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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산 정상일대는 억새와 바위로 조화를 이루고~
▲ 비슬산 비슬산 정상일대는 억새와 바위로 조화를 이루고~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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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그리움이

나를 흔든다
망망하게
허둥대던 세월이
다가선다
적막에 길들으니
안 보이던
내가 보이고
마음까지도 가릴 수 있는
무상이 나부낀다‘

-'가을의 시, 김초혜'

몇 주 동안 계속해서 산행을 하지 못했더니 몸이 무겁고 둔해진 느낌이다. 가을은 날로 깊어만 가고 가을 산야는 단풍으로 곱디곱게 물들어 가는데 마음 훤해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날들이 안타까웠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내 마음은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가을 들녘과 불을 지피듯 단풍드는 가을산야가 눈앞에 어른거리고 몸이 근질거렸다. 갑갑했다.

얼마만인가. 모처럼 길을 나선다. 오늘(10월 18일)은 대구 비슬산으로 간다. 사실, 한번 가보고 마음속에 오래남아 다시 가고 싶은 산들도 많아 다음에 또 와야지 했던 산들도 많다. 하지만 손에 꼽아보며 일년에 꼭 한번씩은 가야지 하는 산 몇 개 외엔 한번 이상 가본 산은 극히 드물다. 우리나라 국토의 70퍼센트가 산인데다 500미터 이상의 산들을 대강 추려보아도 4400개 정도가 된다고 하니, 아직 가보고 싶은 산들이 더 많은 까닭이다.

대구 비슬산 가는 길

오늘 역시, 가보지 않은 산으로 간다. 하루 만에 갔다 오는데 시간적으로 크게 부담 없는 적당한 곳을 찾다가 대구 비슬산으로 정한 것이다. 비슬산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 용리에 위치해 있는 산으로 북쪽의 팔공산과 더불어 남쪽에 위치한 대구의 명산이다. 매년 봄 4월이면 비슬산 참꽃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언제나 처음 가는 장소는 설렘과 기대와 약간의 불안을 동반한다.

산마다 불이 탄다~고운 단풍에...
▲ 비슬산 산마다 불이 탄다~고운 단풍에...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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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부터 산행을 위해 일찍 집을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새벽 일찍 일어났지만 꼼지락거리다가 거의 8시가 다 되어서야 집을 나선다. 날씨는 맑음. 남양산 IC를 빠져 나가자 오전 8시다. 얼마쯤 갔을까. 김해 상동쯤에 다다랐을 때부터 낙동강 위로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점점 갈수록 안개는 짙어지고 낙동강 물도 주변 사물도 모든 것을 안개가 지워 1백 미터 앞조차도 제대로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안개가 짙다.

조석으로 일교차가 심해서인지 요즘 들어 비행기 결항도 많다고 들었다. 아침 안개를 보니 그럴 만도 하다. 무척산 터널 앞에 이르자 희미하게나마 사물이 드러나는가 싶더니 다시 짙은 안개가 앞을 가린다. 이 길은 자주 다녔지만 이렇게 짙은 안개가 낀 것은 처음 본다. 신대구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서대구, 서대구에서 다시 구마 고속도로를 타고 마산 방향으로 가다가 현풍 IC로 빠져나온다.

억새와 단풍, 그리고 바위가 어루러진 ...
▲ 대구 비슬산 억새와 단풍, 그리고 바위가 어루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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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다 불이 탄다 고운 단풍~
▲ 비슬산 산마다 불이 탄다 고운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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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면 경주, 부산을 거쳐 대구로 가지만 신대구 고속도로를 타고 가니까 양산에서 삼랑진, 그리고 밀양을 거쳐 대구로 바로 오기 때문에 시간이 훨씬 절약되었다. 대신 고속도로비가 좀 비싼 것이 흠이다. 산행하는 것도 좋지만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계절마다 다른 들녘 풍경을 보는 것도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건만 황금빛으로 물든 들녘과 흙냄새, 바람냄새, 가을냄새 대신, 대구시 한가운데를 관통하면서 삭막한 도시의 건물들 사이에서 한참을 차로 달려야 하는 것은 고역이었다.

현풍IC(9:40)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유가사 방향으로 돌린다. 이정표가 친절하게 잘 되어 있어 길을 찾기가 비교적 쉬웠다. 여긴 대구시 달성군이다. 가을 들녘은 아직 추수를 기다리고 있는 황금빛 벼들이 융단처럼 깔려 있는가하면, 벼베기를 끝내고 짚단을 쌓아놓은 논과 추수가 한창인 논밭도 있다. 마을 곳곳마다 추수한 벼들을 가을 햇볕에 말리고 있고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전형적인 시골 분위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유가사에 도착한다.

