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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개 언어로 완역되거나 부분적으로 번역되어 전세계로 알려진 소설 <돈키호테>로 유명한 스페인 문학이 탄생시킨 최고의 작가 세르반테스. 1574년 9월 외과의사인 아버지 로드리고의 일곱자녀 중 넷째로 태어난 그는 1564년 세비야에서 한 연극을 보고 감명받아 극작가로 성공하는 꿈을 꾼다. 1568년 인문학교에 다니던 그는 인문학교 교장이 왕비를 추모하는 작품집을 준비하는데 참여해 첫 시 작품을 내놓는다.

 

이후 견문을 넓히고 일자리를 찾기 위해 추기경의 시종으로 이탈리아로 건너가 일하다, 현지에서 스페인 보병부대에 입대해 로마, 나폴리, 밀라노, 피렌체 등 이탈리아 각지를 돌아다니고, 1571년 10월 7일 무적을 자랑하는 터키함대를 레판토 해협에서 무찌른 전투에 참전해 세 발의 총탄을 맞고 평생 왼쪽팔을 못쓰게 되었다.

 

'레판토의 외팔이'라는 명예로운 별명을 얻은 그는 이후 알제리 해적들에게 붙잡혀 5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포로생활을 하기도 했고, 가까스로 탈출해 안나 프랑까 데 로하스라는 유부녀와 사랑에 빠져 유일한 혈육인 딸을 얻기도 하고, 똘레도의 에스끼비아사를 여행하는 길에 19살의 젊은 여인을 만나 결혼하지만 나이 차를 극복하지 못해 사이가 원만하지 않기도 했고, 무적함대의 밀 보급 담당관으로 안달루시아 지방의 세금 징수원으로도 일하다 회계 문제로 감옥에 투옥되기도 했다.

 

그 삶 속에서 세르반테스는 처녀작인 목가소설 <라 갈라떼아>를 1585년 출판하고, 마드리드를 여행하며 여러 편의 극작품을 썼다. 이 중에 <누만시아>와 <알제리에서의 대우>는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한다. 세비야에서 회계 문제로 옥에 투옥되었을 때 <돈키호테>를 구상하고 1604년 <돈키호테> 1권을 탈고하고, 모범소설 및 극작품과 막간들을 써오다 1605년 2월 마드리드에서 <돈키호테> 1편을 출간하고 큰 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작품의 판권을 출판사에 넘겨 주어 실질적인 경제적 이득은 얻지 못했다. 그래도 이 위대한 작가는 1616년 4월 병환으로 쓰러져 생을 마감할 때까지 서사시를 제외한 모든 주요 문학장르에 손을 댔고 왕성한 작품활동을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16.17세기 스페인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들

 

말그대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세르반테스.

그의 문학세계를 접할 수 있는 동시에 진주처럼 반짝이는 교훈을 담고 있는 <모범소설>의 중편소설 12편 중 3편이 담긴 책을 도서실에서 발견하고 그의 달콤한 이야기들 속에 빠져들었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검색해보니, 현재는 절판되었다는 책 <질투심 많은 늙은이>가 바로 그것이었다. 세르반테스 선집으로 나온 <질투심 많은 늙은이>는 그의 중편소설 중 한편으로 책에는 그외에도 <피의 힘>, <유리석사> 2편의 소설도 담겨있다. 1613년 7월 <모범소설>을 출판하면서 세르반테스가 독자들에게 전하는 글과 헌사도 책머리에 자리하고 있다. 세르반테스는 자신이 <모범소설>이라 이름을 붙인 12편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이 유익하고 보람있는 교훈과 결실을 얻게 될 것이라 자부하고, 자신의 고유한 재능만으로 잉태한 작품을 그를 후원하는 은인인 레모스 백작에게 헌사하고 있다.

