. 왜냐하면 당시 유력 후보였던 노무현·이인제·정동영·한화갑 후보 등과 일정을 상의해 날짜를 잡았는데 공교롭게 두 번 다 노 후보가 첫 번째 초청 후보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다른 후보가 첫 번째 초청 후보였다면 '실정법 위반'을 구실삼아 토론회에 나오려 시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노 후보는 선관위 직원들과 몸싸움을 하면서까지 두 번 다 참석을 시도했다. 오마이뉴스는 몸싸움 장면을 생중계함으로써 선거법이 얼마나 불합리한 것인지 네티즌들에게 각인시켰고, 노 후보는 네티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오마이뉴스와 노 후보 모두 상승 효과를 거둔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선이라는 '큰 장'이 섰는데 언론이 그 시장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꾀를 낸 것이 주간지 창간이었다. 주간 신문을 창간해 정기간행물 등록을 하면 정간법상 언론이고, 언론사는 대선후보 초청토론회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는 종이신문 <주간 오마이뉴스>를 창간했고 주간지 경험이 있는 필자가 편집장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곧장 소기의 목적대로 대선후보 초청토론회를 개최해 이를 생중계했다. <주간 오마이뉴스>는 대선후보 토론회를 개최하기 위해 만든 매체였기 때문이다. 물론 토론회의 형식상 주최자는 <주간 오마이뉴스>였다.
당시 민주당은 이른바 국민경선제를 채택했다. 오마이뉴스는 주말마다 벌어진 이 '정치드라마'를 현장 생중계함으로써 그 해의 히트상품으로 만드는 데 한몫 했다. 그 때 모든 '오마이뉴스 기자'는 '<주간 오마이뉴스> 기자'를 겸했다. 엄밀히 따지면, 전자는 '법외기자'였고 후자는 '합법기자'였다. 눈 가리고 아웅이었지만 선관위는 더는 토를 달지 않았다.
2007년 대선 때도 <오마이뉴스>는 대선후보 경선을 생중계했다. 그 사이 <오마이뉴스>는 <오마이TV>로 진보했다. 물론 대통합민주신당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경선도 모두 생중계했다. 경선 때만 해도 한나라당 대변인이던 나경원 의원은 <오마이TV> 생중계를 고마워했다.
[2008년] 신설조항 무시하며 가로막은 생중계 - <오마이TV>와 국회 문방위 국정감사
그리고 바로 어제(9일) <오마이뉴스> 생중계 허용 여부를 놓고 국정감사가 파행을 빚은 사단이 발생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고흥길 위원장)의 방송통신위원회 국감장에서 벌어진 그 사단을 얘기하기 위해 이처럼 개인의 경험을 예로 들어 '먼 길'을 돌아온 것이다.
이날 방통위 국감은 시작 전부터 언론계 안팎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이 정권의 핵심실세인 최시중 방통위원장, 최근 무더기 해고 사태를 빚으며 더욱 논란이 된 YTN 구본홍 사장과 노종면 노조위원장 등이 증인으로 출석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날 국감을 생중계 하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그래서 오마이뉴스는 출입기자들을 통해 고흥길 문방위원장에게 생중계 신청을 했다. 또 해당 상임위의 양당 간사인 나경원·전병헌 의원에게도 협조 요청을 했다.
그런데 문방위는 중계요청을 거부했다. 그 때문에 민주당 의원들이 거칠게 항의하면서 국감은 중단되었다.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한 일이 결과적으로 알권리를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했으니 유감스런 일이다.
신문기자 출신인 고흥길 위원장은 "국회의 의사에 대한 중계방송은 방송국만이 할 수 있다"는 규정(국회에서의 중계방송 등에 관한 규칙 제5조1항)을 들어 중계요청을 거부했다. 반면에 민주당측은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감사인 만큼 중계에 찬성했다.
문제는 나경원 간사였다. 상임위는 교섭단체 합의로 운영되는 만큼 간사인 나 의원이 찬성하면 해결될 수도 있었다. 나 의원은 "인터넷 매체가 생중계한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중계요청을 거절했다. 그러나 앞에서 든 사례에서처럼 전례는 사실 만들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핑계일 뿐, 실은 전례를 만들기 싫었던 것이다.
