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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학자들이 경제 위기가 올 것이라고 우려했음에도 정부 경제 관료들은 우리 경제의 기초가 튼튼하여 걱정할 것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리고 촛불이나 때려잡고, 참여정부의 비리나 캐는 데 주력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부터 장관은 물론 대통령도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은 대통령이 나서서  IMF보다 더 어렵다는 사실을 고백하기에 이르렀다.  

며칠 전 후배의 죽음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만났다. 정승집 개가 죽으면 뭇사람들이 들끓지만 막상 정승의 죽음에는 찾는 사람이 적다는 말이 맞는 것인지 평소 마당발이었던 후배를 보내는 자리에 조문객들은 많지 않았다.

조문객이 많지 않았던 이유는 또 있었다. 위기라고 할 수 있는 경제 불안 때문이었다. 누구는 어떻게 지낸다는 말은 소식이라도 아는 경우지만, 아예 요즘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어디로 갔는지 연락도 안 된다는 말이었다. 그날 밤 그 자리의 화제는 가버린 후배에 대한 추억담도 있었지만 대체로 세태를 반영하는 이야기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주가 하락, 금융상품의 하락에 대한 걱정을 넘어 절망하는 다수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개인 사업하는 친구들의 불만과 절망은 한계를 넘고 있었다. 더러 유식한 친구는 현재의 상황을 조금 나름대로 분석하면서 "IMF보다 더 혹독한 계절이 올 것이라"는 진단을 내려 본전을 까먹고 있다는 친구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또 어떤 친구는 "그래도 설마 거기까지 가겠느냐"고 낙관론을 펴기도 했지만 누구의 말도 전체적으로 퍼져있는 불안 심리를 누그러뜨리지는 못했다.

비록 자녀들에게 고액 과외는 시키지 못할망정 학비 걱정, 병원비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었던 사람들,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집 한 칸에, 휴일이면 온가족이 자가용 타고 명소를 찾아 갈 수 있는 여유 있는 삶을 꿈꾸면서 그 꿈이 이루어지리라는 기대에 부풀었던 사람들이 한숨만 쉬는 것을 보았다.

시절이 좋았다면 자신의 '운'이 나빴음을 탓하면서 숨을 죽였을 텐데 친구들은 자신의 잘못보다는 정부의 탓으로 돌리며 분을 삭였다. 

몇 친구들과 2차로 소줏집에 들러 밤 12시가 넘도록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당분간 전망이 어둡다는 비관론이 우세했다. 천문학적인 환율방어자금, 부동산 경기 부양 지원금, 시중은행 지원금, 부자들에 대한 감세도 지금의 상황을 호전시키지 못하리라는 점 정도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뉴스에서는 주가 폭락으로 자살하는 사람들 소식이 들렸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예전에도 있었고 또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쳤건만 끝내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 나와 같은 서민이라는 점에서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힘 있는 사람들이야 그들을 지켜주는 언론과 권력을 동원하여 과거에 '세금폭탄' 운운하며 온갖 엄살을 부리면서 정부를 협박했던 것처럼 정부를 협박하여 막대한 지원을 받거나 세제혜택을 받을 것이다.

권력에 줄은 없어도 투자한 돈이 여윳돈인 부자들은 실망은 할지언정 목숨 끊을 생각은 하지 않았으리라. 스톡옵션으로 받은 주식이었다면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생각해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뇌물이나 직불금처럼 부정한 돈 혹은 예상하지 못한 돈으로 투자했다가 날린 사람들은 운이 없었다고 손을 털고 돌아서면 그 뿐이리라.

그러나 월급 받아 눈치보아가며 제대로 입지도 먹지도 못하고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심정으로 금융상품에 투자했던 사람들의 실망은 얼마나 클 것인가. 그보다 오직 한 재산인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 투자한 사람들에게 믿고 기댈 곳이 있었을 것인가!

비판에 귀 기울이지 않는 대통령, 솔직하지 못하고 자주 말을 바꾸었던 경제 관료들, 무능한 여당의원들, 위기를 은폐하는 언론 그리고 정작 힘든 개인들에게 책임으로 돌리는 나라에서 개인은 누구에게 하소연할 것인가. 퇴로가 없는 암담한 절망에서 목에 줄을 걸었을 사람을 생각하면 내 가슴이 답답해지고 만다.

