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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8개월째인 현재, 과연 기업들은 사업하기 좋아졌고, 노동자들은 그 열매를 따먹고 있을까?

 

현실만 놓고 보면 기업들은 고유가와 원자재 가격 급등, 환율 불안 등으로 마른 수건도 다시 짜야 한다고 아우성이고,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은 비정규직법 개정 논의에서 확인되듯 점점 열악해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노동계층 가운데 가장 취약한 계층의 한 부분인 이주노동자들의 삶은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노동부도 대통령 따라 '사장님 프렌들리'

 

대통령의 친기업 정서를 반영한 듯 노동부는 지난 5월 20일 '노동규제개혁 세부추진계획'을 확정 발표하며, 노동관계법상 징역이나 벌금형 등의 형벌조항을 과태료 부과로 전환하였다.

 

한편 외국인력제도와 관련해서는 그동안 외국인력에게 관행적으로 지급해 왔던 숙식비를 공제하고, 영세업체들의 잦은 임금 체불과 퇴직금 미지급 문제 때문에 사업자들에게 '의무' 가입토록 한 체불임금 보증보험과 출국만기보험도 '임의' 가입으로 전환시키고, 최저임금 유예기간도 현행 3개월에서 더 늘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는 이주노동자들의 저임금 고용구조를 공고하게 하고, 이주노동자 고용업체에서 자주 발생하는 임금체불과 신분증 압류, 휴일근로 강요 같은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가 발생하더라도 처벌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실례로 경기 부천에서 근무하던 베트남인 쩐콩림과 반 푸는 20여일 넘게 노동부 고용지원센터를 통해 근무처 변경을 요청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아무런 도움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추석 다음날 만취한 고용주로부터 이유 없는 욕설과 주정을 견디다 못해, 고용지원센터를 방문했다.

 

이들은 여권과 외국인등록증을 업주가 5개월 넘게 압류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업주가 술에서 깨면 회사 복귀가 가능한지를 물었지만, 담당 직원은 "사장이 당신들을 안 받는다고 했다, 당신들은 이제 불법이다"는 말로 이들을 내쳤다.

 

한편 업체 대표는 "추석이 지나고 베트남 사람들이 일을 게을리 해서 나가라고 했다, 두 사람의 여권과 외국인등록증은 돌려줄 수 없고, 남은 급여도 줄 수 없다"고 언성을 높였다.

 

그러나 업체 대표가 이들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을 게으르다고 한 이유는, 노동자들이 추석 연휴 기간 동안 휴무를 요청했던 부분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은 데다, 연휴 이후 비오는 가운데 외부에서 일을 하다 보니, 일의 진척이 느려진 것을 두고 트집을 잡은 것이라는 게 노동자들의 주장이다.

 

놀라운 것은 위와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노동부 고용지원센터의 태도다.

 

여권 압류는 여권 또는 외국인등록증을 취업에 따른 계약 또는 채무이행의 확보수단으로 제공받거나, 그 제공을 강요하는 행위를 금지한 출입국관리법 33조 2의 1항과 근로기준법 6조 강제근로의 금지를 위반한 행위이다. 또 예고 없이 부당하게 해고한 사안인데도, '사측에서 여권과 외국인등록증을 돌려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 않겠느냐'며 수수방관만 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임금체불액 지난해 두 배

 

그 뿐 아니라, 지난 6월 23일엔 그간 실시해 왔던 '외국인 근로자 민원처리 지침' 중, '신고사건 조사결과 사업주 및 근로자가 출입국관리법 위반사실이 있더라도 체불임금 청산 등 노동관계법상 권리구제가 이루어진 이후 출입국사무소에 그 사실을 통보'하도록 한 조항을 폐지하였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단체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노동관계법 위반 사실에 대한 신고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는 '선 통보 후 구제' 조치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노동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되, 그 권리에 대한 주장은 출입국 외국인보호소에서 하라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노동부는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한 불법취업자라 하더라도 출국 전 체불임금 청산이 불가능한 경우를 대비한 통장계좌번호 확보, 근로감독관의 출입국관리사무소 출장상담 등의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며 시민단체의 지침 개정 요구를 묵살하고 있다.

 

한편 노동부의 발표와 달리, '외국인 근로자 민원처리지침' 폐지 이후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체불 임금 진정 해소에 대한 노동부의 의지가 상실되었음을 알게 해 주는 사건들이 속속 발생하고 있다.

 

베트남인 응우엔 티 닌(43)은 경기도 안성시 소재 모 업체에서 발생한 임금체불로 지난 7월 28일 관할 관서인 경인지방노동청 수원지청에 진정을 접수한 지 20여일 후인, 8월 20일 출입국에 단속되었다.

 

단속된 후 임금체불로 진정한 사실이 있음을 출입국에 전달하고, 출석요구를 한 노동부에는 단속으로 외국인보호소에 구인돼 있음을 알렸지만, 급여를 받지 못하고 결국 강제출국을 당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부의 발표 내용과 같은 통장계좌번호 확보, 근로감독관의 출입국관리사무소 출장상담 등의 조치들은 취해지지 않았다.

 

외국인 근로자 민원처리지침 폐지 이후 응우엔 티 닌처럼 진정을 하고, 출석 요구서를 받은 이들도 아무런 구제를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이 임금체불을 당하고도 진정 의사를 접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주노동자 임금 체불액 현황을 보면, 올해 8월 기준으로 작년의 세 배에 가까운 체불업체와 두 배가 넘는 체불금액이 발생했다.

