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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늘 나를 달뜨게 만듭니다. 떠나는 길은 설레임이고 돌아오는 길은 반가움입니다. 정선 가는 길은 그 구절양장의 풍취만으로도 이미 나를 취하게 만들었습니다. 고래 등 같은 기와지붕의 기와 골처럼 아래로 시원스럽게 뻗은 산줄기의 발치에는 곡류(曲流)가 길을 따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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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정선 가는 길 .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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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는 파주의 헤이리 앞 오두산에 오르면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로 드는 바다 같은 대하를 굽어보게 됩니다. 한강은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남한강의 두 갈래를 만들고 남한강은 영월군 영월읍 하송리에서 서강(西江)과 동강으로 갈리게 됩니다. 이 동강은 정선군 북평면 나전리에서 오대산에서 발원한 오대천과 정선의 북부를 흘러온 조양강으로 나뉩니다. 이 조양강은 정선 북면 여량리 아우라지에서 구절리의 송천과 삼척의 중봉산으로 부터 내려온 골지천의 두 강이 만나 어우러진 결과입니다. 아우라지와 헤이리는 그 물길로 닿아있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는 오두산의 거대한 두물머리에서 만난 한강의 한 시발점으로 역류해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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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우라지 .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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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우라지는 1957년 첩첩산골 태백으로 열차가 들어오기 전까지 서울까지 운반되는 목재의 출발지였습니다. 산이 높고 계곡이 깊은 정선은 질 좋은 목재가 풍부했습니다. 큰물이 질 때 그 물길을 이용하여 나무를 뗏배로 엮어 서울의 노량진과 마포로 수송했던 것입니다. 아우라지 나루를 출발한 뗏배는 남한강 1천리 물길의 사정에 따라 5일에서 보름 만에 서울에 닿았습니다. 강물 위에 삶을 띄웠던 뗏사공들은 여울의 거친 물살을 넘어야하는 위험을 감수해야했던 만큼 그 벌이는 적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오죽하면 '떼돈벌다'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겠습니까.

뗏사공들의 흥청거림은 사라졌지만 아우라지에서는 아직 대처에 삶을 위탁해야하는 우리들에게 가물가물한 기억을 선명하게 떠올려주는 것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줄배와 돌다리와 섶다리입니다. 겨울에 놓아진 섶다리가 여름장마에 떠내려가고 그 사이에는 돌다리와 줄배가 아우라지의 강마을을 이어줍니다.

전국의 모든 다리를 통털어 이처럼 소박하고 아름다운 돌다리를 보지못했습니다.
▲ 아우라지의 돌다리 전국의 모든 다리를 통털어 이처럼 소박하고 아름다운 돌다리를 보지못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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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우라지의 강을 사이에 두고 남녀의 정한을 담은 정선아리랑이 싹텄습니다. 경기, 강원, 춘천, 밀양, 진도 등 나라 안 도처에 존재하는 아리랑 중에서 유일하게 지방무형문화재(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있습니다.

정선아리랑은 전국의 아리랑 중에서도 가사의 수가 가장 많다고 합니다. 아우라지를 사이에 둔 여량리 처녀와 유천리 총각의 사랑에 관한 가사처럼 특히 남녀 간의 애욕을 모티프로 하고 있습니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명사십리가 아니라면은 해당화는 왜 피며
모춘 삼월이 아니라면은 두견새는 왜 울어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장철님 그리워서 나는 못 살겠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 주게

아우라지의 동네 여량에서 옥산장이라는 여관과 음식점을 하시는 전옥매 여사님과 부군인 최상배 선생님께서 함께 부르는 정선아리랑입니다.

전옥매 여사는 유홍준 교수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2>에 소개되어 전국적 명성을 얻은 분입니다. 부군께서는 현재 정선문화원 부원장과 정선아리랑제의 팔도아리랑경창대회의 심사위원장을 맡고 계신 분입니다.

전옥매 여사님은 여량이 고향이신 분으로 한의사셨든 집안이 기울어 어려워진 최 선생님댁으로 시집을 왔습니다. 한국 동란 때 총을 맞아 다리를 절게 된 남편과 그 일의 충격으로 시력을 잃게 된 시어머님을 섬기며 아우라지에서의 팍팍한 삶을 사셨습니다. 시름을 달래기 위해 아우라지에서 탐석한 수석을 사람의 탄생에서 죽음까지 일생을 이야기로 엮어 '돌과 이야기'란 이름으로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옥산장의 굴피집입니다. 옥산장은 내부가 개조되어 음식점으로 사용되는 100여년쯤된 기와집과 20실의 손님을 위한 2층 여관양옥과 수석전시장인 통나무집의 갖가지 건물들이 연이어있습니다. 그 사이에 소박한 굴피집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강원도 산골의 정서를 보여주고 싶었던 전옥매여사님의 뜻에 따라 10여 년 전에 고재로 지은 집입니다. 현재 내부는 창고로 사용되고 있지만 참나무 껍질의 굴피지붕이 화전민들의 삶의 형태를 짐작하게 합니다.
▲ 옥산장의 절구와 흰고무신 옥산장의 굴피집입니다. 옥산장은 내부가 개조되어 음식점으로 사용되는 100여년쯤된 기와집과 20실의 손님을 위한 2층 여관양옥과 수석전시장인 통나무집의 갖가지 건물들이 연이어있습니다. 그 사이에 소박한 굴피집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강원도 산골의 정서를 보여주고 싶었던 전옥매여사님의 뜻에 따라 10여 년 전에 고재로 지은 집입니다. 현재 내부는 창고로 사용되고 있지만 참나무 껍질의 굴피지붕이 화전민들의 삶의 형태를 짐작하게 합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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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산장의 농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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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장에 묵거나 식사를 하시는 분들께 정선아리랑을 들려주시거나 구수한 입담으로 수집한 돌의 형상에 빗대어 삶의 지혜에 대해 들려주시곤 합니다. 작년에는 '아우라지별곡'이라는 자서전을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사람을 맞는 여사님의 천성이 부드럽고 친절하여 아우라지의 문화전도사로서의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내생에서 가장 소중한 인연은 오늘 이 시간에 만난 인연입니다."

그때그때의 만남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우리가 성장과정에서는 학과공부를 해야 되지만 학과공부가 끝나면 인과(因果)의 공부로 들어갑니다. 사람과의 만남의 기쁨, 헤어짐의 슬픔, 미움, 시기, 욕망, 질투 등 죽을 때까지 배워도 못다 배운다는 것이 인과의 공부라고 여깁니다. 저는 학과공부로 배운 것이 없지만 많은 사람들 속에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판단했을 때 좋은 것은 내 것을 만들고 나쁜 것을 버리면서 오늘의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집밖까지 나와 차가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드는 그녀를 통해 아우라지에서 사람들 간의 어우러짐의 소중함을 가슴에 담았습니다.

이곳에 수석에 빗댄 여사님의 삶이 전시된 셈입니다.
▲ 옥산장의 돌과이야기 수석전시장에서의 전옥매여사 이곳에 수석에 빗댄 여사님의 삶이 전시된 셈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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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motif_1
에도 포스팅 되었습니다.



태그:#정선, #아우라지, #옥산장, #정선아리랑, #전옥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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