억새와 단풍, 바위가 어우러진 비슬산

유가사에 차를 주차하고 비슬산 등산로를 찾는다. 등산로는 여러 개 나 있다. 유가사내에서 왼쪽, 도성암 가는 쪽 길이 있고 오른쪽, 완만한 등산로가 나 있다. 우린 오른쪽으로 향한다. 들머리는 크게 힘든 것 없이 길이 넓고 열려 있는데다 완만한 경사로 이어진다. 비슬산은 크고 작은 바위들이 많다. 흙길과 바윗길을 걸으니 정말이지 바위에서 방사되는 골기를 마시는 것 같기도 하다.

대구 비슬산 정상 대견봉에서~
▲ 비슬산 대구 비슬산 정상 대견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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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 곳곳마다 붉게 물들어가는 단풍들, 발밑에 밟히는 마른 낙엽들이 있어 가을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길은 급경사가 아니라 해도 만만한 길은 아니다. 해발 1083미터의 산 아닌가. 어느 정도 왔다 싶은데 아직도 길은 이어진다. 어느 정도 높이에 올라보니 비슬산 정상부근의 바위들이 가까운 듯 보이는데 정상까지는 그리 쉽게 도착하지 않는다. 지척인 듯한테 여전히 더 걷고, 또 걸어 올라간다.

비슬산 정상은 마치 '바로 코앞이야' 하면서 지치려고 하는 산객들에게 그 우람한 암봉들과 푸른 하늘을 보여주면서 길을 재촉하고 기대하게 만드는 듯 하다. 비슬산은 가을 단풍으로 예서제서 옮겨 붙어 산 전체에 번져가고 있다. 비슬산 대견봉에 도착, 낮 1시 정각이다. 비슬산 정상 일대는 크고 작은 바위들과 억새로 물들어가고 있다. 비슬산 대견봉, 근처 곳곳마다 가을 산을 찾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드문드문 나무 그늘아래 모여 앉아 있거나 정상에 서 있다.

억새 사이로~
▲ 비슬산 억새 사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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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천국 비슬산~
▲ 비슬산 억새천국 비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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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천국 비슬산~
▲ 비슬산 억새천국 비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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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들과 억새, 그리고 단풍의 조화, 정상 일대엔 나무는 거의 없고 크고 작은 바위들과 절정을 이룬 억새로 출렁이고 있다. 주위에 어깨를 두른 듯한 산들도 단풍으로 번져가고 있어 환하다. 억새가 춤을 춘다. 가을 한낮의 햇살에 은빛으로 춤추고 바람 따라 춤을 추고 있다. 잠시 비슬산 정상에 섰다가 근처에 적당한 장소를 찾아 점심을 먹으며 쉰다. 숨길 곳 없이 햇볕에 환히 드러난 정상일대는 그늘이 드물다. 하지만 잠시 앉아 있어도 몸은 금세 추워진다. 오랜만에 이렇게 대자연 속에 몸을 맡기니 감개가 무량하다.

역시 산이 좋다. 가만히 앉아 있으니 바람이 억새에게, 나무들에게 말을 거는 소리가 들린다. 서걱서걱 메마른 소리를 내며 서로 부대끼는 소리, 그것들의 속삭임이 들린다. 점심 도시락을 먹은 뒤 다시 한번 억새바다 속을 거닐어본다.

만남이 있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비슬산 정상 표시석 근처에서 아이스께끼 장사를 하는 아저씨는 언제부터 저렇게 올라와 있는 것일까. 등산하면서 가끔 이렇게 높은 산에까지 올라와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있지만 한번도 아이스크림을 사 먹어 본적이 없었다. 오늘따라 등산객들이 손에 들고 있는 아이스크림 하나를 먹고 싶어진다. 1개 천원이란다. 딸기맛 아이스크림을 하나 샀다. 내친김에 아이스께끼 아저씨한테 궁금한 점을 물어본다.

"아저씨, 하루에 얼마나 팔고 가세요?"
"1통에 1백 50개 정도 넣어오는데 드라이아이스도 넣어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이 넣지는 못합니다."
"한통 다 팔고 가세요?"
"아니, 하루에 다 못 팔고 갈 때가 더 많고 다 팔면 15만원이지요."
"매일 오세요?"
"아니지요, 주말에만 와요."

