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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선대와 해안 절경
 신선대와 해안 절경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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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먼저 옛날 신선들이 놀던 곳으로 안내 해야지.”

동생이 빙긋 웃으며 농담을 합니다. 고구마를 캔 다음날은 모처럼의 중노동에 피곤하여 늦잠을 자고 일어났지요. 아침 겸 이른 점심을 먹고 동생이 운전대를 잡으며 내게 은근히 기대를 갖게 해주는 말이었습니다. 전날 메마른 황토밭에서 고구마를 캐느라 너무 힘들었으니 오늘은 쉬면서 나를 위해 관광안내를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을 뒷동산 사이로 난 고갯길을 넘어서자 곧 해안도로가 이어집니다. 그런데 도로변의 가로수나 바닷가의 풍경은, 서울은 말할 것도 없고 육지의 어느 지역에서도 볼 수 없는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이 섬이 우리나라 땅 맞아? 남쪽 어느 나라에 온 것 같은 풍경이야!”
“경치가 너무 좋지요? 나무들도 많이 다르고, 이렇게 구경나오니까 너무 좋네요.”
“경치는 무슨? 난 별로 좋은 줄 모르겠는데. 바닷가 풍경 어디나 비슷한 것 아닌가?”

내가 동생 부부에게 농담을 했습니다. 그러자 제수씨가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러나 멋진 곳으로 관광안내를 하겠다는 동생은 경치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동생부부는 이 섬에서 1년에 2~3개월 이상씩을 머물렀지만 농사일을 돌보느라 구경할 겨를이 거의 없었답니다. 제수씨는 나를 핑계 삼아 하는 관광이 여간 즐거운 표정이 아니었지요.

“이곳이 함목 해변인데 경치가 괜찮은 편이지. 홍포 해수욕장에서 바라보는 일몰이 좋다는데 어쩔지 모르겠네? 난 아직 한 번도 못 봐서.”

그러나 여름도 아니고 홍포에 들를 필요 있겠느냐며 그냥 지나칩니다. 잠깐 달려 언덕에 올라서자 저 앞쪽 바닷가에 절경이 펼쳐졌습니다.

 멀리 바라보이는 다포도와 바다풍경
 멀리 바라보이는 다포도와 바다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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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변 대나무밭을 배경으로 흐드러진 코스모스
 해변 대나무밭을 배경으로 흐드러진 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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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염소들 옆에 차를 세워봐? 경치가 아주 멋질 것 같은데”

도로변에는 제법 넓은 풀밭이 펼쳐져 있었는데 검은 염소 두 마리가 풀을 뜯고 있었지요. 염소 녀석들은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경계도 하지 않고 느긋한 표정으로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풀밭 가장자리의 대나무들 때문에 시야가 가려 좋은 경치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금 앞으로 더 나아가 길가에 있는 음식점을 지나 아래쪽으로 내려가자 펜션 겸, 별장으로 쓰이는 두 채의 건물이 바닷가에 서 있었습니다. 별장으로 내려가는 길가에는 역시 가장자리의 대나무 숲을 배경으로 피어 있는 코스모스가 바닷바람에 한들거리는 모습이 아름다웠지요.

바닷가의 펜션들은 출입문이 모두 열려 있었습니다. 입구에 임대 예약을 할 수 있는 전화번호와 함께 자유롭게 구경하라는 안내문이 게시되어 있었지요. 대문 안으로 들어서 2층 테라스에 올라서자 활짝 열린 해안선과 바다가 그림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우와! 멋있네. 저 앞쪽의 절벽과 소나무가 서 있는 섬 같은 바위절벽이 신선대고 오른편 바다 가운데 떠 있는 작은 섬들 보이지? 저 섬이 다포도야.”

어느새 차를 세워놓고 뒤따라온 동생이 설명을 합니다. 경치에 별로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내가 집에서 나올 때 신선이 놀던 곳이라고 한 곳이 바로 저 신선대거든. 그런데 가까이에서 보는 것보다 이쪽에서 마주보는 경치가 더 멋있네?”

“가까이에서 바라보면 선명하긴 하지만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만 보게 되잖아? 그러나 멀리서 바라보면 어느 한 부분을 선명하게 볼 순 없지만 전체와 주변까지 함께 바라볼 수 있어서 더 아름다운 거지.”

 바닷가 어느 펜션 정원에 세워져 있는 대나무로 지은 사각초가정자
 바닷가 어느 펜션 정원에 세워져 있는 대나무로 지은 사각초가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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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못가의 돌거북과 돌알
 연못가의 돌거북과 돌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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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동생도 수긍을 합니다. 멀리서 바라보이는 멋진 풍경이 가까이 다가가 보면 오히려 그 멋진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체를 주변 풍경과 함께 바라볼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 그래서 작은 물체는 가까이 보아야 섬세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데. 저렇게 크고 웅장한 자연 경치는 이렇게 멀리서 보는 것이 더 아름답구나.”

동생은 새삼스럽게 신선대와 주변 경치가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며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이 길은 매실나무 밭으로 가는 길에 몇 번인가 지나쳤지만 별 관심 없이 지나쳤다고 합니다.

그래도 신선대는 너무 유명한 곳이어서 한 번인가 가까이 다가가 보았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경치만큼 멋있는 모습을 볼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바닷가의 펜션들은 가을철이어서 텅 비어 있었지만 꽃밭이며 정원이 특이한 모습이었습니다.

