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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10년전 광화문에서 그를 만났다. 출판전문지인 ‘출판저널’의 기자인 그는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독서 마니아를 인터뷰하겠다며 나를 찾았다. 나는 당시 PC통신 하이텔에 독서일기를 쓰고 있었는데 제법 알려진 독서가였다.

 

만났을 때는 나 역시 기자(미디어 오늘)이기도 했기에 인터뷰 중에 우리는 금방 친해졌다. 얼마 후에 다시 만나 광화문 김치찌개 집에서 우리는 자신의 앞날을 이야기했다. 그는 독서 마니아라며 선망하는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작가가 되겠다고 말했다.

 

앞서 간 전업작가들의 고난을 봐왔기에 나는 그의 포부는 위험천만하다고 말렸던 것 같다. 물론 나 역시 한국을 떠나 중국으로 간다는 위험천만해 보이는 계획을 말했다. 나는 중국으로 갔고, 얼마 후부터 그는 정말 전업작가가 되어 작품들을 쏟아냈다.

 

동서문학상,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큼지막한 문학상을 거머쥐는 것을 보고 놀랐다. 전업작가들에게는 그나마 이 상이 가장 축복된 연봉이다. 하지만 나는 중국에 있었고,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아 그의 소설을 읽을 기회가 없었다.


10년이 지난 올해 기자는 한국에 귀국했다. 그리고 그의 신작 <밤을 노래한다>의 출간 소식을 들었다. 이번 소설이 내가 가장 관심을 갖는 시대와 지역인 1930년대 만주를 배경으로 한다는 소식에 궁금증이 더해갔다.

 

그 전에 다른 경로를 통해 그가 소설을 쓰기 위해 연변지역에 자주 왕래하고 머문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더 궁금했다. 사실 나를 더 자극한 것은 내가 그와 비슷한 시대와 배경으로 소설을 쓰려 하기 때문이다.


드디어 그의 책을 입수했다. 이틀 동안 움직이면서 소설을 읽었다. 우선 내가 놀란 것은 그의 문체였다. 풍설로 듣던 그의 문체는 신세대 스타일의 좀 특이한 문체라 했는데 지극히 일반적 소설의 문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당시 만주에서 쓰이던 사투리와의 거리, 생경한 배경이나 지명으로 인한 거리를 너무 무난한 방식으로 넘어선 문체였다. 때문에 좀 생경해서 넘어가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내 우려를 금방 불식시켰다. 또한 문학청년처럼 찾아낸 문학작품의 인용도 그의 집중력을 말해줬다. 


소설의 소재는 우리에게는 생소한 ‘민생단 사건’을 배경으로 했는데 이는 나에게도 흥미로운 소재다. 개인적으로 이 시기에 활동한 양세봉 장군(梁世奉 1896~1934)에 대한 관심이 있었는데 그의 소설은 양세봉 장군과 김일성의 관계 등을 이해하는 좋은 바탕을 제공해 준다.

 

비 역사학도에게는 생소할 양세봉 장군은 소설에도 언급되는 ‘조선혁명군’의 사령관으로 만주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유격전을 펼친 동북 항일운동의 영웅이다. 그가 한국에서 별로 논의되지 않은 것은 어릴적 ‘김일성’을 살려준 인연 때문이다.

 

어떻든 민생단 사건이 일어나는 1930년대 초반에는 소설에도 언급되는 용정 출신의 독립운동가들과 민초에서 시작해 성장한 양세봉, 중국 공산당의 지시로 활동하던 양정우(1905~1940) 등이 활동하던 시기다.


사실 이 시기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시간과 공간은 정말 혼돈만이 존재했을 것이다. 만주는 국가로는 한국과 국민당의 중국, 공산당의 중국, 일본 등이 혼재했다. 이념적으로는 민족주의와 중공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조선인민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친일 등이 수없이 혼재했다. 또 독립군, 비적, 토적, 공비, 공산당 정규군, 일본군 등이 혼재하는 시기기도 하다.

 

이 속에서 무엇이 정답일까. 이런 고민은 소설에서 박도만의 독백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231페이지) “나라가 없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도 알게 됐소. 태어난 나라가 없으니 우리에게는 당도 없소. 나라도 없고 당도 없는 자에게 민족도 없는 것이요”라는 이 말에서 그 혼돈을 알게 해준다. 물론 사상적 혼돈 못지 않게 조직 안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치열한 투쟁과 살육전이 벌어지는데 민생단 역시 그런 과정에서 나온 비극적인 사건이다. 


이 소설은 이런 항일운동의 갈래중에서 용정 출신의 운동가들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사실 젊은 작가가 역사소설을 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김연수는 역사소설과 일반소설의 사이에서 흥미로운 블루오션을 개척했다.

 

과거 이 시기 인물들을 바탕으로 한 글들이 쏟아졌지만 평전(김원봉, 김산, 신채호, 정율성 등)류가 많아서 독자들에게 접근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소설은 김해연과 이정희의 힘든 사랑을 중심 줄거리로 삼고, 민생단 사건이나 일본의 만주 침입 등을 배경으로 했기에 가독성이나 문학적 성취도 담보될 수 있었다.


사실 이 시대 작가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새로운 소재를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80년대를 바탕으로 한 성장식 후일담 소설은 바닥을 본 지 오래다. 그나마 역사에서 개인으로 소재를 바꾼 공지영 정도만이 꾸준히 활동을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한계상황을 넘어서기 위해 역사 인물에 소설적 재미를 가미한 팩션들이 주목을 받은 것이 사실이지만 소설속 주인공과 작가간의 시간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큰 반향을 받지 못한 것이 우리 소설계의 한계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출간한 김연수의 소설은 사회주의라는 이상한 덧칠로 평가받지 못했던 항일운동 시기 인물이나 사건을 재생했다는 점에서 즐거운 독서의 체험을 가져다 준다. 사실 이 시기는 영화 ‘놈놈놈’처럼 황당한 이야기부터 이런 소설까지 다양한 종류의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수많은 소재를 안고 있다. 이미 김인숙을 비롯해 몇 작가들이 비슷한 의지를 갖고 있지만 아직 본격적인 작품으로 출간되지 않는데 향후에는 당연히 부각될 시간과 소재일 것이다.


소설 속 이야기는 읽는 재미를 반감시킬 것이 뻔하므로 굳이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가 책의 끝에 쓴 후기도 재미있다. 그가 소설을 생각하면서 지금에야 출간된 이 소설을 내가 그의 첫 작품으로 읽었다는 것은 그에게 불행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소설보다 부족한 작품이 나오면 불만을 토로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면 어떠냐. 이미 조로현상에 빠진 소설계 나름대로의 블루오션을 찾은 그가 반갑기만 한 것을. 시간이 되면 나 못지 않게 몸치라는 그를 홍대앞으로 불러내 그 동네 구경이나 좀 해봤으면 싶다.


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문학과지성사(2008)


태그:#김연수, #밤은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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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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