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지나고 보면 세상만사다 다 '다사다난' 했던 듯 싶어집니다. 너무 상투적이다 싶지만 올 여름이야 말로 그 어느 때보다 ‘다사다난’ 했다는 생각입니다. 교과서에도 매년 두어번은 한반도를 지나간다고 쓰인 '태풍'마저 빗겨간 참으로 이상한 여름이었습니다. 덕분에 기뻐해야 할 쌀 풍작이 농민들의 걱정거리가 되었다는 안타까운 뉴스도 들려옵니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제 지겨울 정도가 되었지만 올해는 그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여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입니다. 두려운 마음이 어느 때보다 컸지요. 이러다 '여름과 겨울' 두 계절만 남게 되는 건 아닌가 싶었으니까요.
다행히 정말 다행스럽게도 올해도 여지없이 가을이 시작되었습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계절을 따로 가리지 않은 부류들이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가을이야말로 산행엔 가장 적기가 아닐까요?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산의 아름다움이야 당연지사고, 기후 역시 산행에 가장 적당한 시기가 될테니까요.
성급한 판단으로 단풍나무 가지 끝이 조금만 붉게 물들어도 가을이 되었다고 호들갑을 떠는 이도, 적어도 단풍이 숲 중턱까지 물들어야 가을이라고 느긋한 판단을 내리는 이도 아마 가을을 무척이나 기다리는 이들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10월 들어 여기저기서 단풍소식이 떠들썩하게 들려옵니다. 산을 안 가고는 못배기는(?) 계절이 온 것입니다. 온 가족이 특히, 아이들에게 그 아름다운 자연의 변화가 총천연색 색감으로 드러나는 현장을 보여 주고 싶었는데 시험기간이라고 아이들이 따라오지 않습니다.
덕분에(?) 우리 부부는 오붓하게 산행길에 나섰습니다. 먼 데 유명한 산이 아니고 주변에 있는 가까운 산으로 갑니다. 뿌옇게 서린 아침 기운을 몰아내는 틈새로 조금씩 햇살이 비쳐 들고 있는 고요한 아침이었습니다. 언제 산행을 하냐에 따라 그 기분은 참 다르게 마련입니다. 아침에 산행을 나서는 일은 '걷기 명상' 이라는 이름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습니다.
복잡다난한 일상 속에서 우리에게 '명상'의 시간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가끔은 머리도 식혀야 다시 이성이 작동하기도 할 텐데 우린 너무도 뜨거워진 상태로 일상을 살아가지 않나, 하는 반성을 아침의 숲에서 해보게 됩니다.
숲의 공기는 차고 맑습니다. 우리의 이성 또한 그런 모습을 닮아야 하지 않을지요. 숨차게 계단을 오르고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한 무덤가를 지나쳐 다시 돌계단을 넘으면 산 속에 제법 너른 터가 나타납니다. '숲 속 체련장'이라는 이름을 달고 운동기구가 모여 있지요. 마치 운동기구를 마당처럼 거느리고 있는 ‘쉼터’가 보입니다.
쉼터 주변엔 아름드리 소나무가 보기 좋게 서 있구요. 평시엔 문을 닫았다가 공휴일에만 여는 쉼터는 아직 문이 닫혀 있는 상태입니다. 겨울이면 주변에서 가지친 참나무를 때는 화덕에서 나오는 연기가 보기 좋은 집입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천마산(경기도 남양주시)을 찾거든 쉼터에서 감자전을 먹어볼 것 같으면 막 갈아서 만든 감자전의 차진 맛이 오래 이 산을 기억하게 될 거라 장담합니다.
쉼터에서 산모퉁이를 돌아가는 길은 급경사입니다. 아침이라 등산객이 거의 없는 가운데 그 길에서 세 부자를 만났습니다. 초등생과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꼬마 둘이 아빠를 열심히 따라가네요. 손에는 스틱이 하나씩 들려 있지만 저 아이들에게도 급경사는 힘에 부치나 봅니다. 낑낑대며 힘겹게 오르는 모습이 여간 귀엽지 않습니다. 힘들다 내색 않고 아빠 뒤를 열심히 따르는 아이들의 모습 옆으로 참나무 한 그루가 연한 황금색을 띠고 있는 게 보입니다.
'아, 가을이구나' 나도 모르게 한마디가 튀어 나옵니다. 이미 한 뼘 정도는 높아진 하늘이, 이미 가을 들판을 수놓은 꽃들이 서운해 하겠지만 아무래도 진짜 가을은 '단풍'에 있다 싶습니다. 아빠를 따라 이른 아침 산을 오르는 아이들도, 연한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참나무도 저마다 나름대로 성숙해 가는 가을입니다.
