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것과 새 것
2007년 17대 대선에서 민주당의 정동영 후보는 총 617만명의 지지를 받았고 이는 총투표자의 26%에 해당한다. 한나라당 후보 이명박은 1149만명의 지지 받았고 이는 총투표자의 48.4%에 이르렀다.
지난 18대 총선에서 보수세력로 분류되는 정당들, 한나라당 37.5%, 친박연대 13.2%, 자유선진당 6.9%를 획득, 도합 57.5%에 이르렀다. 통합민주당은 25.2%, 민주노동당 5.7%, 진보신당 2.9%, 창조한국당 3.8%로 이들 진보민주계 정당의 총 득표율은 37.6%에 그쳤다. 보수계열 전체의 57.6%와 비교하여 통합민주당 지지도 25.2%는 절반에 못미치는 수치인데, 대통령선거시기의 사표방지 투표행태를 고려하면 17대 대통령 선거의 결과와 별반 다름이 없다.
17대 대선과 18대 총선을 경유하면서, 소위 경제대통령-신자유주의 선진화 노선의 위력이 얼마나 맹위를 떨치는지, 그리고 노무현 프레임에 갇혀서 네탓-내탓 공방에 세월을 보내다가 낡은 정계개편에 머물렀던 민주당의 ‘앙시앙 정치공학’이 얼마나 무력했던지 똑똑히 보았다. 새 것은 이명박-한나라당이고 낡은 것은 노무현-민주당이었다.
최근의 정당지지도를 보면, 10월 18일 내일신문-한길리서치 조사에서 한나라당 29.1% 민주당 12.8% 지지정당 없음 47.5% 수준이고, 이러한 트랜드는 10월 9일 중앙일보 조사에서 한나라당 29.8%, 민주당 10.2% 지지정당 없음 50.4% 의 결과와 대동소이하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더욱 가중된 경제난 속에서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에 대한 기대가 허물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없는 지경에 있다고 분석된다.
정치 여론조사는 국민의 정치의식의 단면을 보여준다. 16대 대선과 17대 총선에서 노무현과 민주당이 획득했던 높은 지지율이나 17대 대선과 18대 총선에서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획득했던 높은 지지도는 현정권 심판과 사회변화에 대한 기대를 나타내는 증거였다.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의 높은 지지도와 이전선거에서 민주당의 압승 역시 현 부시정권에 대한 심판과 미래로의 변화를 열망하기 때문이다. 변화의 중심이 되지 않으면, 정치 역시 낡은 상품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
새 것과 낡은 것,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보수는 낡고 진보는 새 것인가. 진보 안에도 낡은 것이 있고 보수 안에도 새 것이 있다. 이명박 시장시절 청계천과 버스중앙환승체계는 새 것이었다. 선진화 구호 아래 낡은 보수세력을 재편하겠다는 것도 새 것이었다. 민주당이 총선 전에 이합집산 한 것은 낡은 것이었다. 민주노동당이 구래의 NL-PD 간 갈등에 분열된 것도 낡은 것이었고, 전교조가 교원평가제 반대를 앞세우느라 교육소비자인 국민들과 멀어지는 것도 낡은 것이었다.
좋은 가치와 나쁜 가치, 이 기준은 정치권으로 들어오면 무용지물이 된다. 민주당의 4대개혁 같은 경우처럼, 좋은 것을 하겠다고 약속해놓고 이행하지 않으면 나쁘다. 한나라당의 경우 차떼기 정당-나쁜 정당이 천막당사로 옮겨 반성하고 속죄하면 나쁘더라도 가상하게 봐준다.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가 극에 이르자 한국에서 이명박의 선진화 전략에 근본적인 회의를 보내는 분위기다. 미국식 금융시스템을 답습하는 것은 낡은 것이자 나쁜 것이다.
진보민주진영, 함께 투쟁하라
핵분열상을 보이는 진보민주진영을 탓하고 싶지 않다. 그래왔다. 해방과 전쟁, 반공반북-보수지배 하에서 이만큼 정도만 분열하는 것도 장하다. 오히려 지난 민주정부 10년간 성장하고 확장된 진보의 스펙트럼은 새 것을 담는 그릇의 너비를 확실히 넓혀가고 있다고 평가하고 싶다. 여기에 미국 민주당의 기회의 형평주의도 담고, 유럽대륙의 합리적 공화주의도 담으며, 북유럽 강소국의 현대적 사회민주주의도 담을 수 있으리라.
백범 김구 암살, 몽양 여운형 암살, 죽산 조봉암 처형. 이승만 독재와 박정희 독재하 숱한 진보민주인사의 처형, 전두환의 80년 5월 학살과 같은 파쇼하에서 진보민주세력이 생존해왔던 시대에 비하면, 지금 2008년 현재의 진보민주세력의 분열은 민주정부 10년이라는 산파가 낳은 좋은 것, 옥동자다.
현재 범진보민주진영은 정당구조에서부터 분열되어 있다. 알다시피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사회당 등이 있고 해당 정당 내에서도 균열구조가 있다. 노동조합 조직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으로 분열되어 있다. 민주노총 내에서도 크게 3-4갈래로 나뉘고 한국노총 내에서도 몇 갈래가 있다. 시민사회단체나 각종 진보진영의 연구소들도 견지하고 있는 노선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보수를 포괄하는 공동체주의로부터 건강한 자유주의 노선, 유럽 사회주의 노선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분파와 정파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에 따라 차이는 드러난다. 그러나 정치노선에서 현재권력과의 전선을 방기하는 것, 또는 배타적으로 전선을 독점하려하는 것은 용서될 수 없다. 새로운 통합을 지향하지 않는 분열은 낡은 것이다. 아무리 새로운 사조를 일으키고 새로운 정치조직을 건설하며 새롭게 대중을 획득해 가더라도, 그것이 보수주류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분열이라면, 더욱 낡고 나쁜 것이 된다. 대한민국 정치사가 웅변하고 있듯이 한국사회 진보민주의 생존방식은, 보수주류에 대응하는 단일전선을 형성하는 것이다.
스웨덴 짤쯔요바덴 협약을 범진보민주진영의 단결에 도입하고 싶다. 유럽대륙의 노사정 3자주의 원리를 도입하고 싶다. 대표성, 책임성, 전문성에 기초한 ‘신뢰’가 필요하다. 공동의 조사통계위원회에 근거하여 문제를 하나씩 정리해 나가며, 합의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민주적으로 의결하고, 일단 합의되면 산하 어떠한 소조직도 이를 이탈하지 않는 ‘믿음직한 단결’을 건설하는 방법 말이다. 단결하면 승리한다. 승리의 전리품을 쪼개는 일은 나중의 일이다.
사상의 빈곤, 이론의 부재를 탓한다면, 미련하다.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조건을 먼저 요구한다면, 비겁하다. 때에 이르지 못했다고 공동전선을 유예한다면 그것은 역사적 범죄이다. 새 이론과 사상은 낡은 것과 싸우면서 실천속에서 건설된다.
정치는 모름지기 대중의 삶의 요구를 대표하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대중의 삶의 요구는 분명하다. 그러나 대표가 없다. 대표한다는 것은 낱낱의 깃발이 아니다. 촛불을 들고 나온 수백만 시민들은 스스로 대표가 될 수밖에 없었다. 현재 대표없이 싸우고 있는 대중, 앞으로 더 많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대중의 직접투쟁과 범진보진영이 만나자면, 광범위한 하나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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