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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관산 억새 산행을 하는 등산객들.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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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봉우리들, 그리고 산꼭대기 부분에 비죽비죽한 바위들의 형상이 마치 주옥으로 장식된 천자(天子)의 면류관과 같다 하여 이름이 붙여진 천관산(天冠山, 723m).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과 대덕읍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가을이 되면 억새 산행을 하기 위해 전국의 많은 등산객들이 찾는다.

나는 지난 26일 마침 천관산 산행을 떠나는 산악회 사람들을 따라 전남 장흥으로 억새 산행을 나서게 되었다. 오전 7시 50분께 마산서 출발한 우리 일행이 장천재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50분께. 우리는 장안사 쪽 등산로를 따라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 천자의 면류관과 같은 형상이라 하여 이름이 붙여진 천관산(723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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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오르막이 얼마간 계속되다 어느새 쉬엄쉬엄 오를 수 있는 길이 이어졌다. 멀리 비죽비죽 솟은 바위들이 벌써 내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했다. 웅장하게 보이면서도 아기자기한 맛이 있고 기기묘묘하게 생겼는데도 몹시 아름다운 바위들의 모습은 사람들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는 천관산의 큰 매력이다. 그것은 또한 천관산 산행이 단조롭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바위들이 많은데도 넉넉한 어머니의 품속처럼 편안한 느낌을 주니 천관산은 참으로 오묘한 구석이 있다. 1시간이 흘렀을까, 남자의 생식기를 닮은 양근암(陽根岩)에 이르렀다. 길이가 15척(尺) 정도이니 4m가 훨씬 넘는다.

여성을 연상하게 하는 건너편 능선의 금수굴과 서로 마주보고 서 있어 자연의 놀라운 조화라고 쓰인 표지판 글이 훨씬 더 재미나지만, 어쨌든 양근암 앞에서는 모두들 한바탕 웃고 지나가게 되는 것 같다.

 
▲ 양근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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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관산 연대봉 정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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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걸어가자 제법 세차게 불어 대는 바람결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억새꽃의 은빛 물결이 내 마음을 흔들어 댔다. 천관산의 주봉인 연대봉(烟臺峯) 정상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20분께. 본디 이름은 옥정봉이었는데 고려 의종 때 봉수대를 설치한 뒤로 연대봉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곳에는 많은 산객들이 끼리끼리 모여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일행과 함께 도시락을 꺼내 먹고 곧장 환희대(歡喜臺) 쪽으로 걸어갔다. 연대봉에서 환희대로 가는 길에는 드넓은 억새밭이 펼쳐졌다. 천관산 억새는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눈부신 가을 햇살에 은가루 날리듯 반짝이던 창녕 화왕산 억새밭의 풍경과 또 다른 아름다움을 지녔다.

 
▲ 천관산 억새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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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객들은 바람과 노닥노닥하는 하얀 억새꽃들을 배경으로 이곳저곳에서 사진을 찍느라 부산을 떨었다. 나는 흰빛 물결이 넘실거리는 억새밭 사이로 은빛 가을에 취해 느긋하게 걸어갔다. 오후 2시 20분께 환희대에 도착했다. 네모난 바위들이 서로 겹쳐 있는 모습이 마치 만권의 책을 쌓아 놓은 듯한 대장봉(大藏峯) 정상에 있는 평평한 석대가 바로 환희대이다. 

그런데 환희(歡喜)는 '매우 기뻐함'을 뜻하는 말이지 않는가. 마침 그곳에 아이스크림 장수가 있었는데,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이 산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즐거움을 누렸으니 그것도 기쁜 일이 아닐까. "아이스크림 한 개 사면 1000원, 안 사면 2000원!"이라 외치던 그 아저씨의 유머 감각 또한 나를 즐겁게 해 주었으니 그것 또한 기쁜 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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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면서 행복한 날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을 하며 나는 종봉 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산길에도 눈길을 끄는 기암들이 많아 순간순간 벅찬 감동을 느꼈다. 30분을 채 못 걸었을까, 금강굴이 나왔다.

석굴 입구는 한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좁은 편이지만 샘물이 고여 있었다. 바가지가 놓여 있어 그런지 그 물을 떠서 한두 모금 마셔 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물맛에 대해 별 말이 없는 것이 기대만큼 신선하지 않다는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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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조선 후기 학자인 존재(存齋) 위백규가 후학들을 가르쳤다고 전해지는 장천재(전남유형문화재 제72호, 전남 장흥군 관산읍 옥당리)에 이르렀다. 본디 장천암이란 암자가 있었던 곳에 장흥 위씨들이 그 건물을 세웠다. 고려 공민왕 21년(1372)에 처음 지어졌으나 많이 파손되어 조선 고종 때인 1870년 무렵에 다시 지었다 한다.

앞면 5칸, 옆면 4칸 규모의 ㄷ자형 구조를 하고 있는 건물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의 팔작지붕집이다. 가운데 3칸은 온돌방이고 양쪽 앞뒤는 누마루 형식으로 난간을 설치하여 튀어나오게 했다. 특이한 점은 양쪽 누마루의 지붕이 앞면에서는 팔작지붕인데 반해 뒷면에서는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 형식을 하고 있다는 거다.

위백규 선생은 천문, 지리에 밝고 역(易)에도 정통했다. 그의 저서 가운데 <지제지(支提志)>가 있는데 천관산을 설명하고 있는 책이라 한다. 그러고 보니 천관산이 예전에는 지제산(支提山), 천풍산(天風山), 신산(神山)으로 불렸다는 말이 문득 떠오른다.

 
▲ 장흥 장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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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천재(長川齋) 앞에는 멋들어진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수령 600년 정도이고 나무 높이는 20m, 나무 둘레는 2.8m에 이른다. 조선 태종 때부터 있었던 나무로 태고송이라 부른다. 바람이 불면 이 노송의 우는 소리로 날씨를 예측할 수 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전해진다.

오후 4시께 나는 산악회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장천재 주차장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일행 모두 도착한 후 뒤풀이로 떡국을 먹고 우리는 마산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기기묘묘한 바위와 어우러진 천관산의 흐드러진 억새 풍경을 가슴에 꼭 담고서.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서울→호남고속도로 동광주 I.C→제2순환도로→화순(외곽도로)→국도 29호→이양삼거리→장평 봉림삼거리→유치→장흥→국도 23호→관산 →장천재
*인천→서해안고속도로 목포→국도 2호→강진→장흥 순지 I.C→국도 23호→관산 →장천재
*부산 →남해고속도로 순천→국도 2호→보성→장흥 순지 I.C→국도 23호→관산 →장천재



태그:#천관산억새, #천관산바위, #양근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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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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