그러나 진짜 가을은 산등성이를 넘어 능선길에 오르면서 만났습니다. 환한 아침 햇살에 다 드러난 능선길 양 옆으로 억새가 무성했고 억새 사이로 들국화가 만발합니다. 곡식이 익어가는 일도, 단풍이 들며 가을이 익어가는 일도 다 햇살과 관련이 있을 줄 압니다. 무작위로 쏟아지는 햇살에 고스란히 생살을 내놓은 채, 바람이 부는 대로 몸을 맡긴 채 거기 가을이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봄에 맛있는 나물을 제공해 주던 나물들이 하나둘 꽃으로 피어나는 시기가 바로 이맘때지요. 취나물 종류와 씀바귀며 고들빼기가 얼마나 이쁘게 꽃을 피우는지 아시는지요. 오물 조물 무친 나물맛 같은 산나물꽃들은 앙증맞기 이루 말할 데 없습니다.
꽃잎이 좀 더 크고 화려한 들국화에 눈길을 빼앗겨 잊고 있었던 산나물꽃이 오늘은 더욱 사랑스럽습니다. 물론 쑥부쟁이, 망초꽃, 구절초며 노란색의 산국과 감국 또한 어찌 미울 수 있겠는지요. 무성한 띠풀과 억새 사이로 저마다 해사한 얼굴 내밀어 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풍경은 참으로 '가을스러운' 풍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오페라 리골레토 중)던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노래가 맞았던 걸까요? 이번엔 불타오를 듯한 강렬한 단풍 앞에서 다시 한번 '진짜 가을'이라고 항변하는 나무를 만났으니까요. 붉나무 붉은 단풍입니다. 가을 숲에서 가장 강렬한 단풍나무는? '단풍나무 아니죠, 붉나무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장 강렬한 단풍잎의 영광은 붉나무에게 돌려야 할 것입니다. 그래 김용택 시인은 붉나무를 가리켜 ‘뿔나무'라 표현하며 붉나무의 붉은 단풍을 '미쳤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저 산에 저 뿔나무 미쳤네.미쳤어 저 혼자낮술에 취했는가 취해아슬아슬 저 산에 저 절벽 벼랑에벌겋게 벌겋게 저 혼자 미쳤어어떤 여자랑 차 타고 초가을 산, 그 어떤 산 지나가는데저 뿔나무 미쳤네 미쳤어. ' (김용택, '뿔나무' 전문)시 속에 표현된 대로 붉나무는 바위가 많은 능선쪽에 위태롭게 서 있기도 하고 바위 주변에 듬성 듬성 자라며 붉은 색감을 맘껏 뿜어내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단풍철이 되기 훨씬 전부터 붉나무는 저 홀로 붉게 물들어 숲을 훤하게 밝히곤 합니다.
붉나무 나뭇잎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보통의 나무와 조금 다른 모양을 보게 됩니다. 가지에서 가지런히 나뭇잎을 좌우로 내보내는 건(본잎) 다른 나뭇잎과 다를 게 없는데 나무잎과 나뭇잎 사이에도 작은 나뭇잎이(보조잎새) 양 옆으로 곡선을 그리며 나 있지요. 마치 양팔 벌린 나뭇잎을 두 손으로 받쳐주는 모양새입니다. 붉나무 잎새를 씹어 보면 짠 맛이 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옛날에 소금이 귀한 산골에선 붉나무 잎새를 소금 대용으로 썼다고도 하는군요.
붉나무 잎새를 받쳐주는 '보조잎새'는 그런 산골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아니었을까요? 조금이라도 더 많이 쓰라고 좌우로뿐만 아니라 가지란 가지를 다 덮을 듯 잎사귀를 만들어내지 않았을까요?
붉나무의 본잎과 보조잎새가 더욱 정겨워 보이는 이유입니다. 지금 그 붉나무가 시인이 발견한 대로 아슬아슬 벼랑길에 붉게 피었습니다. 붉나무 붉은 잎사귀로 해서 산은 지금 누가 뭐라 해도 진짜 가을입니다. 산 정상을 앞두고 가장 뾰족해서 그 이름도 '뾰족바위'인 바위 위에 서서 정상으로 향한 능선을 바라보니다. 뾰족바위 근처에도, 정상으로 연결해 주는 두 개의 산고개 벼랑에도 붉나무 붉은 잎새는 단연 눈에 띕니다. 나는 저 붉나무 붉은 표지석을 따라 정상을 향해 한 발 한 발 걸어 기쁘게 가을 속으로 떠나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일요일 (10월 5일) 에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