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중순의 대학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사방팔방에서 밀려드는 시험의 압박 때문이다. 본격적인 취업시즌, 임박한 중간고사, 365일 내내 계속되는 각종 자격시험 등 쇄도하는 모든 시험을 준비하려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전국단위로 실시된 일제고사를 단호히 거부하며 체험학습을 떠났던 중·고등학교 동생들의 모습은 이들에겐 사치로 보일 뿐이다. 백지 답안을 던지는 당당함도 상상할 수 없다. 한 가을, 단풍놀이를 즐길 수 있는 특권은 일부 '시포자(시험포기자)' 및 철없는 새내기에게만 주어진다.
안 그래도 88만원세대라고 불리는 젊은이들. 설상가상으로 최근 불어닥친 미국 발 경제위기 한파는 대학생들의 운신 폭을 더욱 비좁게 한다. 기업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고, 공기업·공무원 등의 공공부문도 신규 채용을 줄일 것으로 보인다. 얼어붙은 취업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치열한 생존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옆의 친구들을 압도하는 엄청난 '스펙'을 쌓아야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스펙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 법이다. 험난한 '테스트'를 거친 젊은이들만이 달디 단 '스펙'을 거머쥘 수 있다. 학점과 토익은 기본이다. 실전 영어회화에도 능해야 하며, 각종 자격증과 공모전도 필수다. 일명 '자소설' 쓰기와 인·적성검사, 면접대비 등 최종적인 입사시험 준비도 가을을 맞은 대학생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관문이다.
이처럼 각종 시험 준비에 치어 사는 대학생들에게 10월 중순은 그야말로 악몽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학교에서 실시하는 중간고사마저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충 준비하고 다른 공부를 하고 싶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다. 불투명한 취업전망 속에서 '혹시나 학점 때문에?'라는 우려를 떨칠 수 없어 중간고사 준비에도 악착같이 매달려야 한다.
10월 중순의 대학생들, 특히 고학년들은 물밀 듯이 밀려오는 각종 시험을 대비하느라 허둥지둥한 모습이 역력하다. 시험 압박이 최고조 상태로 오른 2학기 중간고사 기간, 대학생들의 '정신없는' 생활 모습을 지면에 담았다.
[토익+한자+중간고사] "시험 겹쳐 힘들지만 3학년인 지금 끝내야" 김원희(가명·중앙대 문과대 3)씨의 최근 생활 경로는 '집-학교-학원' 세 곳 뿐이다. 그는 2학기 들어 한자자격시험과 토익을 준비하고 있다. 한자자격시험 2급은 지난 11일 이미 치른 상태고, 곧바로 오는 26일로 예정된 토익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20일~25일까지는 중간고사 시험기간이라 잠시라도 숨 돌릴 틈이 없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입사를 준비하고 있는 김씨는 "이번 학기에 기본적인 자격시험은 마무리해놓고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취업시험 준비에 들어갈 계획이라 다소 힘들어 보이는 강행군이지만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한자 자격증은 취업의 필수적인 요소가 됐기 때문에 이번에 꼭 취득할 생각이고, 토익도 현재는 800점대 초반 정도인데 860점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중간고사는 상대적으로 만만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시험이 임박하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마음이 급해졌다. 준비해야 할 공부량이 예상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시험을 치르는 과목만 6개인 데다가, 봐야할 교재도 한두 권이 아니었다. '믿었던' 교양 과목도 '리포트 대체'는커녕 시험 범위가 전공 못지않게 넓었다.
김씨는 "중간고사 전에는 한자시험을 봤고, 끝나고는 바로 토익을 봐야 하는 상황이라 한 곳으로 공부 역량이 집중되지 않는다"며 "(시험이) 겹치지만 않았으면 한결 부담이 덜 할 것 같다, 그러나 겨울방학부터는 인턴사원이나 공모전 등 다른 준비를 할 계획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금 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자소서+인적성+면접+중간고사] "미치겠다... 하나는 포기해야 하나"3학년은 약과다. 가을 취업 시즌을 맞아 본격적인 '취업 전쟁'을 치르고 있는 4학년 학생들의 '시험 압박'은 상상을 초월한다. 안 그래도 빗발치는 '실전' 시험 때문에 넋이 나갈 지경인데, 중간고사마저 발목을 잡고 있다. '하나는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지만 단 하나라도 버릴 것이 없다. 다 떠안아야만 한다.