 

노동부가 한나라당 강성천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07년 8월 802개 사업체, 1639명, 48억 6100만원에서 08년 2025곳, 3877명, 95억3300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와 같은 추세면 연말까지 작년 피해 인원의 세 배를 넘길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상황 속에서 지난 9월 25일 '대통령 자문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는 '비전문 외국인력 정책 개선방안'에서 고용주 편의를 위한 방안을 좀 더 구체화하였다. 이쯤 되면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치는 대통령에, 사장님 프렌들리로 호응하는 공무원, 그리고 갈수록 참담해지는 이주노동자 현실이라고 할 만하다.

 

실적주의에 매몰된 단속이 낳고 있는 부작용

 

대통령 후보 시절 외국인 지원 단체를 찾아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해 "기회가 되면 해법을 찾아보겠다"고 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3월 '불법체류자 단속 강화'를 지시했다.

 

대통령의 지시 이후 강화되던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 정책은 지난 9월 '대통령 자문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가 내놓은 '불법 체류자 감소 대책'을 통해 구체적인 청사진을 드러냈다. 향후 5년 이내에 국가가 제도권 내에서 관리 가능한 10% 이하로 감소시키고, 연말까지 '불법체류자' 수를 20만 명 선으로 감소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적주의에 매몰된 단속정책이 강화되면서 그 부작용이 가시화되고 있다. '대통령 자문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가 '불법 체류자 감소 대책'을 밝힌 다음날인 9월 26일 포천의 한 공장에서 단속된 미얀마 출신 이주노동자 따쏘에(Thar Soe Aye, 남, 39)씨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사건이 그 예이다.

 

따쏘에씨는 체포 당일 호송되던 중 가슴 통증을 호소했고, 인천공항출입국관리소에서 사실상 구금되어 적절하고도 신속한 조치를 받지 못해 이 같은 일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에 대해 법무부는 가혹행위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부검의의 소견을 통해 책임을 회피하고 사건을 급히 마무리하려 하고 있어 유족과 시민단체들로부터 반발을 사고 있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는 성명서를 통해 '단속 직후부터 인천공항의료센터에서 제대로 된 진단을 받기까지 약 7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응급환자를 거의 방치하다시피 한 점과 병원비 부담 때문에 고인이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는 법무부 측 주장에 대해 '법무부는 인권감수성 제로'를 스스로 선언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는 "법무부가 고인이 병원비 부담 때문에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는 주장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고인에게 전가하는 도덕적 불감증을 드러내고 있다. 법무부 주장대로라면, 교정시설에서 죽음 직전의 환자가 발생했을 경우에도 '당신 병원비 있어?'라고 물어보고, 진료를 해야 된다는 말과 같다. 기본적 인권에 대한 이해가 조금이나마 있었다면, 구차한 변명에 앞서 고인이 진료비가 없다고 병원에 가기를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진료를 신속하게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먼저 밝혔어야 한다"고 꼬집으며, 사망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고인에 대한 사죄를 촉구하고 있다.

 

또한 강제단속이 야기하는 극도의 폭력성과 위험성은 도외시한 채, 공무집행 과정에서 일어난 이 사건을 우연한 병사인양 처리하려는 법무부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해 유감을 표함과 동시에 단속과 추방 정책이 낳은 억울한 희생과 죽음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단속추방정책을 중단하고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마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다문화, 그 화려함 뒤에 가려진 이주노동자

 

"많이 나아졌죠?"

 

이주노동자 현실을 모르고 하는 질문이다. 산업연수제가 폐지되고 고용허가제가 시행되면서 정부와 정부로부터 위탁사업을 받는 시민단체들에 의해 계속적으로 유포된 소식 중 하나는, '외국인근로자도 노동권을 보장받는다'는 명제였다. 게다가 최근에 쏟아지는 다문화 정책들은 모든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 없는 세상이 다 만들어진 것 같은 환영을 갖게 하고 있어,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확한 실태를 왜곡하고 있다.

 

사실상 다문화 정책과 관련한 지원의 홍수 속에서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은 소외의 제도화와 차별의 고착화를 경험하고 있다. 특히 최근 논의되고 있는 정부 지원 대상 우선순위에는 언제나 결혼이주민만 있고 이주노동자, 특별히 '불법'이라 불리는 미등록이주노동자는 철저히 배제될 뿐만 아니라, 정부에 의해 주도적으로 제거돼야 하는 존재로 조장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모르는 이들은 응당 이주노동자들도 노동현장에서 내국인과 같은 대접을 받고, 다문화정책의 떡고물을 얻어먹겠지 생각하고 "요즘 많이 나아졌죠?"라고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지난 9월 말 모지역 다문화축제에 참석했던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노동자 꾸앗(30)은 "저보고 (한국 사람하고) 결혼했냐고 물어요? 여기 우리 오면 안 돼요? 꼭 무슨 액세서리가 된 느낌이에요, 구경꾼들의 눈요기를 위해 갖다놓은 물건 같은 느낌이에요"하고 하소연한다.

 

단기순환과 저임금이라는 구조적 노동 착취에만 골몰하여 결과적으로 20만명 이상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양산한 대한민국. 다문화 논의의 범람 속 우리 사회 이주노동자 현실을 짧게 요약하라면 '풍요 속의 빈곤' 그 자체요, 그 빈곤은 상대적 빈곤이라기보다 절대적 빈곤에 가까운 것이 현실이다.

덧붙이는 글 | 고기복 기자는 용인이주노동자쉼터 대표입니다.


태그:#이주노동자, #불법체류자, #다문화,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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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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