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최근 아버지를 이야기의 중심에 둔 작품이 많은 것은 익히 잘 회자된 사실이다. <에덴의 동쪽>, <타짜>, <일지매>, <바람의 화원>, <쩐의 전쟁> 등이 아버지의 부재를 극전개의 모티브로 삼았다면 <엄마가 뿔났다>의 후속극인 <내 사랑 금지옥엽>은 아예 세 명의 아버지를 중심 축에 두고 있다. 한편으로는 악녀, 팜므파탈에 대응하는 옴므파탈 즉, 나쁜 남자가 부각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 역시 '남자'라는 아이콘이다. 착한 남자, 완소남이 인기를 끌던 것과는 다른 트렌드다.

 

예컨대, 동방신기의 4집에 있는 '주문'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넌 나를 원해, 넌 내게 빠져, 넌 내게 미쳐, 헤어날 수 없어… 넌 나의 노예" 나르시시즘에 빠져서 오만하다. 잘난 체하는 것은 물론 자신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투의 노래도 있다.

 

"내가 바람 펴도 넌 절대 피지마… 가끔 내가 연락이 없고 술을 마셔도, 혹시 내가 다른 어떤 여자와 잠시 눈을 맞춰도 넌 나만 바라봐."

 

상반기에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태양의 '나만 바라봐'라는 노래의 일부다. 이렇게 말하는 자기중심적 편향의 남자들을 좋은 남자라고 부를 리 없을 것이다. 그나마 매력 없는 남성들이 이렇게들 말하면 아마도 여성들은 모두 보기 좋게 따귀를 날릴 것이다. 그만큼 자신 있다는 말쯤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차라리 그렇게 말하고 싶은 심리를 노래가 대변하고 있는지 모른다.

 

나쁜 남자를 좋아하는 심리 요인에는 솔직성이 있다. 인간은 욕망의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즉 나쁜 남자의 요건 중 하나는 솔직성이다. 이민우의 '남자를 믿지마'에서는 "결혼하기는 싫고 연애하기는 좋아. 이런 게 남자야. 나는 나쁜 놈이야"라고 자기 고백을 해버린다. 솔직성은 예측 가능성을 높여준다.

 

상대방에 대한 예측 가능성은 불확실성을 낮춰주는 것이다. 불확실성이나 예측가능성이 낮을수록 갈등은 증가하고 믿음은 저하되게 마련이다. 예측 가능성과 확실성은 통제가능성의 여지를 증가시켜 즐거움을 준다.

 

연예는 게임이라고 할 때 적절한 긴장은 흥미를 유발시킨다. 적어도 연애에서 밋밋한 관계는 게임과 같은 스릴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선호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들은 진정 나쁜 남자들이 아니게 된다.

 

나쁜 남자의 아이콘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이가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 김명민이다. 강마에는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대로 표현한다. 그는 할 말은 다 한다. "내가 저딴 쓰레기들을 데리고 공연을 해야 된다고! 바로 너 때문에!"라고 말하는 것은 약과다. 이런 말은 좀 세다.

 

"방금 들은 연주는 쓰레기입니다. 이건 뭐 도저히 참아줄 수가 없네요. 저는 더 이상 브람스를 이 따위 연주로 더럽힐 수 없습니다. 비싼 돈 주고 표 사서 들어오셨죠? 당장 주최 측 가서 환불 받으시고, 그 돈으로 브람스CD를 사서 들으세요. 집에 가서 샤워들 꼭 하시고, 특히 귀에 때를 빡빡 밀어주시기 바랍니다."

 

직설적으로 말하는 가운데 상대방의 자존감이나 명예는 생각하지 않는다. 예컨대 그가 한 이런 말을 되새기면 확실하다.

 

"니들은 내 악기야. 난 오케스트라라는 악기를 연주하는 거고 니들은 그 부속품이라구. 늙은 악기, 젊은 악기, 울며 뛰쳐나간 똥덩어리 악기, 회사 다니는 악기, 카바레 악기, 대드는 악기…. 아니, 니들은 그냥 개야. 난 주인이고. 그러니깐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짖으란 말야."