이진만(가명·연세대 상경대 4)씨는 "정신적인 공황상태"라는 말로 입을 열었다. 2학기 들어 자기소개서 작성과 기업별 인·적성검사 준비에 열을 올렸던 터라 수업은 거의 들은 게 없었다. 게다가 지난 주 대기업 서류전형 두 곳에서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후라 더욱 마음이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원활한 졸업을 위해서는 중간고사 준비를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씨는 "아직도 남은 공채들이 적지 않고, 그것 준비하기도 벅찬데 중간고사에 과제에…. 정말 돌아버릴 지경"이라며 "어떻게든 졸업 전에는 취업을 하고 싶은데, 전망이 너무나도 불투명한 상태라 초조함과 불안감만 커져 가고 있다"고 말했다.
박혜민(가명·동국대 경제통상학부 4)씨도 사정은 마찬가지. 그는 이번 학기 들어서만 15곳 정도의 기업에 원서를 냈다. 그 중 서류전형에서 합격한 곳은 모두 2군데였다. 하지만 그나마도 필기전형에서 모두 고배를 마셨다. 온 몸에 힘이 쭉 빠지는 순간이었다고 한다.
박씨는 "학점을 위해서는 중간고사 공부라도 해야 하겠는데, 조급함을 이기지 못하고 또다시 'OO카드' 등에 지원서를 쓰고 있다"며 "요즘 사람도 못 만나고 매일같이 컴퓨터 앞에 전화기 붙들고 앉아 청승만 떨고 있다, 언제까지 이런 막막한 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건지 정말 답답하다"고 말했다.
[장소 옮겨가며 하루 2탕] "끼니 못 때우고 택시 타더라도 시험만은..." 시험 일정이 겹치다 보니 학교와 기업을 오가며 하루 '2탕'을 뛰고 있는 대학생들도 자주 눈에 띈다. 둘 다 놓칠 수 없는 시험이기 때문에, 거리가 멀고 시간이 촉박하다 하더라도 허겁지겁 두 곳을 오가며 악착같이 시험을 치르고 있다.
김승우(가명·한양대 공대 4)씨는 오는 20일 오전 'OO전자' 면접시험이 예정돼 있다. 같은 날 오후 3시부터는 학교에서 중간고사를 치러야 한다. 그래서 면접이 끝난 후, 즉시 학교로 달려와서 시험을 볼 계획이다.
김씨는 "면접이 언제 끝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끝나고 급하게 학교로 온다고 하더라도 시험을 제대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면접이 가장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그것을 중심으로 대비하고 있기는 하지만 졸업을 앞두고 학교 시험도 망칠 수는 없는 상황이라 이래저래 부담이 큰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성소진(가명·중앙대 경영대 4)씨도 21일 오후부터 'OO그룹' 인턴사원 면접시험을 치른다. 같은 날 학교 시험이 오전·오후에 걸쳐 두 과목이 예정돼있는데, 오후 시험은 면접으로 인해 포기한 상태다. 오전 시험을 마친 뒤 곧바로 면접장소로 이동할 예정이다.
성씨는 "정말 좋은 기회인 것 같아서 중간고사 기간임에도 무리를 해서라도 도전해 보고 싶다"며 "면접 당일은 학교서 시험을 마친 뒤, 빵이나 하나 먹으면서 택시타고 총알같이 면접장소로 이동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요즘 초·중·고등학교는 일제고사 때문에 난리인 것 같은데, 요즘 우리 대학생들은 취업에 성공하기 전까지는 매일 매일이 일제고사를 보는 것과 같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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