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울산공장)가 발행한 노조소식지를 보았다. 거기엔 지난 10월 15일부터 17일까지 3일 동안 열린 제 101차 임시대의원대회 결과가 나와 있었다.
'제101차 임시대의원대회 통과 주요 내용'이라는 제목 아래 나열된 통과 내용을 보면, 먼저 얼마 전 구속된 수석부지부장 신분보장 심의가 통과되었다는 소식이 실려 있었다.
신분이 보장되면 복직시까지 임금과 법적 비용을 모두 노조에서 부담하게 되어 있다. 그 외에도 몇가지 상정된 안들이 모두 통과 되었다고 쓰여져 있었다. 그러나 맨 마지막에 있는 안건은 '부결'이라고 쓰여 있었다. 바로, 사내 비정규직 노동자 직가입 관련 규정 개정건이었다.
비정규직 현대차 노조 직가입 안건, 3번째 부결
개정을 시도한 내용은 이랬다.
제8조 (조합원 자격) 3. 비정규직지회(울산,아산,전주) 지회의 조합원은 규정 변경과 동시에 조합원 자격을 가진다. 비조합원의 경우 조합이 정한 절차에 따라 조합원 자격을 갖는다
그러나 절반 넘는 대의원이 위 안 내용에 반대표를 던지면서 간단하게 부결되었다.
"하지만 비정규직 조직편재 관련 1사 1조직 안건은 대의원들의 직접 비밀 무기명 투표 끝에 2/3 이상 찬성을 얻지 못해 부결됐다. 이로서 비정규직 노동자와 하나의 조직형태를 갖추는 데는 아쉽게도 실패했는데 1사 1조직 관련 안건은 모두 3번에 걸쳐 통과가 되지 못했다"위 내용은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소식지에 쓰여진 내용 그대로다. 비밀 무기명 투표로 '비정규직 직가입' 개정 안건에 대하여 표결했고, 2/3를 못 넘겨 부결처리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소식지 내용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벌써 3번째 부결이다.
현대차 회사 안에서 같이 일해도 몇 대 몇으로 부결되었는지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찾아봐야 한다. 하지만 지난 8년 넘게 사내 하청에 출퇴근하면서 알아차린 흐름은 있다.
'이기적인 현장의 정서가 바뀌지 않는 한, 노동귀족형 대의원 활동 방식을 고집하는 한, 비정규직 직가입 문제를 100번 넘게 상정해도 다 부결될 것이 뻔하다.' 지난 8년 동안 여러가지 큰 변화의 물결이 있었으나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원청과 하청간 '인간 차별'이다.
8년 지났지만 '인간 차별'은 변하지 않았다 2004년께 노동부는 현대자동차가 불법파견으로 사내 하청노동자를 사용해 왔다는 판정을 내렸고, 이는 언론에 보도되는 등 크게 사회 문제화됐다.
'이제 잘하면 우리도 정규직 전환이 가능하겠구나'그 소식이 전해지면서 대부분 사내 하청노동자가 그런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단지 그것뿐, 지금까지 바뀐 건 아무 것도 없다. 4년이 다 되어가고고 있지만, 나는 지금도 그때 그자리 그대로 같은 비정규직이고 같은 작업을 계속하고 있을 뿐이다.
불법파견 판정이 나고 원청노조인 현대차노조에서 발빠르게 움직여 '불법파견이니 당연히 비정규직도 현대차노조 조합원'이라고 선포하고 노조 활동을 하게 했다면 어땠을까?
그게 정석 같은데 현대차노조는 불법파견에 대한 정규직 전환 대신 '사내하청노동자 처우개선' 쪽에 더 무게를 두었다. 그들의 속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불법파견 판정이 나면 사측은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해야만 한다. 하나는 완전도급화를 하든지 아니면 불법파견된 비정규직 노동자 모두를 정규직화 전환시켜 주든가 해야 한다. 그러나 모두가 허당이었다. 지금까지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다.
