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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 슬비의 등쌀에 밀려 지난 12일(일요일) 아침, 아이들과 함께 전국체전이 열리고 있는 전남 여수에 갔었다. 베이징올림픽 배드민턴 혼합복식 결승에서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텔레비전 중계 카메라를 향해 윙크를 날리면서 '살인 윙크'의 대명사가 된 이용대와 이효정의 배드민턴 경기를 보기 위해서였다.

 

슬비는 체육관 스탠드 제일 앞좌석도 양에 차지 않았는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난간에 기대고 경기를 봤다. 그러면서 사진을 찍고 동영상으로 담으며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하긴 며칠 전부터 배드민턴 게임도 보고, 이용대 선수의 사인도 받겠다고 보챈 데다 학교 친구들한테 자랑도 했다더니 오죽할까 싶었다.

 

슬비의 열정은 오후 6시부터 시작된 팬 사인회장에서 더 적극적으로 나타났다. 이용대를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밀고 밀리며 몸싸움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그 무리에는 슬비보다 더 어린 아이들도 많았다. '이러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염려될 정도였다.

 

중간고사가 코 앞인데 전국체전을 구경가다

 

 

"아빠! 감사해요. 여기까지 데리고 와주셔서…."

 

밤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슬비가 한 말이다. 비록 이용대 선수의 사인을 직접 받지 못했지만 먼발치에서라도 보고 또 경기까지 관람할 수 있도록 해줘서 고맙다는 것이었다. 사인을 받으러 온 다른 아이들은 대부분 친구들끼리 왔는데 자기는 아빠랑 같이 와서 든든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런 기회가 있으면 앞으로도 꼭 데리고 가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아빠! 엄마! 친구들이 엄청 부러워했어요. 처음에는 '중간고사가 낼모레인데, 제 정신이냐'하면서 뭐라고 하던 친구들도 금방 부러워하더라고요."

 

다음날, 학교에 다녀온 슬비의 얘기다. 사실 슬비가 다니는 학교는 16일부터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그런데 부모라는 사람이 토·일요일에 붙잡고 공부를 시키기는커녕 데리고 나가서 운동경기를 보고 팬 사인회나 다녀온 것이다.

 

이 사실을 접한 슬비의 친구들이 아빠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또 그 친구의 부모들이 알았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지금이 어느 때인데, 속이 하나도 없는 부모라고 할까. 십중팔구는 '한심(?)한 부모', 아니면 '아이의 교육을 포기했거나 무관심한 부모' 쯤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스스로 생각해 본다. 나는 한심한 부모인가? 결코 아니다. 아이들 교육에도 관심이 있고 또 우리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면 좋아하는 평범한 가장이다. 다만 평일에도 공부하느라 스트레스를 받는데 쉬는 날까지 하루 종일 붙잡고 공부시키는 것에 대해 탐탁하지 않게 생각할 뿐이다.

 

경험으로 미뤄볼 때 공부할 아이들은 부모가 시키지 않아도 하고, 안 할 아이들은 아무리 시켜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다. 하여 공부는 평소에 하고, 틈나는 대로 열심히 노는 게 아이들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여길 뿐이다. 공부에 관심 없는 아이를 하루 종일 붙잡아놓는 것은 부모와 아이 모두 불행한 일이라고.

 

자식들이 1등하는 걸 싫어할 부모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아이들한테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아예 하지 않는 건 아니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책 읽기가 중요한 이유 등에 대해서 가끔은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준다. 어떻게 하든지 최종 선택은 본인이 해야 하고 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까지도.

 

사랑하는 자녀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1등을 하고 2등을 하는 것 싫어하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공부도 잘하고 모든 면에서 모범적이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공부는 잘하지만 상식이 부족하거나 예의가 없는 아이보다, 공부는 조금 뒤처지더라도 상식이 풍부하고 예의 바른 어린이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평소 공부하라는 말보다 책읽기를 더 적극적으로 권하는 이유다.

 

혹자는 이런 나를 보고 '슬비가 평소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슬비 스스로 인정하듯이 그런 편이 아니다. 공부보다 그리기, 만들기, 뛰어놀기 같은 것에 소질이 좀 있는 편이다. 슬비의 진가는 야외에서 발휘된다. 어디에 가든지 놀 줄 안다.

 

틈나는 대로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는 이유다. 집을 나서는 것만으로 슬비와 예슬이가 좋아하고 해찰도 맘껏 하면서 체험을 즐긴다. 아빠란 사람은 그 모습에 흐뭇해하면서 행복함을 느낀다. 놀기 좋아하는 건 아빠랑 딸이 꼭 닮은 셈이다.

 

이곳저곳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하늘이나 구름, 꽃이나 나무 같은 것을 보며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도 재미있다. 자연스럽게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하게 된다. 아이들의 학교생활과 고민까지도 알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사실 집에 있으면 가족끼리 이야기를 많이 할 것 같지만 따로따로 노느라 그렇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밖에 나가서도 특별히 간섭하지 않는다. 이것 봐라, 저것 봐라, 메모해라, 나중에 물어본다 하면서 부담을 주지 않는다. 사진 찍자고 나란히 서게 만들지도 않는다. 그랬다가는 좋은 날 서로 기분만 망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조심해라, 한 눈 팔지 말라는 말도 안한다. 해찰을 많이 하는 아이들이 하나라도 더 보고 느낄 것이기에.

 

또 밖에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고, 입으로 즐기며, 마음으로 느끼면서 아이들의 동심도 토실토실 여물어갈 것이다. 상상력과 감수성도 더 풍부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당장은 그렇지 않더라도 괜찮다. 아이들의 사회나 과학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다만 이런 경험이 앞으로 남을 배려하고, 자연을 사랑하며, 다양한 각도로 사물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또 그렇게 커 주기를 소망한다. 이번 주말과 휴일에도 아이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이유다.

 


태그:#일제고사, #여행, #슬비, #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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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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