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몸은 무겁고 팔다리가 쑤시면서 정신은 혼미한 상태가 이어진다. 당연히, 병원을 찾아야겠지만 병원에서 치료할 병이 아니라는 이유로 집에서 버티고 있다. 가을향기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특히, 가을에만 걸리는 이름도 모를 몹쓸 병이라는 진단이다. 물론, 의사의 진단이 아니라 자가 진단이다. 푸른 가을하늘을 보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면서, 경쾌한 음악을 듣고, 신나게 달려야만 낫는다는 처방이 떨어졌다. 이것 역시도, 의사의 처방이 아니라 자가 처방임은 물론이다.
이름 모를 몹쓸 병을 치료하기 위해 무작정 집을 나와 차를 몰았다. 평소, 여행은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면서 공부한다는 나만의 여행철학을 가지고 있던 터라, 출발하기에 앞서 여행지에 대한 정보와 코스 등 여행계획을 꼼꼼히 세우는 편이라 자부했건만, 이날은 아무런 정보도 없이 떠났고, 한 시간이 지난 뒤에서야 겨우 목적지를 정할 수 있었다.
며칠 전, 티브이에서 홍탁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거제에서 나주까지 짧은 거리가 아니다. 모두들 가을맞이 하러 가는 걸까. 고속도로는 많은 차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앞 다투어 달린다. 집에서 230㎞를 달려 동광주 IC를 빠져나와 목포방향 1호선 국도를 달리다 보니, 드넓은 나주평야는 황금물결로 출렁이고 있다. 사전 정보도 계획도 없는 여행이었던지라, 시청에 들러 안내책자를 받고 홍어전문집을 찾아 나섰다.
영산교를 건너 좁은 도로로 접어드니 찐한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찌른다. 차창을 닫았는데도, 찐한 향이 코를 자극하고도 남는다. 때마침, 점심시간이라 자동차는 즐비하게 주차돼 있고, 다리 입구에는 ‘홍어의 거리’라는 관광지를 상징하는 갈색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갑작스레, 홍어에 대한 십수 년 전의 웃지 못 할 추억이 떠올랐다. 전라도 최고음식으로 호평 받으며, 잔칫상에 없어서는 안 될 홍어는 경상도 사람한테는 즐겨 먹는 음식이 아닌 시절이었다. 아는 형을 만나러 전라도 지역을 가게 되었고 음식을 시켰는데, 홍어 몇 점을 내 놓았다. 고깃살이 생가오리 같아 한 점을 덥석 집어 고추장에 찍어 먹었는데, 썩은 것 같은 역한 냄새에 씹지도 못하고 뱉어버리면서 큰 소리로 주인을 불렀다.
아줌마, 머시(무엇이) 이런 썩은 고기를 내 놓는교(주는가요)?
...
아이, 진짜 무슨 식당이 이렇게 상한 음식을 가지고 장사를 하능교(합니까)?
...
주인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대꾸도 하지 못하고, 큰소리로 항의하는 공격적인(?) 태도에 할 말을 잃었는지 멍한 모습으로 서 있었고, 형님은 옆에서 웃음을 참지 못하는 어색한 드라마가 한동안 연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느꼈고, 나중에서야 주인의 이야기를 듣고 홍어회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런데, 같이 동석했던 그 형님도 홍어라는 걸 알면서도 내게 말하지 않았고, 신경질 부리는 모습을 보고 즐겼다고 하니, 혼자서 잠시 동안 바보가 된 것은 시간 문제였던 셈이다. 그 당시 멋쩍었던 기억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홍어만 보면 기억이 떠올라 혼자 웃음을 삼키기도 하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깊이 새겨져 있다.
코끝을 찡하게 하고, 가끔은 눈물이 나올 정도로 냄새가 나는 홍어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러다 어떻게 홍어와의 친숙한 만남으로, 지금은 택배를 시켜 가면서까지도 먹는 홍어 마니아가 되었을까.
그 당시 거제도에는 홍어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은 한 군데도 없었다. 그런데 점심 때 자주 가는 식당이 있었다. 전라도 사람인 식당 주인은 맛보기로 손님들에게 홍어 몇 점을 내 놓곤 했다. 그때 한번 먹어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겨 한 점씩 먹어보았더니, 처음 맛보았을 때와 다른 느낌이었다. 두 번째 갈 때는 두 점, 세 번째 갈 때는 세 점씩, 식당을 찾을 때마다 차츰 먹는 양을 늘려 나갔고, 그렇게 몇 달이 지난 후 홍어의 진미를 알게 되었다. 지금은 홍어 홍보대사(?)로 활약할 만큼 홍어회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홍어의 거리에 있는 소박한 어느 식당에 들렀다. 3만원 하는 홍어회가 깔끔하고 맛깔스럽다. 김 한 조각에 돼지고기와 홍어 각 한 조각씩, 그리고 묵은지를 싸서 큰 입을 벌리고 한 점 넘기고 있는데, 푸짐한 주인아주머니와 서울에서 왔다는 손님의 인사말이 웃음을 더해준다.
