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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가뭄이 심각하다. 비가 오지 않아 타들어가는 농작물을 지켜보는 농심도 타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쌀 직불금 사태를 보는 농심은 이보다 몇 배는 더 타들어가고 있다. 이번 사태는 우리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해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농민들의 상처받은 가슴은 누가 감싸고, 어떻게 치유할지 우리 사회는 같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원칙적인 문제제기에 앞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몇 가지 논점이 있다. 물론 농사를 짓지 않는 인사들이 쌀 직불금을 받았다는 사실도 문제지만, 이를 해결하는 방식 그 자체에서 우리 사회가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 번째는 공직자 중 부당하게 쌀 직불금을 받은 사람의 명단을 공개할 것인가의 논란이다. 이 문제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공개법)'을 살펴보면 간단히 해결된다. 정보공개법 9조 1항 6호에는 "당해 정보에 포함되어 있는 이름·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개인의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는 정보공개법상 공개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예외조항이 있다. "공공기관이 작성하거나 취득한 정보로서 공개하는 것이 공익 또는 개인의 권리구제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정보"는 공개하도록 있다.

 

쌀 직불금 관련 명단이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한다. 특히 공직자들에게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한다는 측면에서 비록 개인정보이기는 하지만 공개하는 것이 우리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자료의 무단폐기' 떳떳하게 밝히는 감사원

 

두 번째 문제는 감사원의 태도이다. 감사원은 "자료의 양이 방대해 농촌공사의 컴퓨터를 빌려 썼다가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기본 데이터 모두를 삭제했다"고 밝혔다. 필자는 이 발언을 보고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감사원 관계자 스스로가 기록을 무단폐기했음을 떳떳하게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의 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기록물관리법)에는 보존기간이 도래하여 기록물을 폐기할 때에는 반드시 기록물평가위원회 심의와 기록물관리전문요원 심사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이를 어기고 기록을 무단파기 했을 경우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얼마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의 기록 유출 논란보다 훨씬 더 심각한 사안이다. 기록물관리법상 10년 이상 보존해야 하는 감사 자료를 폐기 절차도 거치지 않고 파기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감사원 스스로 자백을 한 셈이 된다. 이 기록이 건강보험공단에도 존재한다고 하지만, 감사원이 기록물 무단 폐기에 대한 책임을 벗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록물관리법을 근거로 볼 때 다른 공공기관에 기록이 있다고 해서 그 기록을 적법한 절차 없이 무단으로 폐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봉하마을 논란과 관련하여 신속하게 고발조치를 취했던 국가기록원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도 감사원을 검찰에 고발해야 기록관리 주무기관으로 위상을 높일 수 있다.

 

세 번째 문제는 우리나라 국회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20일 정형근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공단에서 명단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를 개인정보보호 차원에서 공개하지 않겠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이 답변은 상당히 논란의 소지가 있다.

 

증언및감정에 관한 법률은 "국회로부터 공무원 또는 공무원이었던 자가 증언의 요구를 받거나, 국가기관이 서류제출을 요구받은 경우에 증언할 사실이나 제출할 서류의 내용이 직무상 비밀에 속한다는 이유로 증언이나 서류제출을 거부할 수 없다(제4조)"라는 규정을 두고 있다. 다만 군사·외교·대북관계의 국가기밀에 관한 사항에 대해서만 일부 예외를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국회의 서류제출 요구를 공단이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거절할 근거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너무나도 당당하게 탈법적인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정법 위반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야

 

마지막으로 정부는 공직자와 비공직자의 구분 없이 이 문제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쌀 직불금을 허위로 수령한 것 자체가 농지법이나 공문서 위조에 해당될 수 있어 이는 단순한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 실정법 위반 소지가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일 사건으로 최대 규모의 피의자가 생겨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곪아있는 부패를 이번 기회에 모두 제거하지 않는 이상 우리 사회의 투명성과 책임성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특히 FTA 등으로 시름에 잠겨 있는 농민들은 더 없이 답답하기만 할 것이다. 단순한 사과로는 그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 없다. 정부는 철저히 진상을 밝혀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가을 가뭄의 갈라지는 땅처럼 이번 사태와 관련해 국민들의 가슴도 갈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정치권과 정부는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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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전진한 기자는 정보공개센터(02-2039-8361, www.opengirok.or.kr) 사무국장입니다.


#쌀직불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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