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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웬조리에서 보내는 마지막 하루
 
르웬조리에서 보내는 마지막 아침이었다. 눈이 떠지는 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침낭을 말았다. 그동안 늦게 일어난 것에 대한 죄책감을 덜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대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서였다.
 
매번 아침마다 짐을 싸느라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겨를이 없었던 나였지만, 오늘은 일찍 일어난 덕분에 아침 반찬을 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도움은, 항상 부지런히 아침을 준비했던 대원들에 대한 보답이라고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마지막으로 구호를 외친 뒤, 대원들은 즐겁지만 아쉬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산길인 데다가 고도도 비교적 높은 편이 아니어서 산행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진흙탕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알파인 스틱으로 진흙탕 속을 저어서 숨어있던 나무줄기가 나오면, 그것을 징검다리처럼 밟고 건너갔다. 몇분 채 지나지 않아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계곡도 많았다. 정해진 등산길이 없었기 때문에 대원들은 주로 계곡 옆을 따라 산을 내려갔다. 그런데 계곡 옆 바위는 매우 미끄러워서, 지나갈 때 자칫하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조심'이라는 단어가 귀에 박힌 지 오래였지만, 하산이 끝나기 전까지는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산장에서 오스트리아인 가족을 만나다
 
산행을 시작한 지 6시간 쯤 지나자,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산행 첫날 우리가 들렀던 냐비타바(Nyabitaba) 산장(2651m)이었다. 감회가 새로웠다. 산행 첫날, 물도, 전기도 흐르지 않는 냐비타바 산장에서 보내는 하루가 얼마나 불편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런 생활을 해온 것처럼 느껴졌다.
 
산장에는 며칠 전 대원들처럼, 산행 첫날인 오스트리아인 가족이 머무르고 있었다. 대략 8~10명 정도로 보이는 대규모 가족이었다. 그들은 정상 등반 준비물도 잊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족들끼리 이런 험난한 산에 오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아웃도어 프로그램 이사이신 대장님은, 유럽에는 아웃도어 문화가 많이 발전해서 이런 경우가 흔하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자 왠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나 같은 경우는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스케줄에 쫓겨 아웃도어 활동을 많이 접하지 못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것은, 이러한 경우가 나뿐만 아니라 학업을 최우선으로 두는 한국 청소년들 대부분에게 해당된다는 점이었다. 그것이 '한국 청소년 오지탐사대'가 결성된 계기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가이드, 포터와 작별인사를 나누다
 
또 한 번 내게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면서, 나는 오지탐사대원들과 함께 일행에게 인사를 한 뒤 다시 하산하기 시작했다. 첫날 올라올 때보다 훨씬 더 빠르고 여유롭게, 대원들은 산행의 시작점이었던 르웬조리 관리사무소에 도착했다.
 

 
어제만 해도 볼 수 없었던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대원들에게 예전처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인사를 건네주었다. 나는 오래간만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기분이 묘했지만, 마음이 매우 편안해졌다. 비로소 6박7일간의 여정을 무사히 마쳤기 때문이었다.
 
대원들은 숙소로 떠나기 전, 그동안 함께했던 가이드, 포터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살아가는 환경과 언어가 다르지만, 6박7일간은 한 마음이었던 사람들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작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호텔 직원들과 대원들의 '무사귀환' 축하 파티
 
대원들은 버스를 타고 산행 전 머물렀던 선샤인(Sunshine) 호텔에 도착했다. 버스가 호텔 앞에 도착하자 호텔의 직원들이 대원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일주일째 씻지 못한 더러운 모습이었지만, 그들의 환대는 변함이 없었다.
 
배가 고팠던 대원들은 짐을 정리한 뒤 곧바로 식당에 들어갔다. 식당에는 오렌지 주스가 담긴 작은 컵들이 보였는데, 대원들은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처럼 주스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눈치 볼 것없이 끊임없이 마셨다. 갈증 앞에서는 부끄러움도 없었다.
 
