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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 오름의 초입인 성삼제 주차장. 주말에는 빈틈이 없다.
▲ 성삼재 노고단 오름의 초입인 성삼제 주차장. 주말에는 빈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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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버팀목이 되어준 백두대간의 수려한 끝자리. 당당하고 웅장하면서도 하루에도 수백 명에게 기꺼이 자리를 내주는 높지만 벗 같은 낮음이 있는 봉우리. 우리는 그곳을 노고단이라 부릅니다.

노고단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한 때는 전문 등산가들조차 힘겨워하면서 거친 숨을 몰아쉰 뒤에야 정상을 내주었던 화엄사길이 유일한 길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굉음을 내는 차들로 북적거림조차 당연시 되어버린 관광도로가 구례와 남원, 그리고 함양 방면 등에서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높지만 누구나 찾는 봉우리가 되어 있다.

남원 쪽을 택하여 오르길 수분. 옛날 매표소를 지나자 초입부터 구룡폭포를 따라 오르려는 사람들로 만원. 주차된 차들 사이를 지나 정녕치를 오르자 시계에 들어오는 형형색색의 오색 단풍들은 모두를 감탄케 한다.

정상에서 타고 내려오는 지리산 단풍은 모두의 발을 묶어 버리고...
▲ 지리산 단풍 정상에서 타고 내려오는 지리산 단풍은 모두의 발을 묶어 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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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그랬다. 올해 단풍은 가뭄 때문에 예년에 미치지 못하리라고. 그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려는 걸까? 정상에서 타고 내려오는 수려한 아름다움은 오히려 서러우리만치 화려한 색깔의 축제다.

늦은 출발 때문인지 어느 듯 시계는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버렸다. 그래서 들른 곳이 하늘아래 첫 동네인 심원마을. 장백산장에 들어서자 서울에서 꽃다발세례에 시집오게 되었다는 김상희씨가 어느 새 금술 좋은 세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하늘아래 첫 동네인 심원마을 장백산장에서 오랫만에 이곳 토박이인 박노근(43)씨를 만나 산나물과 지리산 이야기에 ...
▲ 하늘아래 첫 동네 하늘아래 첫 동네인 심원마을 장백산장에서 오랫만에 이곳 토박이인 박노근(43)씨를 만나 산나물과 지리산 이야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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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을 달래려고 닭볶음을 주문하자 여러 가지 산나물이 먼저 나와 한 상 가득이다. 이름조차 생소한 산나물들의 향과 맛. 이른 봄부터 지리산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일 년 농사를 준비한다는 박노근(43)씨는 지리산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지리산 이야기가 나오자 모르는 곳이 없다.

차를 돌려 성삼재에 오르자 주말이어서인지 주차할 곳이 없다. 도로 주변에 차를 세우고 노고단에 오르는 길에 다다르자 가을의 숨결을 간직하고 싶어서인지 여기저기에서 영글어 가는 가을을 카메라에 담기에 바쁘다. 넓은 등산로에는 이미 가을 단풍에 취해버린 사람들이 인산인해.

결혼 33주년에 지리산에 왔다는 박두병?김광윤씨 부부. 지리산을 담기에 여념이 없다.
▲ 박두병?김광윤씨 부부 결혼 33주년에 지리산에 왔다는 박두병?김광윤씨 부부. 지리산을 담기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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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결혼 33주년이라는 박두병・김광윤씨 부부. 단풍의 매력에 이미 자아를 맡긴 듯. 카메라를 들고 한 장 한 장 가을을 담는다. 노부부의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 단풍만큼이나 가슴에 닿는다. 저런 모습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의미를 부여하려는 어리석음이 미안함으로 다가설 무렴 화엄사계곡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 ‘왜 산에 오르느냐?’는 우문에 ‘산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산사람의 현답처럼,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받아들이자 세상은 온통 가을단풍 축제다.

얼마나 올랐을까? 벌써 해거름이 산자락을 따라 발걸음을 재촉한다. 정상에 오르려는 마음을 접고 8부 능선에서 발길을 돌리자 오를 때 보지 못했던 또 하나의 지리산의 매력이 가슴을 타고 온다.

누군가는 지리산을 말한다. 한을 가슴에 묻고 내색하지 않는 산이라고. 백두대간의 끝을 지키며 모두의 힘든 한을 소리 없이 가슴에 묻고 있는 산. 우리네 어머니처럼 알면서도 내색하지 않는 산이기에 우리는 힘들 때 지리산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지리산은 어머니 산이다. 한민족의 아픈 상처를 가슴으로 삭이면서도 절대로, 절대로 내색하지 않고 포근히 안아주는 산이 바로 지리산이다.

해거름의  햇살과 마주한 지리산의 화려한 비단 옷.
▲ 해거름과 어루러진 단풍 해거름의 햇살과 마주한 지리산의 화려한 비단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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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는 길에 드러낸 노고단의 여러 줄기. 햇볕에 반사된 단풍의 색깔은 더욱 더 선명함을 보여준다. 천왕봉과 반야봉 그리고 노고단을 일컬어 지리산의 3대 주봉이라 한다. 그 중에서도 노고단은 지리산 종주를 위한 초입으로 천년고찰 화엄사가 자리하고 있어 산사의 매력을 함께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노고단 정상에 이르면 주변으로 30여만 평의 넓은 고원지대가 기다린다. 옛날 이곳에는 '삼신할머니를 모시는 단'이 있어서 지금의 노고단이란 이름이 생겼다고도 하고, 신라시대 때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의 노고와 제사를 올리던 신단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노고단이라고 칭했다고 한다.

노고단은 또한 지리산 사계를 한 자리에서 만끽할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봄에는 진홍색의 철쭉, 여름에는 곳곳에 흩어져 있는 원추리와 산을 타고 오는 운해, 가을에는 오색찬란한 단풍과 연인들의 만남의 속삭거림, 그리고 겨울에는 끝없이 펼쳐진 설화 등이 산 애호가들의 발길을 잡는 곳.

어디 이뿐이랴. 음력 보름 전후로 노고단에 오르는 사람들은 너무나 밝은 보름달에 오히려 경외심을 느낀다고 한다. 손을 뻗치면 잡힐 듯 가까이 보이는 초롱초롱한 별들. 그곳에 자리를 틀고 앉으면 여기가 하늘인지 땅인지를 의심케 하여 신선이 된 착각에 빠진다고.

시암재 휴게소 뒷산에도 가을이 영글어 가는 모습이 여전하기만 하다.
▲ 시암재휴게소 시암재 휴게소 뒷산에도 가을이 영글어 가는 모습이 여전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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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내려오는 길목에는 산의 높음만큼이나 다양한 색깔이 공존한다. 7부 능선까지 타오르던 단풍이 밑으로 내려갈수록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다. 시암재에서 천은사 길로 내려갈수록 여름이 쉽게 자리를 비껴주지 안으려고 파란색으로 버틴다. 그러나 얼마 지나면 그곳 역시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일 것이라 여기며 멀어져 가는 가을 단풍을 가슴에 담아온다.


태그:#노고단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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