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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은 한국 문단에서도 소외된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는 반성과 지역작가들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제기돼 관심을 끌고 있다.
 
여순사건 60주기를 맞아 지난 25일 여수시 화장동 전남학생교육문화회관 강당에서 여순사건60주기행사위원회 주최로 문학예술제가 열렸다. 먼저 1부는 순천작가회의 주관으로 문학심포지엄이 열렸고, 2부에는 한국문학평화포럼 주관으로 여순문학축전이 이어졌다.
 
행사에 앞서 김병호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은 “제주 4.3사건 등에 비해 여순사건은 그 실태조사도 이루어지지 못했고, 명예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상생은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다”고 그간의 소회를 밝혔다. 또 “그동안 젊은 작가들의 그림과 몇 편의 시가 전부였고, 제일 그리운 사람들이 바로 문학인들이었다”며 여순사건을 외면한 한국문단에 대한 서운함을 에둘러 표현하기도 했다.
 
“여순사건을 언제까지나 과거의 아픔과 슬픈 역사로만 기억할 수 없다”며 다가올 여수엑스포를 준비해가는 그 전환점에서 과거의 아픔을 승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젊은 미래를 이끌어갈 수 있는 문학작품이 봇물처럼 쏟아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여순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와 진실규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지난 1998년이었다. 그 이후 미술계에서는 젊은 작가들이 중심이 돼 온 여수민미협의 여순항쟁미술창작단이 여순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쏟아냈고, 문단에서는 순천작가회의에서 대부분 시를 통해 작품을 발표하는 정도에 머물러 왔다.
 

특히 소설분야에서는 여순사건만을 소재로 하는 작품으로는 알려진 것이 없다. 순천출신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이 여순사건을 거쳐 6.25전쟁 등 당시 좌우익의 갈등과 민중들의 처절했던 삶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사실상 ‘여순반란사건’이 ‘여순사건’으로 명칭이 바뀌게 된 계기도 태백산맥이었다.
 
하지만, 강진출신 김영랑 시인이 당시 ‘국군 제14연대의 반란사건 현지답사’차 김광섭, 박종화 시인 등과 함께 현지시찰을 마치고 <새벽의 처형장>, <어느날 어느때고> 등 두 편의 시를 남겼다. 하지만, 우익민족주의자 김영랑 시인은 <모란이 피기까지> 등 주로 서정시만 알려져 있다.
 
이날 문학심포지엄에는 제주4.3연구소 소장과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을 지낸 현기영 작가가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에 빠져 고립된 여순사건”에 대해 <기억투쟁의 문학>이라는 주제로 발제에 나서 지역작가들의 치열한 창작을 요구해 주목을 받았다.
 
제주출신 소설가인 현기영 작가는 1973년 최초로 ‘제주4.3항쟁’을 소재로 한 소설 <순이 삼촌>을 발표했고, 그 후에도 제주사람들의 삶을 집요하게 탐색해왔다. 발제에서 “제주4.3사건과 여순사건을 비롯해 6.25전쟁 전후에 무고하게 희생된 민간인 수가 80만 가까이 된다”며 그 엄청난 수의 원혼들이 아직도 진혼이 안된 채 허공중에 떠돌고 있는 상태로 반세기 동안 한국 현대사에서 배제돼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역대 독재정권들이 대물림하여 은폐해 왔기 때문이었다”며 그들이 저지른 제노사이드의 범죄들은 공식역사에서 지워버리고 민중의 기억을 말살해온 ‘망각의 정치’였다고 주장했다. 하늘의 뜻을 따른다는 순천(順天)은 반대로 하늘의 뜻에 반한다는 역천(逆天)이란 말이 될 정도로 여수와 순천은 ‘반란지역’로 왜곡돼 왔다고 지적했다. 당시 “죽은 자는 모두 빨갱이다”는 왜곡이 올바른 기억을 막았다는 것이다.
 
또한 “작가는 무당이 돼야 한다”면서 “죽은 자를 위령하는 작업이 문학”이라고 강조했다. 내용이 어두운 작품보다는 “달콤한 슬픔”으로 표현한 작품이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현상이 대세이지만, “여순사건은 결코 감동할 수 없는 슬픔”이라고 극적으로 표현했다.
 

제주4.3사건과 발단배경 등 과정은 다르지만, 여순사건을 다룬 제대로 된 문학작품이 없는 것에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여순사건의 소재나 주제가 이미 주어졌다”며 지역출신 문학인들이 ‘중앙진출’에 집착하고 지역의 문제를 외면해 온 작가정신의 부재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문제를 제기했다. “중앙을 닮지 말고 (자기)지방의 문화적 유산을 보듬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임동확 시인은 먼저 여수, 순천지역의 잠재된 피해의식 현상부터 제기했다. 여순사건 이후 “나서지 마라”는 것이 어릴 때부터 교육된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 사례로 7,80년대 대학운동권에서 ‘여수고’, ‘순천고’출신들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가 아니냐는 것이다.
 
여수를 소재로 한 문학작품인 황동규 시인의 <여수 구항에서>에서도 여순사건을 읽어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그동안 광주5.18민주화운동이 지역문학의 중심이 되면서 여순사건은 지역문단에서조차 소외되고 외면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순반란사건’에서 중립적 용어인 ‘여순사건’으로 승격(?)한 것도 문학의 힘이었고, 동학혁명, 광주항쟁, 제주4.3 등도 ‘반란’, ‘사태’에서 ‘사건’, ‘혁명’으로 승격되기도 했다며 역사적 사건은 당사자들의 의지, 해석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역사적 가치와 의미가 달라진다고 주장했다.
 
이날 발제에 이어 채희윤 작가(광주여대 교수), 조진태 시인(5.18기념재단 사무처장), 주철희 소장(여수지역사회연구소)의 발제에 대한 토론도 이어졌다.
 
이어진 2부 여순문학축전행사는 공연장으로 옮겨 시작됐다. 김기인과스스로춤모임(서울예대 무용과)의 춤공연을 시작으로 나종영, 김기홍, 서애숙 시인 등 8편의 평화시 낭송이 이어졌고, 대하소설 태맥산맥 중에서 여순사건과 관련된 부분을 전향미 문학낭독가가 낭독하는 시간도 가졌다. 또 시인출신 박선욱 성악가, 노래하는 시인가수 김현성의 노래공연, 무당시인 오우열 시인의 '여순해원소리굿'도 공연됐다.
 
한편, 다음날인 26일에는 참석한 작가들과 함께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오성 여순사건위원의 안내로 여수지역 여순사건 유적지 답사도 진행됐다.
 

 


태그:#여순사건, #평화문학축전, #순천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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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어용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하다 세월호사건 후 큰 충격을 받아 사표를 내고 향토사 발굴 및 책쓰기를 하고 있으며, 은퇴자들을 대상으로 인생을 정리하는 자서전 전문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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