호텔 직원들은 그런 우리에게 따뜻한 물수건을 가져다 주었다. 그제서야 나는 아직 씻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하얀 물수건은 손만 닦았는데도 금세 걸레가 되었다. 직원에게 물수건을 돌려주기가 여간 미안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산 속에서의 생활이 그 동안 얼마나 험난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오렌지 주스와 물수건으로 기운을 차린 대원들이, 저녁식사를 마치고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식당 반대편에서 경쾌한 기타소리와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Jambo, jambo bwana,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habari gani, mzuri sana.
(잘 지내십니까, 아주 좋습니다.) 
Wageni, mwakaribishwa, 
(외국분들, 당신들을 환영합니다.) 
Kenya yetu hakuna matata. 
(우리 케냐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답니다.) 
 

기타를 맨 요리사 뒤로, 호텔 직원들이 한줄로 걸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노래 제목은 'Jambo'인데, Jambo는 스와힐리어로 '안녕하세요'라는 뜻이다. 케냐에서 만들어진 노래지만,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단다.

 

그들은 대원들이 앉아있는 식탁쪽으로 줄을 지어 걸어왔다. 대원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에 맞춰 박수를 쳤다. 스와힐리어로 아무 문제 없다는 뜻의 Hakuna matata(하쿠나 마타타)가 반복되는 노래 구절이 매우 친숙했다. 하쿠나마타타는 한국에서 지은 아프리카팀의 이름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식탁을 둘러싸고 대원들과 직원들이 커다란 원을 만들었다. 요리사는 자신이 직접 제작한 케이크를 대원들에게 선물했다. 케이크에는 갈색 글씨로 오지탐사대와 호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전 날 생일이었던 박대하 대원이 케이크를 자르면서 파티는 마무리되었다. 케이크는 너무 달아서 먹기 힘들었지만, 직원들의 따뜻한 정은 대원들의 마음 속을 행복으로 가득 채워 주었다.  

 

내 생애 가장 힘들었던, 하지만 많은 것을 배웠던 일주일

 

이렇게 해서 르웬조리에서의 일정은 화려하게 끝이 났다. 산장이 아닌 편안한 숙소로 돌아오니 마치 긴 꿈을 꾼 것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사진기와 수첩에는 그날그날의 기록들이 사진으로, 글씨로 가득 차 있어 사실이었음을 입증해 주었다.

 

그런데 르웬조리에 다녀온 뒤, 사진기와 노트만 가득 찬 것이 아니었다. 내 마음 속도 어느새 자신감과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지탐사대원이 되기 전, 나는 자신감 없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5000m급 산 정상에 오른 내 모습은 '그림의 떡'이었다. 오지탐사대원이 되어 우간다에 와서도, 내 마음 속은 불안으로 가득했다. 르웬조리에 가서 어느 날 문제라도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하며, '다른 대원들처럼 평범한' 대원이고 싶었다.

 

그런데 산행 다섯째 날, 나는 다른 대원들과 함께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상상만 해오던 그림의 떡을 움켜쥔 것이었다. 게다가 아주 무사하게 여정을 마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떤 일이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열정을 갖게 되었다.   

  

한편 나는 우간다에 가기 전,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를 많이 하는 편이었다. 내가 못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산에 오르면서, 나는 내가 해야만 하는 일, 혹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했다. 그리고 왠만한 일은 혼자서 스스로 해결하는 독립심을 갖게 되었다.  

    

르웬조리에 오르는 일은 매우 힘들었다. 다행히도 크게 다치거나 아프지는 않았지만, 일주일동안 진흙, 바위, 비, 고도 등 르웬조리의 모든 것은 내게 커다란 장애물로 다가왔다.

 

그래서 나는 감히 르웬조리에서 보냈던 날들을 '내 생애 가장 힘들었던 일주일'이라고 말한다. 이제 겨우 스무해 하고 조금 더 살았을 뿐이니, 언젠가 이 기록을 경신하게 될 날이 오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미래가 두렵지는 않다. 이제는 힘든 일을 견뎌낼 준비가 되어있다. 힘든 만큼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이번 등반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다음 날도, 그 다음날도 도전하고 또 도전한다.

 

이제 대원들에게는 우간다와 케냐에서 보낼 날이 9일 남았다. 한국을 떠난 지 열흘째니 일정의 반이 지나간 것이다. 이제 다음 날부터는 우간다와 케냐의 문화를 체험하게 된다.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매우 기대가 된다.  

 


태그:#오지탐사대, #아프리카, #우간다, #르웬조리, #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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