지금의 위기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발생한 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심각하다. 때문에 정부는 일관성 없는 정책과 언행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점을 인정하고 모든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먼저 대통령은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잘못된 정책을 수립하여 대통령은 물론 국가 이미지를 실추시킨 관료들에게 책임을 물어 해임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사법처리라도 해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은 진심으로 국민 앞에 사죄하고 국민의 협조를 구해야한다.

경실련은 28일 오전 청와대 부근인 청운동사무소앞에서 '경제실정 책임, 강만수 경제팀 경질과 거국적 비상경제내각 구성 촉구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경실련은 28일 오전 청와대 부근인 청운동사무소앞에서 '경제실정 책임, 강만수 경제팀 경질과 거국적 비상경제내각 구성 촉구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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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뜻있는 국민들은 정치는 없고 권력만 있다고 한다. 여당은 아무런 비판 없이 대통령의 지시만 기다리는 꼭두각시들의 집단이라고 한다. 국회는 정책에 대한 비판과 토론과 타협,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상실한 '통법부'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뜻있는 국민이라면 이 나라의 정치에 신뢰를 보낼 것인가?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정치의 회복이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부자들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서민을 위한 정책이 나와야 한다. 연기금으로 주가를 올리고 건설경기를 살리겠다고 건설회사들이 가진 용지를 비싼 값으로 매입하는 짓은 그만두어야 한다. 그렇잖아도 남아돌아가는 주택을 두고 또 건설경기를 부양한들 우리 경제가 살아날 수 있을 것인가?

도시 서민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 기회에 자치단체의 숙원사업을 지원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면, 지금 농어촌 공사에서 시행하고 있는 저수지 준설작업이나 제방의 보수작업도 많은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것이라고 본다. 많은 비용으로 몇 기업만 특혜를 보는 지원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혜택을 볼 수 있고 그것이 경제순환의 동력이 될 수 있도록 하자는 말이다. 

서민 자녀들의 학비를 과감하게 지원하고 생활필수품을 정부가 구입하여 시장에 파는 형식으로 가격을 안정시켜야 한다. 생계비와 사업 자금을 지원하여 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추곡수매를 부활하여 농민 생활을 안정시켜야 한다. 어민들에게 출어자금을 지원하고 잡은 해산물은 전량 국가정부가 매입하여 시장에서 적정 가격으로 판매해야 한다. 농업과 어업의 유통구조만 개선한다면 값싼 외국산이 들어오는 일도 없을 것이다. 

공무원 봉급을 동결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공무원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할 것이 아니라 가진 돈을 풀게 만들어야 한다. 공무원들에게 세제 혜택을 주어서라도 자발적으로 '우리 기업 살리기' 운동이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지금은 시장 수요를 살리는 일이 시급하다고 본다. 돈이 순환되는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는  말이다.

기업은 자력구제를 통해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경쟁체제를 도입해야 한다. 경쟁력 없는 기업에 국세를 퍼붓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채우려는 짓이요, 특정 사기꾼을 양산하는 꼴임을 알아야한다. 다른 분야는 경쟁을 강조하는 대통령이 어째서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포기하는지 국민은 납득할 수 없다.

삶에 의욕과 희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기다리라는 말은 알아서 죽으라는 말과 같다. 지금 대다수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대통령은 알아야 한다. 국민의 꿈을 짓밟고 죽음으로 내모는 말장난 정치는 그만 두어야한다. 농민과 도시 서민은 이 나라의 뿌리요 근간이다. 뿌리가 튼튼하지 못하면 열매가 클 수 없음에도 열매만 키우려 한다면 나무는 죽고 말 것이다. 생산과 소비의 주체가 누구인지 다시 생각해보기 바란다.

요즘 서민들 사이에서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더니 고작 다시 IMF의 관리 시절로 돌아가자는 말이었느냐고 자조 섞인 농담이 오간다. 이 나라가 다시 IMF 시절로 회귀하는 것을 원하는 국민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제발 더 이상 서민의 삶과 꿈을 짓밟는 정부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끝으로 한나라당도 지금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다시 생각하라.

덧붙이는 글 | 사는 이야기를 쓰기에 현실은 너무 답답하다. 같은 땅에서 언어를 쓰고 사는 사람들이 어쩌면 그렇게 다를 수 있는지. 진보하는 역사가 아니라 선장을 잘못 만나 못된 과거로 회귀하는 것 같아 불안하다. 이 글은 한겨레 내 블로그에도 옮긴다.



태그:#경제위기 , #무책임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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