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 위원님 질의하십시오."
국회 상임위원회 회의, 특히 국정감사장에서 가장 자주 듣게 되는 말로, 위원장이 각 위원들에게 발언권을 주면서 하는 말이다.
그러나 '정말 그 위원을 존경하는걸까'라는 의구심이 생기는 한편, 너무 자주 반복되는 말이기에 국정감사장 취재를 나올 때면 으레 '저 말 좀 다른 걸로 바꿀 수 없나?'라는 생각이 든다.
'아나운서 30년' 변웅전 보건복지가족위원장(자유선진당 · 충남 서산 태안)은 이번 국정감사에서 틀에 박힌 멘트에서 벗어나 새로운 회의진행을 선보이고 있다.
"다음은 율사 출신으로, 심평원(보험심사평가원) 등에서 의료행정 경험을 충분히 쌓으신 민주당 전혜숙 위원님 질의해 주십시오."
"한의사 출신으로 다년간 경험을 하고 계신 윤석용 위원님께서 질의하겠습니다."
"다음은 임두성 위원님입니다. 임 위원님은 대한민국 한센인들의 희망이십니다."
질의를 끝낸 위원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칭찬이 따라 붙기도 한다.
"최영희 위원님께서는 닭에 항생제를 과다 승인한 것을 날카롭게 지적해주셨습니다."
"충분히 준비하신 박근혜 의원님의 내실있는 질의였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증인과 위원 사이의 분위기가 고조된 상태에서도 변 위원장이 상임위원들을 바라보면서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이같은 발언을 하면 장내 분위기는 금방 정리된다.
실제로 복지위 국정감사는 대체로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고, 밤늦게까지 감사를 계속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아나운서 30년' 변 위원장의 노련한 진행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런 노련한 진행도 복지위 위원들이 변 위원장의 권위를 최대한 존중해 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특히 의사진행발언 신청에서 그런 부분이 엿보이는데, 변 위원장은 의사진행발언을 거의 다 인정해주지만 변 위원장이 '좀 있다가 하라'고 해서 막무가내로 자기 할 말을 하는 위원도 거의 없다.
"속도를 보면 분당 몇장 읽는지도 알아"
그러나 변 위원장의 노련한 진행이 위원들의 도전을 받은 때도 있다.
'어떤 위원에게는 시간을 더 많이 주고, 어떤 위원에게는 시간을 적게 준다'는 항의가 들어온 것. 이같은 항의는 지난 7일과 9일 감사에서 각각 있었는데, 이에 대해 변 위원장은 "본 변웅전 위원장, 진행만 30년입니다. 위원님들 말씀하시는 속도를 보면 1분에 원고를 몇 장 읽는지 정도는 그냥 압니다"라며 "말씀하시는 속도에 따라 시간을 더 주기도 하는 것"이라고 일축하기도 했다.
변 위원장의 진행에 대해서는 양당 간사들도 인정하고 있다. 특히 변 위원장이 회의를 정시에 시작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복지위 국정감사가 원활히 진행되는 큰 요인이었다는 것은 양당 간사가 공히 인정한 부분이다.
한나라당 간사인 안홍준 의원은 12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변 위원장의 진행으로) 복지위는 아주 가족적인 분위기로 잘 하고 있다"며 "여당 간사인 내가 양보를 많이 하지만 야당 간사인 백원우 간사도 협조를 잘하고 있다"고 평했다.
민주당 간사인 백원우 의원은 "일단 유일한 한나라당 소속 아닌 위원장이라 어느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는 모습이 명확하게 보인다"며 "(변 위원장의 진행으로) 회의는 빨리 끝나는데 질의하는 총량은 더 많아졌고 의원님들도 '할 것 다했다'고 하신다. 전반적으로 위원장님 회의 운영에 높은 점수를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 차관 증인 문제로 야당 퇴장하자 "명품위원회 만들려고 했는데"
노련한 진행으로 보건복지위원들에게 후한 점수를 받는 변 위원장도 회의 진행에 어려움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국정감사 둘째날인 지난 7일, 이봉화 보건복지가족부 차관의 '쌀 직불금' 편법신청 의혹과 관련, 민주당 위원들이 이 차관의 남편 등을 증인으로 신청했지만 여야 합의불발로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았던 상황.
민주당 의원들이 "증인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감사장을 떠나겠다"고 말하고 조용히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자 변 위원장의 표정은 금방 침울하게 변했다. 변 위원장은 "휴우~"하고 한숨을 내쉰 뒤 남아있는 한나라당과 비교섭단체 위원들과 국정감사를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곽정숙 민노당 의원과 정하균 친박연대 의원까지 퇴장하자 변 위원장은 정회를 선포한 뒤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잠시 뒤 변 위원장은 "그야말로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어느 위원회보다 격이 있는 명품 위원회를 만들려고 했는데 대단히 불행한 결과가 됐다"고 말하고 산회를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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