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봉화 보건복지가족부 차관에 의해 불거진 쌀 직불금 문제로 여론이 악화되자 한나라당은 또 '노무현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주성영·장윤석 한나라당 의원 등은 17일 감사원에대한 국감장에서, "작년 6월 20일에 보고된 이 문제를 청와대가 대선을 의식하여 일부러 덮은 것 아니냐"고 공세를 펼쳤다. 여기에 <조선일보>까지 가세하여 당시 이 문제가 청와대의 지시로 은폐된 것이 아니냐는 식으로 기사와 사설을 내놓고 있다.

 

반면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쌀 직불금 대책회의가 6월 20일에 있었고, 이틀 후인 6월 22일에 농림부가 쌀 직불금 점검단 TF를 구성했고, 8월에는 1차 개선안을 마련했으며, 9월에는 제도 개선 공청회를 열었고, 11월에 법률 개정안을 마련해 12월 4일에 입법예고를 했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직불금 제도 개선을 게을리 한 것은 이명박 정부"라고 주장했다.

 

전윤철 전 감사원장은 "노 전 대통령이 감사 결과를 공개하지 말도록 지시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고, 당시 회의에 배석했던 이상욱 감사관은 "김조원 (당시)감사원 사무총이 직불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고를 한 뒤 농림부 장관이 '이미 언론에 많이 보도된 사안'이라며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자 노 전 대통령이 진노했고, 제도 개선을 제시했다"고 국정감사 자리에서 밝혔다.

 

과연 한나라당의 주장처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을 의식해서 명단 비공개를 결정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 이봉화 차관은 이번 쌀 직불금 문제가 아니더라도 진작 물러났어야 할 사람이다. 서울시청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그는 '강부자 인사'의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위장 전입, 부동산 투기 문제 등으로 사퇴 압력을 받긴 했지만, 장관이나 수석 급이 아닌 차관이라서 그런지 여론의 표적에서 다소 비켜간 것이 사실이다. 그는 실제 경작을 하지 않으면서도 경작확인서를 제출했다. 이석연 법제처장은 이에 대해 공문서 위조죄가 적용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는 형사처벌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일들로 볼 때, 이봉화 차관은 이명박 대통령과 닮은 구석이 많다. 그리고 이것은 이 대통령이 왜 이봉화 차관을 빨리 경질하지 않고 있는지 알게 해주는 하나의 단서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쌀 직불금 문제로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 데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있다고 본다. 그 중에서 강부자 내각에 대한 불만도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요컨대 우리 국민은 이 문제를 통해 이명박 정부의 부도덕성과 부자 위주의 정책에 대해 항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직시하지 못하고 한나라당과 <조선일보>는 일만 터지면  예의 노무현을 탓하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숭례문도 노무현 탓, 직불금도 노무현 탓?

 

"이천 화재 참사, 태안반도 유조선 사고 등과 같이 노무현 정권이 지난 5년 간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무리해서 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우리는 숭례문 화재 참사가 났을 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 당시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 대표가 당 최고위원회에서 한 말이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설 연휴가 끝날 무렵에 숭례문이 소실되는 비극적인 사태를 맞았다"면서 "노무현 정권이 그동안 안전 의무에 허술한 채 신경 쓸 데는 안 쓰고 엉뚱한 데 신경쓰다가 이런 비극을 가져오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노 대통령에게 화살을 돌렸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노무현 대통령이 봉하마을의 10분의 1만큼이라도 문화재 관리에 관심을 뒀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정권이 바뀌자 가장 발빠르게 변신한 정부기관이다. 난 데 없는 금서 파문과 교과서 개정 요구를 한 국방부는 군대 내부의 기강 해이 문제까지 노무현 탓으로 돌렸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우리 군은 '편한 군대가 민주 군대'라는 과거 잘못된 인식을 일소하고 '강한 군대' 육성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최근 군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고들도 과거 무사안일의 '행정적 군대'에서 전투 위주의 군대로 변모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보입니다. 금융 피해, 보험 사기 초소 붕괴 등 대부분의 사고가 과거(정권)에 뿌리를 두고 있음."(2008년 10월 초 이상희 국방부 장관 국회 서면 답변서)

 

이명박 정부가 모든 문제를 노무현 정부 탓으로 돌리게 된 데에는 이 대통령을 비롯한 최고위급 지도자들의 책임이 우선 크다.

