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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제 나라 땅이라고 새끼들 버리고 돈 벌러 왔는데... 지금도 냉동실에서 눈 뜨고 있다고... 우리 언닌 죽어서 눈도 못 감았어, 찢긴 상처 보면 말도 안 나와..."

 

23일 오전, 경찰은 사흘 전 벌어진 서울 논현동 D고시원 방화사건 피의자 정아무개(30)씨를 데리고 현장 검증에 나섰다. 전날 법원으로부터 구속영장이 발부된 정씨는 마스크와 모자를 눌러쓰고 수갑을 찬 채 오전 10시께 현장에 도착했다.

 

경찰은 정씨를 데리고 재빠르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지만, 사건 현장 앞 골목은 먼저 도착한 유족들의 항의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유족들은 경찰의 폴리스라인을 거세게 밀어붙이며 정씨를 향해 거친 욕설을 퍼부었다. 유족들이 의경들의 모자를 뺏고 잡아당겨 한때 폴리스라인이 무너지기도 했다. 골목 여기저기에 퍼져 있던 유족들도 "죽여라"라고 고함을 질렀다.

 

정씨의 칼에 찔려 사망한 고 이월자(50·재중동포)씨의 여동생 이아무개씨는 "칼에 서른 군데가 찔렸다. 경찰이고 건물주고 다 어디 있었냐"고 주저앉아 대성통곡하기도 했다.

 

이씨는 "언니가 먹고살겠다고 새끼들까지 버리고 돈 벌러 왔는데... 중국에서도 이런 일은 없었다"며 "이게 무슨 선진국이야, 중국에서도 죄 없는 사람 죽이지는 않는다"고 허공에 주먹질을 해댔다. 또 "무슨 영웅이라고 마스크까지 씌웠느냐, 얼굴을 보여라"며 거칠게 항의했다.

 

사망한 이씨의 가족은 4남매로 사건 소식을 듣고 어제(22일)서야 부랴부랴 입국했다.

 

ⓒ 유성호/사진공동취재단

'눈물 범벅' 유족들 "누구라도 나와서 설명 좀..."

 

같은 날 오후 2시 딸과 함께 입국한 차영선(재중동포·고 박정숙씨 남편)씨도 정부와 경찰에 거친 불만을 쏟아냈다. 차씨는 "사람이 그렇게 죽었는데, 누가 나와서 설명하는 사람 하나도 없다"면서 "유족들도 지금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차씨는 "경찰서에 갔더니 딱 5분 설명하고 돌아가라고 하더라"며 "정부와 경찰, 건물주 아무라도 나와서 경위를 설명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흥분했다. 또 "한국 사람들이 중국에 들어와서 이런 상황이 됐다면 어땠겠느냐"며 "누구라도 이야기를 좀 해달라"고 답답한 가슴을 호소했다.

 

같이 현장에 나온 차씨의 사위도 "방에 휘발유 뿌리고 불을 지르고, 칼을 들고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데, 현장에 보안요원이라도 지켰으면 이런 일 없었을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장 검증 장소에는 이들 외에도 사망한 민아무개(재중동포)씨와 조아무개(재중동포) 유족들도 나왔다.

 

20여분간 거칠게 항의하던 유족들은 김해성(지구촌사랑나눔 이사장) 목사가 나선 후에야 겨우 진정됐다.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대표를 지낸 김 목사는 사건 이후 순천향병원 등 빈소가 차려진 병원 3곳을 돌며 유족들과 대책을 마련하는 중이다.

 

김 목사의 충고로 진정된 유족들은 길거리에서 정부와 경찰에 대책을 촉구하는 요구안을 발표했다. 유족을 대표해 요구안을 읽은 차씨는 "곧바로 피해자대책회의를 구성하고 부상자 치료와 보상관계도 공동행동 하겠다"고 밝혔다. 또 정부에 대해 "적절한 보상대책을 마련하고, 사망자를 한 장소에 모은 뒤 합동분향소를 설치해 달라"고 요구했다. 차씨는 "정부와 경찰은 사건 경과와 진행 과정, 부상자에 대해서도 설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족들은 피해자대책회의 구성 등에 관한 실무를 김 목사에게 일임했다. 현장 검증은 11시5분께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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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고시원 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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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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