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앓고 있는 아들을 수술시켜주고, 식도 못 올리고 사는 둘째딸의 결혼식 비용을 마련하려고 악착같이 일했어요. 아무리 배가 고프더라도 돈이 아까워 빵 하나 사먹지 못했는데…. 자식들이 밟혀서 눈도 감지 못하고 죽은 우리 언니! 불쌍해서 어떻게 해…."서울 논현동 고시원 방화-살인사건의 첫 번째 희생자 이월자(여·49)씨의 여동생 순자(46)씨는 언니의 애절한 인생을 한탄스러워 했다. 2006년 12월 25일 입국한 이씨의 '코리안드림'은 아들 수술비와 막내딸의 결혼식 비용 마련이었다.
아들 방일성(20)씨는 돌 무렵에 무쇠 솥 끓는 물에 빠지면서 중화상을 입었다. 중국에서 2차례에 걸쳐 수술을 받았지만 두 다리를 제대로 쓸 수 없는 장애 상태이다. 둘째 딸 방해순(26)씨는 돈이 없어 혼례도 치르지 못한 채 5개월 된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다.
밥값을 아끼려고 일하던 식당의 남은 음식을 싸와서 먹었던 이씨는 방값을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1.5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살았다. 그런데 묻지마 살인이 애타는 '코리안드림'을 난자하고 말았다. 자식의 한을 풀어주지 못한 이씨는 이대로는 세상을 뜰 수 없었는지 눈을 감지 못한 것이다.
"남루한 옷차림 때문에 남들 보기에 민망스럽다며 사건 발생 이틀 전에 남대문시장에서 8만원 주고 옷 두 벌을 샀어요.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옷을 샀다며 그렇게 좋아하셨는데, 한 벌은 입어보지도 못하고 끔찍한 일을 당했어요."
지난 2006년 한국 사람과 결혼해 경기도 군포에서 살고 있는 이씨의 큰딸 방해란(28)씨는 사고 이틀 전에 뵌 어머니 모습에 눈물을 흘렸다. 더 큰 걱정이 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도 슬픔이지만 애처로운 동생 때문에 가슴이 먹먹하다. 지난 23일 입국한 일성씨는 어머니를 잃은 충격으로 거의 말문을 닫고 망연자실한 상태다.
"동생의 앞날이 막막해요. 이젠 수술해줄 어머니도 없고, 다리가 불구여서 일도 하지 못하는데 어쩌면 좋아요. 중국에 가도 오갈 데도 없는데 동생을 어떻게 좀 도와주세요."유일한 희망인 어머니의 수술 약속을 기다리던 장애 청년. 한국은 어머니와 유일한 희망을 동시에 빼앗은 것이다. 3남매의 애절한 사정에 눈물을 훔치던 이선희 목사(외국인노동자의집/중국동포의집 부대표)는 이렇게 호소했다.
"한국은 어머니만 빼앗은 게 아니라 수술이라는 유일한 희망마저 박탈한 것입니다. 어머니를 잃은 장애인 청년이 말문을 닫다 시피하고 눈물만 흘리는데 저 눈물을 누가 닦아주어야 합니까? 우리 사회가 어머니의 약속을 대신 지켜주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