 

이 대통령은 촛불 시위가 한창이던 때 개신교 지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노무현 정부 때 '쇠고기 협상'이 처리했으면 이런 말썽이 안 났지""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승수 총리는 국회 답변에서 "문민정부 때는 경제 성장 잠재력이 7.5%였는데 참여정부에서 4%대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강재섭 전 대표는 이명박 정부의 인사 실패 책임도 '노무현 탓'으로 돌린 바가 있다.

 

"우리나라의 중추신경에 해당되는 청와대의 모든 전산 자료를 전직 대통령이 자기 숙소로 가져갔다. 나라의 뇌에 해당되는 부분이 다 없어져 버린 것 아니냐. 그러니 무슨 (인사) 검증을 하겠느냐?"

 

박희태 대표는 지난 15일 의원총회에서 "국제적인 금융 위기 바람을 심하게 맞는 이유는 지난 10년 간 좌편향 정책과 제도 때문에 경제가 활력을 잃게 됐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와 집권당 대표가 모두 이런 말을 할 정도면 '노무현 탓'은 이제 개인적인 비판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국정기조(?)처럼 자리 잡지 않았나 생각 들 지경이다. 이러니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는 식으로 아래 사람들이 따라서 하는 것 아니겠는가?

 

콤플렉스인가, 물귀신 심리인가

 

지난 8월 탈북 여성 간첩 사건이 발생했을 때 차명진 한나라당 대변인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의 적폐"라고 했다. 한나라당 정태근 의원은 국회에서 전기료 인상까지도 노무현 정부 탓이라고 책임을 떠넘기는 발언을 했다. 이렇게 되다 보니 변희재 인터넷미디어협회 정책위원장도 "노무현 정부가 조용히 포털과 지하철 무료신문 등을 권력화하여 언론시장 전체를 초토화한 것이다"고 노무현 정부를 비판했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악재가 생기면 전부 "노무현 때문"이라고 말하기로 전략이라도 짜놓은 집단 같다. 이제 그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궁지에 몰리면 으레 노무현 전 대통령을 들먹이는 것이 아예 버릇이 되었다. 원래 능력이 없을수록 콤플렉스만 심해진다는 말이 있는데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에 대해 콤플렉스를 느끼는 것일까. 아니면 같이 침몰하자는 물귀신 심리라도 있는 것인지.

 

그들은 키코 사태도, 사교육비 증가도, 금강산 피격 사건도 모두 노무현 정부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인천공항 민영화도, 의료보험 민영화도, 독도 사태도 노무현 정부가 시작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가장 놀라운 것은 청와대 컴퓨터의 바이러스(해킹)도 노무현 정부 책임이라는 점이다. 이만 하면 그들은 노무현 정부의 능력을 턱없이 과대평가(?)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은 것은 '노무현 탓'을 잘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오만가지 것을 다 노무현 탓으로 몰아 붙여 재미를 보았다. 물론 야당이 정권을 잡기 위해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은 어느 나라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선거 전략으로 이용해서 성공했으면 족한 줄을 알고 끝냈어야 한다. 국정을 운영해야 할 사람들이 여전히 선거 운동하는 행태로 임한다면 정권의 미래는 암담하다.

 

국민은 '노무현 탓'이나 하라고 이명박 정권에게 표를 준 것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보다도 약간 더 잘 하라고 표를 준 것이다. 그런데 잘 하는 일은 하나도 없이 정권 잡은 지 10개월이 다 되도록 허구한 날 노무현 탓만을 해댄다면 그것을 누가 믿으며 누가 좋아하겠는가?

 

듣기 좋은 노래도 반복되면 싫어지는 법이다. 하물며 자기들의 실정을 남 탓으로만 돌리는 정부의 행태를 누가 반기겠는가. 그것은 노무현에 반대했던 사람이라도 싫어할 일이라고 본다.               

 

[관련기사]
☞ 정부, 은행 달러빚 3년간 지급 보증하기로
☞ "우린 매일 일제고사... 고딩이 부럽다"
☞ "쓰리쿠션계의 마이클 조던" 고수 이상천
☞ 반포 래미안의 굴욕... 흔들리는 "강남 불패"
☞ [단독] 일제고사 반발 중학생 "집단 백지답안"

덧붙이는 글 | 필자 김갑수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제국과 인간>을 연재 중입니다.


태그:#노무현탓, #쌀직불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