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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짝의 고무신처럼 어딜 가든 정다운 사랑도 있는 법이고, 꼬부랑 할머니의 꼬부랑 지팡이처럼 닮은 꼴 사랑도 있는 법이며, 상이군인의 목발처럼 서로 다르지만 저 한쪽만으로는 결코 바로 서지 못하는 간절한 사랑도 있는 법이다.

 

북과 북채처럼 맨날 두들겨 맞고 두들겨 패는 딱한 사랑도 있고, 닮은 구석이라곤 눈꼽만치 없어도, 정물화 속 사과와 꽃병마냥 함께 나란히 서면 신통하게도 더없이 자연스레 어울릴 줄 아는 그런 그윽한 사랑도 있는 법이다.

 

허수아비와 참새같이 서로 만나기로 하면 쫓고 달아나야만 하는 얄궂은 사랑도 있고, 물 위에 뜬 기름처럼 아무리 가까이 다가가려 해도 어쩔 수 없이 헤어져 떠돌아 다녀야만 하는 막막한 사랑 또한 있는 법이다.

 

어디 그뿐이랴. 돌멩이와 발부리마냥 서로 껴안기만 하면 아픈 생채기를 만들어 피를 흘리게 만들 뿐인 애처러운 사랑도 있고, 꽃을 피울 수 없는 까닭에 찾아오는 별도 나비도 없이, 오직 저 혼자 열매를 맺고 씨앗을 삼켜야 하는 무화과나무의 고독한 사랑 또한 세상엔 있는 법이다. - 임철우, <그 섬에 가고 싶다> 중에서

 

 

언제부턴가 "Love is" 란 화두(話頭)가 홍수처럼 범람하기 시작했다. 시도 때도 없이 치고 들어오는 "Love is?"란 돌발 질문 앞에서 말문이 막힌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 덕분에 시집이나 격언집에서 사랑의 정의를 발견하면 따로 메모하는 기특한 버릇까지 생겼다.  

 

"사랑으로 하는 의무는 결코 지루하지 않다. 거기에는 생명이 있다."(머튼), "말로 하는 사랑은 쉽게 외면할 수 있으나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랑은 저항할 수가 없다."(무니햄), "사랑 없는 권력은 무분별하고, 권력이 수반되지 않는 사랑은 감상적이며 비참하다."(마틴 루터 킹), "이성간의 사랑은 우정의 영역 안에 들어오면, 즉 서로의 뜻이 거리낌없이 전달되면 곧 사라져 버린다."(몽테뉴), "잘못을 저지른 사람조차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특권이다."(아우렐리우스)‥‥‥.

 

물론 "사랑은 오래 참고"로 시작하는 고린도전서 13장도 빼놓을 수 없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공지영은 <착한여자>에서 단순명쾌한 어조로 사랑을 이렇게 정의했다. "좋은 옷 보면 생각나는 거, 그게 사랑이야. 맛있는 거 보면 같이 먹고 싶고 좋은 경치 보면 같이 보고 싶은 거 나쁜 게 아니라 좋은 거 있을 때 여기 그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거 그게 사랑인 거야. 그건 누가 많이 가지고 누가 적게 가지고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닌 거야."

 

또한 지난날 가난 속에서 보석처럼 빛나던 부부애를 감동적인 필치로 그려낸 김소운의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이나 황새 한 쌍의 눈물 겨운 애정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수놓은 김규련의 수필 '거룩한 본능'도 잊을 수 없다. 특히 '거룩한 본능'의 비극적 결말은 아직도 알싸한 여운으로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다.

 

그러나 비극적 사랑의 진수는 뭐니뭐니해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리어왕, 맥베스, 햄릿, 오셀로)일 것이다. 그중에서 자식들의 사랑을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말의 경중(가볍고 무거움)으로 계량해 확인하려 했던 리어왕의 비극적 결말은 허무하기 이를 데 없다.

 

아버지가 입술의 말이 아닌 마음속의 진심을 더 알아줄 거라 철석같이 믿고 "나는 잠자코 사랑하고 있어야지....나의 애정은 말 못할 만큼 풍부하니까" 라고 독백하던 코델리어의 순수한 믿음은 불신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부성(父性)에 의해 무참히 배신 당한다.

 

몇해 전 방영되었던 '눈사람'(MBC)이란 드라마에도 이런 대사가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가슴속에 담아둔 사랑이 있는데 자랑하고 싶어도 꺼내 보이면 눈사람처럼 녹아 버릴까봐 그게 겁나요." 코델리어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듯싶다.

 

그러고 보면 사랑은 수학 공식이나 국어사전처럼 획일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만약 사랑이란 말이 "이것, 저것"처럼 지시적 의미로만 사용된다면 "Love is?"란 화두로 고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소설가 임철우 씨는 <그 섬에 가고 싶다>에서 "사랑에도 온갖 형태, 빛깔,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중엔 "두 짝의 고무신처럼 어딜 가든 정다운 사랑"도 있고 "꼬부랑 할머니의 꼬부랑 지팡이처럼 닮은 꼴 사랑"도 있다. 반대로 "상이군인의 목발처럼 서로 다르지만 저 한쪽만으로는 결코 바로 서지 못하는 사랑"도 있다.

 

그런가 하면 "북과 북채처럼 맨날 두들겨 맞고 두들겨 패는 딱한 사랑"도 있고 "허수아비와 참새같이 서로 만나기로 하면 쫓고 달아나야만 하는 얄궂은 사랑"도 있고 "물 위에 뜬 기름처럼 아무리 가까이 다가가려 해도 어쩔 수 없이 헤어져 떠돌아 다녀야만 하는 막막한 사랑"도 있다. 그뿐 아니라 "돌멩이와 발부리마냥 서로 껴안기만 하면 아픈 생채기를 만들어 피를 흘리게 만들 뿐인 애처로운 사랑"도 있다. 이런 사랑은 가급적 피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리라.

 

그러나 서머셋 모옴이 <레드>에서 밝혔듯이 서로 피 흘리는 사랑보다 더 비극적인 것은 "무관심"이다. "사랑의 비극은 죽음이나 이별이 아닙니다. 만약 두 사람이 계속 같이 있었다면, 둘 중 한 사람의 사랑이 식어 버리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렸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오, 몸과 영혼을 다 바쳐 사랑한 여자가, 한순간도 눈에서 떼어 놓는 것을 견딜 수 없을 만큼 사랑했던 그 여자가, 이제는 전혀 대수롭지 않은 존재로 바뀌어 버리는 것은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일이랍니다. 사랑의 비극은 바로 무관심이지요."

 

임철우가 말한 "꽃을 피울 수 없는 까닭에 찾아오는 별도 나비도 없이, 오직 저 혼자 열매를 맺고 씨앗을 삼켜야 하는 무화과나무의 고독한 사랑"도 무관심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사랑에는 온갖 형태, 빛깔, 관계가 있다. 그중에 어떤 사랑을 선택할 지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기왕이면 비극적 사랑보다 "정물화 속 사과와 꽃병마냥 함께 나란히 서면 신통하게도 더없이 자연스레 어울릴 줄 아는 그런 그윽한 사랑"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임철우 지음, 살림(1991)


태그:#임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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