어솨요.(어서 와요.)
어이서(어디서) 오기는 서울에서 왔제(왔지).
인사말로 알아듣지 못한 서울손님은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경상도 사람보다 더 무뚝뚝하게 인사를 받는다. 그래도 주인아주머니는 깔끔한 음식 맛처럼 더 깔끔하게 인사를 받아 기분이 좋다. 홍어 맛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고민이다. 지금도 그 맛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느낌이다.
식당 2층에서 바라보는 영산강은 호남 들녘을 휘감아 돌아 예로부터 풍요의 땅을 일구었던 소중한 자연자산이다. 삼한시대부터 조선조까지 호남내륙의 거점으로 전라도의 상징이었던 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그 중심에 있는 영산포는 1977년 영산강 하구둑이 건설되기 전까지 소금, 쌀, 홍어 등 물류의 중심지로 유명하였고, 지금도 그 당시 배가 정박하였던 자리에는 예전의 모습을 간직한 하얀 등대가 역사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다. 벽에는 당시 물건을 싣고 내리는 모습의 벽화가 그려져 있어 여행객의 관심을 끌고 있기도 하다.
멀리까지 왔는데 드라마 ‘주몽’의 촬영지를 둘러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시청에서 얻은 관광지도에는 삼한지 테마파크라고 안내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나주영상테마파크로 명칭을 변경한지라 약간의 혼선이 있었다.
BC 37년, 첫 민족국가 고구려 탄생의 역사를 재현해 놓은 곳. 2천년이란 긴 시간의 벽을 넘어 그 당시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성곽을 따라 돌면서 바라보는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 물줄기는 평화로웠고, 물길에 몸을 맡긴 황포돛대는 한 폭의 동양화보다도 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삼삼오오 다정스레 나들이를 즐기는 나주영상테마파크의 안마당은 고요하다. 2천 평의 실내 공간과 7미터 높이의 웅장한 스케일의 동부여성, 영산강 물줄기와 나주 들녘 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명당에 위치한 신단, 철이 절대유일의 힘을 상징하던 시절 철을 만들었던 철기제작소, 유럽영화 ‘트로이’에서나 볼 수 있는 성벽 밖 수로가 있고 올리고 내릴 수 있는 육중한 문을 가진 해자성문, 기와거리, 저잣거리, 초가거리 그리고 졸본부여성 등 역사적 고증을 거쳐 만든 세트장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둘러본다면, 잠시마나 고구려 시대로 돌아가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영산강의 옛 정취와 남도의 향수를 느끼고자 황포돛배 선착장에 이르렀다. 관광객이 많지 않은지라 두 척 중 한 척만 운행하였고, 배를 타려면 거의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안내원의 설명에 아쉽다는 생각뿐이다. 소리 없이 미끄러지듯 비단물결 따라 몸을 맡긴 황포돛배를 사진만 찍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다섯 시가 넘은 시간이라 집까지 가야 할 길이 멀었기 때문이니라.
풍요로운 것은 가을만이 아닐 것이다. 여행도 풍요로워야 하건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이 있던가. 빈 곳이 있어 그곳을 가득 채워 버린다면, 더 이상 채울 욕심이 없기에, 의욕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적당히 빈 곳을 비워두어야 다음을 기약하리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 조금 빈 내 마음은 신의 목소리를 가진 가수 이미자의 ‘황포돛배’를 들으며, 나의 애마인 자동차의 핸들이 부드러워졌음을 느꼈을 때 빈 마음도 조금 채워짐을 느꼈다.
황포돛배 - 노래 이미자 -마지막 석양빛을 기폭에 걸고흘러가는 저 배는 어디로 가느냐해풍아 비바람아 불지를 마라파도 소리 구슬프면 이 마음도 구슬퍼아~~~ 어디로 가는 배냐 어디로 가는 배냐황포~~~오 돛배야순풍에 돛을 달고 황혼 바람에떠나가는 저 사공 고향이 어디냐사공아 말해다오 떠나는 뱃길갈매기야 울지 마라 이마음도 서럽다아~~~ 어디로 가는 배냐 어디로 가는 배냐황포~~~오 돛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