2006년 현대차노조가 어렵게 산별노조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하청 노동자는 그때 또 한번 희망이란걸 품었었다.
'이제 정규직 노조에 노조원으로 가입하면 정규직은 어렵더라도 인간차별이나마 덜 받겠다.'이 또한 순진한 생각이었나 보다. 벌써 세차례나 상정된 하청 노동자의 원청 노조 직가입 문제가 부결났으니 말이다. 그리도 힘든 일인가? 원청이 하청 껴안기가. 어느 원청 노동자한데 물었다. "왜 대의원 대회에서 하청 직가입 문제를 자꾸 부결 시킬까요?"
원청 노동자는 이렇게 언성을 높혔다.
"야, 이사람아 당신 같으면 손해 볼 짓거리 하겠나?"비정규직은 정규직의 고용 방패막이?
손해볼 짓? 현장 원청 작업자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 같았다. 지금 원청과 하청이 섞여 일하는데 하청은 대부분 힘든 일에 종사하고 있다. 원청은 1~2개월 한차례씩 작업 장소를 근골격계 예방 차원서 바꾸고 있지만 하청인 나는 그 자리에서만 계속 작업하고 있다.
하청이 노조 직가입을 하게 되면 하청이 하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노조로 받아들이기가 싫다는 것이다. 어차피 과거엔 원청이 했던 일인데 좀 같이 하면 안 되나? 하청하는 일은 뭐 똥 묻히며 하는 일이던가? 참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청노동자에 대한 원청 노조 직가입에 반대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정리해고 때 유용하게 써먹기 위해서란다. 그런데 직가입 성사돼 버리면 그럴 수 없게 되니 반대한다는 것이란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고용 방패막이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이기적인가?
원청 사측은 우리 하청엔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왜냐고? 그런 고용문제가 불거지면 하청업체랑 계약해지해 버리면 간단히 끝날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용하기 간편하고 자르기 쉬
운 저임금 하청노동자를 위해 골치썩지 않아도 된다.
기업이 어려워졌을 때 가장 먼저 손대고 싶어 하는 것이 바로 높은 월급을 받아가는 원청 노동자다. 그렇지 않은가?
현대차노조는 무늬만 산별노조 그러나 현실에서 절반이 넘는 원청노조 대의원이 사내 하청노동자의 노조 직가입 문제를 반대하고 있다. 직가입이 부결되면 가장 좋아할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사측이다. 추가 비용부담 줄여주고 인간차별 계속하라고 부채질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어가보면 하청노동자 늘어나봐야 결국 원청 노동자 손해다. 그 진리를 이해 못하니 반대표를 던지는 것이다. 지금 반대표 던진 대의원들 부결되어 좋다고 웃고 있을지 모르지만 조만간 땅을 치며 통곡할 날이 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우물안 개구리처럼 어리석은 노조 활동을 그만하시라. 회사가 정리해고의 작살을 높이 쳐 들고 거만하고 교만한 노동귀족, 당신들을 언제 내리 꽂을까 기회만 엿보고 있는 게 안 보이나.
지금 현대차노조는 무늬만 산별노조다. 겉만 산별이지 알맹이는 기업별 노조다. 노조는 조직률이 생명이다. 사내 하청노동자를 직가입 시키면 조직률이 확대되고 막강한 힘이 생긴다. 길게, 넓게, 높게 보면 사내하청 직가입이 더 유리하다. 하지만 절반 넘는 대의원이 노조가 막강한 힘이 생기는 것을 싫어하는 거 같다. 사측과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사측은 끊임없이 노조의 조직률을 떨어뜨리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단 하나 바로 '파업 무력화'다. 원청노조가 파업을 해도 하청을 투입하면 공장 가동을 계속할 수 있다. 세 차례나 비정규직 직가입 문제에 반대표를 던져 부결로 이끈 현대차노조 대의원들, 참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