두 사람의 논리는 간단하다.
첫째,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국감장에서 나온 공식 발언을 인용하면 "인터넷 생중계는 국회 법규상 허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회의 의사에 대한 중계방송은 방송국만이 할 수 있다"는 국회에서의 중계방송 등에 관한 규칙(5조1항)에 근거한 것이다. 중계방송에 관한 이 국회규칙은 1992년에 제정한 것이다.
그러나 같은 규칙 제6조의 2에는 "의장 또는 위원장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국회의 의사를 인터넷 등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중계방송하게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정보통신망을 통한 중계방송'을 규정한 이 조항은 2000년에 신설된 것이다. 이 조항을 신설한 목적은 분명하다. 인터넷 등 뉴미디어의 발전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결국 16년 전에 만든 법규를 근거로 '방송국만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은 소극적 해석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8년 뒤인 2000년에 인터넷의 발전 등 시대변화를 반영해 '정보통신망을 통한 중계방송' 조항을 신설한 만큼 신설조항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법취지에도 맞는 것이다.
두 번째 논리는 "전례가 없다"는 것인데 이거야말로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오마이TV>는 지난해 9월부터 국회의 각종 회의를 생중계해왔다. 상임위는 물론 본회의까지도 인터넷 생중계한 적이 있다.
'중계방송의 대상'을 정한 국회규칙(제7조)에는 "중계방송은 본회의 및 위원회의 회의(공청회·청문회·국정감사와 국정조사를 포함한다)를 그 대상으로 한다"고 돼 있다. 국정감사라고 해서 특별히 예외는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모든 회의장의 질서유지를 위해 필요하다면 의장이나 상임위원장은 중계방송 인원을 제한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생중계를 신청한 곳은 <오마이뉴스> 뿐이었다. 그래서 규정이 그렇다느니, 전례가 없다느니 하는 논리는 궁색한 핑계일 뿐, 실은 문방위 국감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싫었거나 아니면 <오마이뉴스>에 생중계를 해주기가 싫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나경원 의원은 현장에 있던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웃으면서 "나도 생중계가 안 되는 줄 몰랐다, 당에서 일 있으면 다 협조해줬지 않느냐"라면서 "법이 그런 걸 어떻게 해, 다음에 고쳐서 해야지"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 사법부의 집시법 10조 위헌법률심판 제청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20년 전으로 돌리려 한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사실상 의사일정을 좌지우지하는 국회가 형해화된 법논리를 방패로 국민의 알권리를 봉쇄한 날, 사법부는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0조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법원이 야간집회 금지에 대해 위헌심판을 제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로써 야간집회 금지 조항은 1994년 헌재의 합헌 결정이 나온 지 14년 만에 다시 위헌 심사를 받게 됐다. 당시 이 아무개씨가 헌법소원을 냈지만 헌재 전원재판부는 "야간 옥외집회는 주간보다 공공의 질서를 침해할 개연성이 높다"는 이유 등을 들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형사7단독 박재영 판사는 9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기소된 안진걸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조직팀장이 신청한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받아들였다. 박 판사는 결정문에서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하고 사전허가제를 인정한 집시법 10조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지며 이들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헌법 21조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위헌적 조항"이라고 밝혔다.
야간 옥외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 허가만 인정한 집시법 10조는 집회의 자유라는 중요한 헌법적 자유권을 부정하는 대표적 독소조항으로 지목돼 왔다. 법원의 이번 결정은 촛불집회와 관련, 검찰과 경찰의 무리한 법집행에 제동을 걸고 법의 정당성과 타당성을 지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이런 노력이 있기에, 그래도 우리 사회에 희망은 있다고 보는 것이다. 헌재도 14년이 지난 만큼 한나라당이 독주하는 국회처럼 8년 전 신설조항은 애써 외면하고 16년 전에 만든 케케묵은 법조항만 붙들고 있을 것이 아니라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해 판단할 것으로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