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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혜성처럼 나타나 그림 이론을 내놓고 강호를 떠나듯 철학계를 떠났습니다. 그림이론을 정말 짧게 말하자면, '언어는 세계를 반영하는 그림이며, 이때만 언어는 의미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비트겐슈타인은 그림이론이 완벽하기에 덧붙일 연구가 필요 없을 거라 생각한 모양입니다. 한가롭게(?)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던 비트겐슈타인은 뭔가 깨달음을 얻어 새로운 이론을 내놓았습니다.

 

아이들이 어울려 노는 것을 보면서 언어를 생각하는 방식을 교정한 겁니다. 전에는 언어의 가치를 세상을 잘 그려내는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같은 말이라도 놀이의 규칙처럼 어떤 규칙과 관계 속에서 사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뜻이 된다고 생각한 겁니다. 같은 "물"을 외치더라도 홍수가 났을 때와 사막을 건널 때는 의미가 거의 정반대에 가깝습니다. 뭐 당연한 이치인데 철학자가 나서서 설명할 것까지 있나 싶은가요. 제가 복잡한 설명을 다 빼버리고 단순하게 말해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끔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게임이론'이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말이라는 게 누가 어느 때 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뜻이 생성된다는 것을 아이들이 말하는 걸 보면서 매일 느끼거든요.

 

큰딸의 늘어나는 말솜씨

 

네 살배기 큰딸 별은 공동육아시설인 아름다운마을학교 어린이집에 다니는 덕분에 말을 빨리 배웠습니다. 선생님에게도 배우지만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며 더 많은 말을 배워옵니다. 어느 날 "별아, 이제 그만 놀고 자자"고 했는데 "됐거든"하고 받아칩니다.

 

느닷없는 공격에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망설이다가 겨우 추스르고 물었습니다. "어디서 배웠어? 무슨 뜻인지 알아?" 내 질문 공세에 답을 하지 않습니다. 슬슬 화가 나서 나도 "그런데 왜 반말이야"고 한 마디 합니다. 별은 이미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큰 기대를 한 건 아니었지만 딸 뒤통수에 대고 꼬치꼬치 캐묻는데, 왠지 '뒷북'을 치고 있다는 생각에 힘이 풀렸습니다. 날이 갈수록 이런 일은 더 자주 일어납니다. 별이 쏟아내는 말의 강도는 세지고 제가 받는 충격도 커집니다. 왜 아이들은 좋은 말보다는 나쁜 말들을 먼저 배우고 빨리 익힐까요(써놓고 보니 내가 게가 된 기분이네요. 나는 옆으로 가면서 자식에게는 똑바로 걸으라는).

 

별은 화가 났을 때 "바보"라고 하더니, 언젠가부터 "똥개"라는 말도 섞어 씁니다. 정말 화가 나면 "바보·똥개"를 연달아 쏟아냅니다. 내 딸이 써서 그렇지, 사실 이런 말은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예전에 내가 말했고 흔히 들었던 말입니다. 딸도 나랑 비슷한 말을 하며 자라는구나 싶어 사랑스럽기까지 합니다. 괜히 성질 건드려서 저런 말을 하게 만들 때도 있습니다. (미안해, 딸! 네가 좋아서 그래.) 같이 사는 사람은 이러는 나를 조금 한심하게 쳐다봅니다.

 

"바보"라는 말에 익숙해지면 활용법도 늘어납니다. 별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삼촌들은 여지없이 "바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별은 화가 날 때 뿐 아니라 속으로는 좋은데 쑥스러울 때도 "바보"라고 합니다.

 

딸이 좋아서 욕먹는 나, 한심한가요?

 

여기까지는 여유가 있었습니다. 낯익은 말이었고 내가 예상하는 상황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별은 "바보·똥개·피자"라고 외쳤습니다. 웬 피자? 정말이지 어리둥절했습니다. 별에게 물어봐도 뾰족한 이유를 말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별이 굉장히 화가 났을 때, '바보와 똥개'로도 모자라는 상황에서 '피자'라고 덧붙인다는 겁니다. 나도 시험 삼아 별에게 "야, 피자야"했더니 화를 내다가 "나 피자 아니야" 하며 울어버립니다.

 

'음, 분명 나쁜 뜻이 담겼군.'

