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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나라의 어려움 앞에서 늘 그러셨듯이 다시 한 번 힘과 지혜를 모아주십시오. …(중략)…제가 가장 무거운 짐을 지고 앞장서겠습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다함께 힘차게 나아갑시다."

 

이명박 대통령은 27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지금이야말로 국익을 먼저 생각할 때"라며 이렇게 호소했다. 현직 대통령이 국회에서 직접 예산안 시정연설을 한 것은 지난 2003년 10월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 첫 해 이후 5년 만이다.

 

이 대통령은 "단언컨대, 지금 한국에 외환위기는 없다. 구제 금융을 받아야 했던 10년 전과는 상황이 판이하다"고 강조했지만, 이는 그만큼 위기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즉, 금융위기가 실물경제 분야로까지 확대되는 현 시점에서 정부가 적절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면 자칫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사태가 재연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작동한 결과다.

 

'잃어버린 10년' 운운한 이념대결 언급 없어 진실성 의심

 

이 대통령은 우선 정치권에 대해 "우리도 10년 전 외환위기 때 여와 야가 흔쾌히 힘을 합친 전례가 있다"면서 "여기 계신 여러분도 한 축을 담당해주셔야 한다. 정파의 차이를 넘어 국익을 중심으로 힘을 모아주시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 취임 이후 지난 8개월간 '잃어버린 10년', '좌파정부 10년' 운운하면서 정치를 이념대결로 몰아갔던 자신의 국정운영 기조의 오류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정연설의 진실성이 의심받는 대목이다.

 

이 대통령은 또 "중소기업과 대기업은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면서 "지금 이 시점에서 노와 사의 화합만큼 더 소중한 것도 없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중소기업과 대기업, 노와 사가 어떻게 화합하고 동반자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론은 제시하지 못했다. 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10년 전에 자신의 측근인 한광옥 전 비서실장에게 노사정위원회를 맡겨 사상 처음으로 노동계가 재계·정부와 함께 노사정위원회 활동을 시작하고, 당시만 해도 금기 사안이었던 정리해고 법제화를 수용토록 한 것과 대비된다.

 

이 대통령은 또 "수도권과 지방은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면서 "시민사회와 종교계도 갈등 해소에 적극 나서야 한다. 언론의 역할 역시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부의 수도권 규제완화 조처로 한나라당 광역자치단체장들끼리 가시돋친 '말펀치'를 주고받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또 시민단체에 대한 탄압은 5공 시절보다 더하고, 특정종교 편향으로 인한 불교계와의 갈등은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휴화산이다.

 

그는 언론의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방송의 공공성을 위협하는 이 정부의 '선제적 조처'로 인한 KBS, YTN 사태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 특히 그의 대언론 호소는 정부 대변인인 유인촌 문화부장관이 지난 24일 국회 국감장에서 보인 '막가파식 언행'으로 빛이 바랬다.

 

 

"선제적이고, 충분하며, 확실하게 유동성 공급하겠다"... 시장은 냉담

 

이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정부는 시장이 불안에서 벗어날 때까지 선제적이고(preemptive) 충분하며(sufficient) 확실하게(decisive) 유동성을 공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전 배포된 연설문에서 유일하게 영어로 병기된 표현이 들어 있는 대목이 이곳이다. 이 대통령이 해외언론과 시장에 보내는 핵심 메시지인 셈이다.

 

이에 대해서는 시장의 반응이 점수를 매길 것이다. 그러나 일단 청와대식 즉자적 논평을 원용하면, 시정연설에 대한 증권시장의 반응은 지극히 부정적이다. 이날 낮 12시 코스피지수가 장중 900선을 하회해 증권거래소에서는 코스피시장의 프로그램 매도 호가 효력을 정지하는 '사이드카'가 발동되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국민과 함께 대공황을 극복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말을 인용해 "문제는 오히려 심리적인 것이다. 실제 이상으로 상황에 과잉 반응하고 공포심에 휩싸이는 것이야말로 경계해야 할 가장 무서운 적"이라면서 두려움을 극복할 것을 호소했다.

 

그는 또 "품앗이와 십시일반(十匙一飯), 나아가 위기를 만나면 굳게 뭉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유전인자"라거나 "억수같이 장대비가 퍼부어도 구름 위에는 언제나 찬란한 태양이 빛나기 마련이다"라는 식으로 화려한 수사를 구사하면서 국민의 동참을 호소했다.

 

이처럼 이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전달하고자 했던 핵심 메시지는 현재의 경제 위기를 극복할 국민의 자신감과 신뢰 회복이었다. 그러나 그의 시정연설은 국민이 아닌 자신의 자신감으로 넘쳤을 뿐, 공허하고 울림이 없었다. 메시지를 뒷받침할 감동은 찾기가 어려웠다. 경제팀 교체 같은 시장의 신뢰를 얻기 위한 구체적인 조처는 미흡했다.

 

결과적으로 이 대통령은 시장의 신뢰를 얻지도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지도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의 언행의 불일치로 인한 신뢰의 위기가 계속된 탓이다.

 

지금은 백 마디의 말보다 한 번의 실천이 중요한 때이다. 그것은 정책의 '터닝'이다. 곧 사람과 정책을 바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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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시정연설, #이명박, #시장의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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