 

사랑을 소재로한 9편의 <모범소설> 중 유일하게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는 작품인 <질투심 많은 늙은이>는, 젊은 시절 방탕하게 살며 여행하다 신대륙으로 건너가 성실하게 일해 큰 돈을 벌고 다시 고향 세비야로 돌아온 68세나 된 늙은이가 13세밖에 되지 않은 소녀를 아내로 맞이하고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안락한 결혼생활에 임하지만, 헛된 질투심과 불안감으로 어린 아내를 바깥세상과 격리시키고 집의 모든 문을 굳게 닫아버리지만, 감미로운 노랫소리와 자유를 찾는 이들의 강한 내부의지 앞에서는 무기력하다는 것을 여실히보여준다.

 

세르반테스가 이 소설을 쓸 당시는, 스페인 왕국과 유럽사회가 중세와 근대 사이의 교차점에 처해 있었다고 한다. 특히 16세기에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매우 열등한 위치에 있었고, 여성의 지위는 노예는 아니더라도 높은 등급의 하녀로서의 위치에 있어, 결혼조차 마치 주인이 자신의 땅을 처분하는 것처럼 부모나 보호자들의 몫이었고, 소설에서처럼 결혼을 하게 되면 남편에게 예속되었다 한다.

 

다시말해 세르반테스는 68살의 돈많은 노인에게 13살 소녀를 팔아먹은 부모와 이를 용인해주는 당시 사회를 실랄하게 비판하고, 불행한 여성들이 꿈꾸는 자유의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피의 힘>은 세르반테스의 모든 소설 중 가장 직접적인 성적묘사가 드러난 작품으로 간주된다고 한다.

이야기는 무더운 여름밤 산책을 나온 시골귀족인 가족들 앞에서 괴한들에게 납치되어 겁탈당한 딸이 기지를 발휘해 그들 손에서 빠져 나오지만 결국 원치않는 임신을 하지만 아이를 낳고 잘 키우다, 그녀를 납치, 겁탈한 괴한이 부유한 귀족집 자제임을 어린 아이가 경마장에서 머리를 다치게 되는 과정에서 알게 되고 그 사실을 괴한의 부모에게 전하고, 이탈리아로 유학간 아들을 불러 그들을 결혼에 이르게 한다는 몇 개 사건들로 전개된다.

 

세르반테스는 이 작품에서 순결을 빼앗긴 여성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면서 당시 결혼관이나 결혼과 순결의 문제를 드러내고, 인간의 죄악과 속죄, 마음의 정화를 책임과 의무가 연결된 결혼을 통해 풀어낸다.  

 

<유리석사>는 11살의 영리한 소년이 스페인에서 두 신사의 후원으로 법학을 공부하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등을 군인들과 함께 여행하다 스페인으로 다시 돌아와, 그를 연모하는 여인의 어리석음 때문에 광기의 지식인으로 변한 그는 날카로운 비판적 재능과 경이로운 해박한 지식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사람들로부터 추앙받다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 광기를 치유한 뒤 아무것도 남지 않았고, 이후 세상을 떠나면서 용맹과 덕망을 겸비한 군인으로서의 명성만을 남겼다는 이야기다.

 

이 속에서 세르반테스는 당시 사회 모든 계층의 인간들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유리석사의 말장난과 같은 대화와 사람들의 입을 빌어 솔직하게 피력하고 비판한다. 이는 <돈키호테>에서도 많이 나오는 말의 기교법으로 17세기 바로크 문학의 특징인 '기지주의'에 해당된다고 한다.

 

괴테는 세르반테스의 <모범소설>을 "즐거움과 교훈을 주는 진정한 보물이며, 세르반테스에게 내가 생각해온 똑같은 예술의 원칙들이 실천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즐거웠다."고 말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만큼 세르반테스가 그의 작품을 통해 당시 스페인의 관습과 폐해들의 문제를 풍자하고, 그 변화와 개혁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예술작품에 녹아냈다는 말일 것이다.

 

아무튼 이 가을날 '레판토의 외팔이' 세르반테스가 태어난지 460년이 된 지금, 그의 발자취를 쫓아 풍자.유머의 작품세계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 질투심 많은 늙은이 / 미겔 데 세르반데스(지은이) / 오늘의 책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세르반테스 모범소설 1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박철 외 옮김, 오늘의책(2003)


#세르반테스#질투심많은늙은이#모범소설#교훈#스페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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