하기야 매일 높은 산까지 올라온다면 하기야 얼마나 팔겠는가. 사람들이 많이 오는 주말이니까 그나마 여기까지 딸 흘리며 올라온 보람이 있을 듯 하다. 무거운 아이스께끼 통에 든 아이스크림을 다 팔고 갔음 하는 바람으로, '다 팔고 가세요' 하고 인사하고 돌아선다. 이제 올라왔던 길을 버리고 가지 않은 길로 하산을 서두른다. 도성암 쪽으로 가는 길이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뒤섞이는 순간이다.

붉게 물든 단풍~
▲ 비슬산 붉게 물든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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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바다~
▲ 비슬산 억새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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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길일까. 아이스께끼 아저씨한테 도성암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은 어떠냐고 물었을 때, 그 길은 험하니까 왔던 길로 가는 게 낫다고 했지만, 이미 온 길을 다시 내려가기엔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 더 궁금해지는 것을 어찌하랴. 도성암쪽으로 가는 길 능선에도 억새군락이다. 얼마쯤 가다가 내리막길이 시작될 때부터는 완전 급경사 길로 이어진다. 급하게 내리뻗은 급경사 좁은 길엔 돌투성이에 위험천만하다.

조심조심 길을 더듬듯 내려간다. 어쨌든 호젓한 숲을 걷는 기분은 너무 좋다. 얼마쯤 갔을까. 혼자서 조심스럽게 한발 한발 겨우 내딛는 아주머니가 계속 눈에 띈다. 모자 끝에 빠져 나온 머리카락은 방금 머리를 감고 물기를 닦지 않은 상태로 모자를 쓴 것처럼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모자 밑에 드러난 옆얼굴에도 땀이 흘러내리고 있다.

고역스럽게 걷는 모습이다. 혼자서 온 것일까. 조심스럽게 발끝에 집중하며 걷고 있어 자연히 보게 된다. 좁은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우리가 앞서 갈 수도 없어 뒤에 따라가다가 말을 걸어본다.

"혼자 오셨어요?"
"아니에요. 동생내외랑 같이 왔는데 먼저들 내려가고 제가 좀 쳐졌어요. 산행이 처음이라 힘드네요."
"첫 산행이시군요."
"에, 첫 산행치곤 너무 욕심을 낸 것 같네요. 아주 제대로 배우는 것 같네요."
"정말 그러시네요. 첫 산행에 천미터 이상급 산을 오르셨으니 대단하시네요, 그래도 혼자서도 잘 가시네요. 힘드실 텐데."
"제가 좀 총명해요."
"그래도, 힘드실 텐데 초행에 함께 온 분들이 같이 가 주시지 않고."
"제가 먼저 내려가라고 그랬어요. 천천히 내려가겠다고, 도성암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예, 산에 오시니 좋으시죠?"
"예, 정말 좋네요. 저는 사람들이 왜 산에 갈까 했었어요. 힘들게 땀흘려가면서 뭣 하러 저렇게 산에 갈까 했는데, 아우, 정말 좋아요. 사람은 정말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 같아요. 동생들이 저들끼리 얘기하는 걸 보면, 일주일만 산에 안가도 살찌는 것 같고, 몸이 무겁다고 하더라구요. 그래, 나도 등산화 산다! 하구선 이번에 온거에요."
"잘 하셨어요."

정말 그렇다.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동안 산에 가지 않으면 몸이 근절거리고 무겁고 둔하게 느껴진다. 얼마동안 가지 못하면 산이 보고 싶어서 눈앞에 어른거린다. 복잡한 도시가 줄 수 없는 대자연의 그 아늑하고 높고 깊고 넉넉한 품속이 그리워진다. 고요한 산야에 오르면서 몸도 마음도 맑아지고 가벼워지는 것이다. 이야기가 무르익어 갈 때쯤 도중에 그분은 도성암으로 가고 우린 유가사 주차장까지 계속 길을 내려간다. 4시 40분 유가사 도착했다.

돌아오는 길, 대구를 다시 통과하면서 차량정체로 많은 시간을 길에서 버렸지만 대자연에 몸을 맡겼다가 집에 돌아오니 내 몸과 마음은 깃털보다 더 가벼워진 듯 했다.

대구 비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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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화

산행수첩:
일시: 2008년 10월 18일(토)
산행대상: 억새산행, 단풍산행
산행기점: 유가사
산행시간: 5시간 25분
진행: 유가사(10:30)-너덜지대(11:10)-비슬산대견봉(1:00)-점심식사 후 하산(2:05)-수도암(3:55)
특징:남양산IC(8:00)-신대구 고속도로-금호분기점-현풍IC(9:40)
    비슬산 정상(대견봉):암봉, 조망탁월함. 억새바다. 바위많음.


태그:#비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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