 

이러한 말을 하는 그가 '똥덩어리'라는 말을 달고 다니는 것이 그렇게 낯설지 않다. 그런데 심한 말을 하는 그에게서 오히려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이런 말이 대표적이다.

 

"이기적이 돼야 합니다. 여러분은 너무 착해요. 아니, 착한 게 아니라 바봅니다. 부모 때문에, 자식 때문에, 애 때문에, 희생했다? 착각입니다! 결국 여러분들 꼴이 이게 뭡니까? 하고 싶은 건 못하고, 생활은 어렵고, 주변 사람 누구누구들 때문에 희생했다. 피해의식만 생겼잖습니까! 이건 착한 것도, 바보인 것도 아니고, 비겁한 겁니다!"

 

그의 악행(?)이 가늠이 되지 않지만, 곧 나름대로 선의의 맥락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물론 할 말을 다하면 결핍의 존재인 인간의 세상에서 누군가 상처를 받기 마련이다. 그러나 상처를 받는 것을 두려워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여기는 듯싶은 강마에는 원칙을 강조하면서 실력으로 말하면서도 무엇인가 순수한 열정이 느껴진다.

 

오히려 실력 있는 이들에게는 한없이 편애한다. 실력 없는 이들에게는 가차 없이 냉혹한 인간이지만, 실력 있는 이들에게는 훌륭한 리더다. 강건우의 천재성을 확인한 뒤에 그는 "저런 재능을 갖고 여태껏 뭐한 거야! 저런 병신 같은 게…"라는 말까지 남긴다.

 

어떻게 보면 그의 논지는 '너 자신을 알라'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예술을 장식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비추어 보면 더욱 그렇다. 여기에서 클래식은 우리 사회의 장식적인 무엇인가 그럴듯한 것들을 모두 함축하고 있는지 모른다.

 

진정한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며, 그렇지 않으면서 장식적인 효과만 누리려는 행태에 가감 없이 독설을 날리는 강마에다. 그럴듯함 때문에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치명적인 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큰 소리만 치는 위선적인 독재형 리더가 아니다. 악기를 기본적으로 다룰 줄 알며, 어느 악기가 어떤 상태이며 어떤 소리가 어떻게 틀어져 있는지 까지 정확하게 집어내는 전문가 중에 전문가다. 흔히 지엽적인 것보다 큰 대강을 보아야 한다고 하지만 강마에 같은 지휘자는 나무도 보고 숲도 보면서 숲도 보고 나무도 동시에 보는 예안을 가졌다.

 

수많은 악기와 연주자들을 다양성과 통일성이라는 맥락에서 조화를 이루게 해야 한다. 다양성과 통일성은 21세기 세계화의 화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강마에는 자신의 이기성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이지만 끝까지 책임을 지는 리더 상을 보여준다. 그는 오케스트라 단원이 가짜라는 말을 듣고 확인하러 온 시장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 악장입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내 오케스트라 악장이고 내 단원들입니다! 함부로 무시하는 거 나 못 봐줍니다. 이 사람들을 무시할 권리는 오직 저한테만 있습니다."

 

자기의 이기적인 욕심만 채우고 자신의 조직 구성들을 팽개치는 리더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이 그를 절대 악인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다.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 리더가 조직을 발전시킬 수 있는 지는 알 수 없다. 자신을 속이는 리더는 결국 구성원에 대한 앙금이 남아있게 되고 갈수록 구성원을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한 태도는 거꾸로 리더에 대해 구성원이 신뢰하지 못하도록 하는 악순환에 몰아넣는 원인이 된다.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과 지향점을 밝힐수록 그것에 보조를 맞출 수 있다. 혹은 그것을 거부 혹은 수정, 타협하면서 일정한 목표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쁜 남자는 연애할 때만 좋다는 말이 있다. 물론 악녀나 나쁜 여자도 마찬가지다. 강마에가 실제로 조직 안에 현연해 있다면 초지일관 불편할 수 있겠다.

덧붙이는 글 | 다음 블로그에 올린 글.


태그:#강마에 , #베토벤 바이러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