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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에도 가을이 깊어간다. 여름꽃들은 자취를 감추고 갈대가 한창이다. 벽을 타고 오르던 담쟁이 넝쿨도 이파리가 발갛게 물들어 가고 풀들도 성장을 멈춘 채 누렇게 변해 간다.

이런 계절 변화에 상관없이 무서울 정도로 푸른빛을 내며 커나가는 식물이 있다. 여름까지는 큰 성장이 없어 눈에 잘 띄지 않다가 가을이 되면 하루에 30cm 이상 뻗어 나간다고 하는 가시박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외래종인 가시박. 우리나라 박 넝쿨과 흡사하다. 이파리나 넝쿨손도 비슷하다. 언뜻 봐서는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꽃이나 열매는 확연하게 다르다. 숫꽃과 암꽃이 한곳에 피는 자웅동체로 연한 녹색을 띠고 있다. 열매도 도깨비 방망이 끝처럼 생겨서 잔털이 많이 달려 있다.

갈대밭이던 곳을 몇년 사이 가시박이 점령했다. 족히 500m가 넘는 거리다.
▲ 서울숲 선착장 앞을 점령한 가시박 군락 갈대밭이던 곳을 몇년 사이 가시박이 점령했다. 족히 500m가 넘는 거리다.
ⓒ 안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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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30cm 성장, 씨앗 60년 뒤에도 싹이 터

이 식물은 번식력은 가히 놀랍다. 한 줄기에 3-10개 정도 뭉치의 열매가 열리고 여기에 36개 정도의 종자가 들어 있다고 하며, 산술적으로 한포기당 2만개 이상의 종자를 생산한다고 한다. 한해살이 풀인 가시박의 종자는 발아율이 상당히 높고, 종자의 휴면기도 60년에 이른다고 한다. 올해 가시박의 씨가 60년 후에도 싹을 틔운다는 사실은 이 식물이 얼마나 생명력이 왕성하고 퇴치하기가 어려운지 동시에 일깨워 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식물학자들은 가시박을 식물계의 황소개구리로 부른다. 이런 가시박의 식물 생태계 교란은 자못 심각하다. 나무나 다른 식물을 감고 올라 광합성을 방해하고 특유의 제초성분을 배출하여 주변 모든 식물체를 3년 안에 고사시킨다고 한다.

실제 한강 여러 곳에는 아카시아나무 등을 뒤덮은 가시박 넝쿨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이런 곳은 몇 년 지나면 나무가 고사한 후 온통 가시박 넝쿨만 존재하고 된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숲 선착장 부근. 몇 년 전 갈대숲이 물결치던 뚝에서는 가시박 넝쿨 이외에 다른 식물을 찾기가 쉽지 않다.

옥수역에서 한남역을 지나는 자전거 도로 옆. 나무들이 가시박 덩쿨에 뒤덮여 죽어가고 있다.
▲ 가시박에 감긴 아카시아 나무(한남역 부근) 옥수역에서 한남역을 지나는 자전거 도로 옆. 나무들이 가시박 덩쿨에 뒤덮여 죽어가고 있다.
ⓒ 안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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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사이 이런 가시박 군락이 놀라울 정도로 늘어나고 있다. 올해 한 두 줄기 보이는 곳은 내년이면 어김없이 대형 군락지가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씨앗 덩어리를 감싸고 있는 가시들은 동물의 털이나 사람들의 옷에 달라붙기 쉽고 물에도 잘 떠다닌다고 한다. 이런 추세라면 온 한강이 가시박 천지가 된다는 가정도 그리 현실성이 없지는 않다.

가시박 제거에 서울시가 나서라

가시박의 점령은 비단 한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낙동강과 섬진강, 임진강 부근에서도 가시박이 발견된다는 기사가 있다. 또 가시박을 퇴치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그런데 한강에서는 수년째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가시박 군락에 대해 어떤 조치들도 취한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내가 자전거로 출근하는 뚝섬에서 원효대교 북단까지 13km 남짓한 거리. 족히 30군데가 넘는 가시박 군락이 한강을 점령하고 있다. 그 군락 밑에는 토종의 풀과 나무들이 고사하고 있다. 자연 생태계 스스로에게 맡겨 놓기에는 상태가 너무 심각하다.

근처에 수십평에 이르는 가시박 군락이 10여곳 이상 번성하고 있다. 줄기가 도로에 나오기까지 한다.
▲ 동작대교 밑 가시박 군락 근처에 수십평에 이르는 가시박 군락이 10여곳 이상 번성하고 있다. 줄기가 도로에 나오기까지 한다.
ⓒ 안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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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강 시멘트를 걷어내고 녹색의 명품 한강을 만들겠다는 일명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 공사가 한창이다. 반포대교에는 양쪽으로 길게 분수를 뿜어내는 공사가 거의 마무리 단계.

저녁에는 눈부신 조경을 켜고 분수를 뿜는 장관을 연출한다. 또 시멘트 뚝방을 흙으로 덮고 그 위에 나무를 심고 있다. 한강을 온갖 꽂들이 피고 지는 시민들의 휴식처로 만들겠다는 한강 르네상스 사업, 가시박의 한강 점령으로 효과가 반감되지 않을까 우려가 든다.

가시박 열매에 달린 가시는 청바지를 뚫을 정도로 날카로워 주의가 필요하다.
▲ 가시박 열매 가시박 열매에 달린 가시는 청바지를 뚫을 정도로 날카로워 주의가 필요하다.
ⓒ 안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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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이 60년 후에도 싹을 틔운다는 가시박, 지금 한창 꽃이 피고 열매가 들어 찰 때다. 열매가 여물어 땅에 떨어지기 전에 넝쿨을 걷어 내는 것이 가시박 번창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에 지금이 적기라 할 수 있다.

해마다 반복적으로 가시박 제거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시민들의 휴식공간인 한강에서 가시박의 번창과 식물 생태계의 교란은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서울시의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응을 주문한다.


태그:#가시박, #생태 교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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