작은 연못가에는 빨갛게 꽃을 피운 이름 모를 예쁜 꽃과 함께 돌 거북 두 마리가 눈길을 잡아끕니다. 거북 옆에는 역시 하얗고 둥근 돌 몇 개가 놓여 있는 것이 거북알인 듯합니다. 연못을 가로지른 돌다리도 앙증스럽고 멋진 모습이었지요.

 작고 아름다운 바위섬
 작고 아름다운 바위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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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갯바위 낚시
 갯바위 낚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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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따로 떨어져 있었지만 정원이 맞닿아 있는 바로 옆에 있는 다른 펜션은 정원이 제법 넓었습니다. 이 정원에는 대나무로 지은 두 채의 사각 초가정자가 운치를 더해주고 있었습니다. 기다란 형태의 정원 양편에 커다란 항아리와 물두멍들을 진열해 놓은 모습도 예스럽고 멋진 모습이었지요.

정원 저 아래는 바닷가에 펼쳐진 드넓은 갯바위가 낚시꾼들의 좋은 낚시터가 되고 있었습니다. 몇 명의 낚시꾼들이 묵직한 바구니를 들고 돌아간 뒤에도 두 사람의 낚시꾼은 자리를 뜰 줄 모르고 있었습니다.

신선대 맞은편 바닷가에도 둥그런 바위섬 하나가 머리에 소나무들을 잔뜩 이고 서 있는 모습이 볼 만 했습니다. 신선대에서 다포도에 이르는 해안선의 멋진 풍경과 함께 막힘없이 확 트인 코발트 빛 바다는 답답했던 가슴을 시원하게 열어주었습니다.

바닷가 절벽 밑에 서 있는 기묘한 형상의 거대한 바위 신선대. 바위에 올라서면 누구나 신선이 된다고 했던가요. 그러나 그저 기분일 뿐이지 어찌 평범한 필부가 신선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신선대에 올라서니 신선은 아닐지라도 더러운 세상에서 멀어진 느낌에 가슴하다고 함께 오른 동생이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해봅니다.

신선대에서 내려와 해금강으로 향했습니다. 지나는 길 왼편에 바람의 언덕으로 가는 입구가 바라보였습니다. 해금강 주차장은 한산한 모습이었습니다. 요즘은 관광객이 가장 적은 계절이라고 합니다. 차를 세우고 해금강이 마주 바라보이는 호텔 앞마당으로 올라갔습니다.

 바닷가 꽃길
 바닷가 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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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은편 언덕에서 바라본 해근강
 맞은편 언덕에서 바라본 해근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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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였지요, 마당가에 서자 좁은 포구 건너 해금강이 가까워 보입니다. 하얀 바위절벽으로 감싸인 해금강은 잔잔한 물결 속에 묵직하게 자리 잡은 모습입니다. 섬 가운데가 잘록한 큰 바위 섬 몸체는 한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바다 속에서 넷으로 갈라져 4개의 절벽 사이로 십(十)자형 벽간수로가 뚫려 있다고 합니다.

좁은 해협과 바로 곁에 이어져 있는 듯 보이는 이 작은 섬에 뚫려 있는 이 수로는 북쪽과 동쪽, 남쪽에서는 배가 드나들 수 있어 절벽마다 다른 빛깔과 형태, 그리고 초목을 볼 수 있지만 바람이 잔잔하여 파도가 없는 날에만 드나들 수 있다고 합니다.

“저 섬 저거 뭐 대단한 볼거리가 있어? 그냥 바위섬일 뿐인데..”

동생의 눈에는 이 해금강이 신선대의 절경에 미치지 못하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러나 해금강은 거제 명승 2호로 지정될 만큼 아름다운 명소지요. 결국 아름다운 절경도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차이가 많은 것 같았습니다.

해금강 절벽에는 동백, 구실잣밤, 풍란, 석란, 박쥐란 등 희귀식물이 자생하고 있다 합니다. 이 해금강은 속칭 서불과차(徐市過此)라 하여 고대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의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러 방사인 서불(일명 徐福)이란 사람을 보냈지만 이곳에 눌러 앉아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비슷한 전설이 경남 남해와 제주도에도 전해지고 있으니 전설은 그냥 전설일 뿐이지요. 호텔 앞마당 끝에 있는 계단을 내려가니 작은 포구가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냅니다. 바닷가는 온통 넓은 바위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해금강 선착장 풍경
 해금강 선착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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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강과 호텔이 자리 잡고 있는 언덕 사이 좁은 바다가 아늑한 포구여서 유람선이 정박하고 출발하는 선착장도 있었습니다. 몇 척의 놀잇배와 여객선들이 정박해 있는 선착장 밖으로 작은 어선들이 고기를 잡으러 나가는 모습이 그림 같은 풍경입니다.

“이제 그만 갑시다. 가다가 한 군데 더 들러 가야 할 테니까?”

동생이 앞장을 섭니다. 내년이면 60세가 되는 동생의 뒷머리에 희끗희끗 흰머리가 많아 보입니다. 어느새 짧아진 가을해가 설핏 기울어 있었습니다. 벌써 3년째 거제도에서 농사를 짓고 있지만 관광을 별로 하지 못했다는 동생입니다. 그래도 서툴게나마 형을 위해 관광안내에 나선 동생의 호의에 고마운 마음과 함께 기대를 하며 다음코스로 향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승철, #신선대, #해금강, #경치,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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