 

그래도 '피자'가 왜 딸에게 최악의 낱말이 되었는지 알아낼 방도가 없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지내다가 아내가 드디어 그 사연을 알아왔습니다.

 

어린이집에 일곱살 먹은 오빠와 다섯살배기 언니가 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이 오빠가 언니를 '피자'라고 놀렸다고 합니다. 왜 하필 피자라고 했는지까지는 모르겠으나, 오빠는 그렇게 언니를 놀리며 즐겼답니다. 언니가 싫다고 화를 내면 낼수록 오빠가 느끼는 쾌감도 커졌겠지요.

 

이 때 동생들이 두 사람을 지켜보았습니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피자라고 하면 싫어하는구나'. 이때부터 어린이집 아이들은 누군가에게 화가 날 때 "피자"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안 가 이 언니까지도 화가 날 때 '피자'라고 하면서, 아이들 모두에게 '피자'는 음식보다는 욕으로 통하게 되었습니다.

 

별은 구사하는 말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풍성해졌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숨길 수 있는 능력도 커졌습니다. 보통은 "배고프냐"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끔 반대로 이야기할 때도 있습니다.

 

마음 아파 울면서 눈에 뭐가 들어갔다고

 

지난 월요일 밤, 우리 식구가 이부자리에 누웠습니다. 아내가 두 딸에게 내일 이모, 삼촌들과 공부하고 늦게 올 거라고 미리 일러둡니다. 아이들이 뭐 알겠느냐 싶지만, 이렇게 미리 알려주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미묘하고 중요한 차이를 낸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도 미리 알고 마음으로 준비할 때와 갑자기 어떤 사건을 닥칠 때는 행동이 많이 달라지겠지요. 못 알아듣는 것 같아도 기운은 전달됩니다.

 

하여튼, 아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별이 훌쩍 거렸습니다. 아내가 "별아, 우니?"하고 묻자, 별은 "아니, 눈에 뭐가 들어갔어"라고 합니다. 아내가 흐르는 눈물을 가리키며 다시 물었습니다. "봐, 그거 눈물 아니니?"별은 "하품해서 그러는 거야"라며 천연덕스럽게 말을 받았습니다.

 

아내가 고삐를 늦추지 않고 "엄마가 내일 늦게 온다니까 힘들어서 우는 거야?"하고 정곡을 찌르면서도 부드럽게 말을 건네자, 그제야 별은 목 놓아 울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을 들켜버린 처지에 이제껏 억누른 슬픔까지 터지면서, 한참을 그렇게 대성통곡했습니다. 우리는 이런저런 말로 위로하면서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애를 태웠습니다.

 

네 살짜리 아이가 이렇게까지 자기 감성을 숨기고 우리와 대화할 줄은 몰랐습니다. 별은 엄마가 늦게 오는 게 힘들면서 솔직하게 힘들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으로 알았던 겁니다. 그래서 참아보려고 했는데 눈물을 들키게 된 것이지요. 어설프긴 했지만 딸은 이제 우리와 거의 같은 높이에서 대화하려 합니다. 딸이 성숙해가는 빠르기가 놀랍습니다. 아빠로서 딸을 이해하고 주변을 살펴야 하는데, 벌써부터 몸에 힘이 들어갑니다.

 

"엄마· 아빠" 다음은 "아니야"

 

둘째 딸 솔(12개월)도 치고 올라오고 있습니다. 요즘 솔은 돌을 넘기면서 어른 손이나 벽, 물건을 잡고 걸음마 연습을 하느라 분주합니다. 그리고 뭔가에 시선이 꽂히면 쉽게 막기 힘듭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른 물건을 보여주며 유혹하면 바로 넘어왔는데 이제는 어림없을 때가 많습니다. 솔은 "엄마", 요즘에는 자주 "아빠"를 말하더니 이제는 "아니야"라고 또렷하게 말합니다. 자기 생각과 욕망을 표현하는 능력이 점점 커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두 딸과 나누는 대화가 깊어질수록 기쁨도 쏠쏠합니다. 대신 노력해야 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아이가 하는 말에 담긴 또 다른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때로는 사용하는 말을 어떻게 배웠는지 추적하는 고고학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이 말에 숨어 있는 감정과 생각의 그림을 찾는 재미가 아이 키우는 힘든 하루를 녹여줍니다.


태그:#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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