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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운대 가는 길은 '소금강'이라 이름지어져 있다.
▲ 저 길을 따라 걸으면 어디가 나올까? 몰운대 가는 길은 '소금강'이라 이름지어져 있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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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힘드신가. 가을빛에 젖어든 단풍이 그대의 몸속으로 흐르는 붉은 피보다 더 서럽기도 하던가. 그런 가을날 신발끈 조이며 길 떠나고 싶지 않으신가. 수직 상승만을 고집하는 헛헛한 인간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지 않으신가.

세상의 끝 몰운대에서 만나는 '또 다른 나의 생'

길 떠나시게 그대. 하여 몰운으로 오시게. 정선아라리 구성지게 흐르는 정선 땅에 오면 '몰운대'라는 곳이 있네. 오래된 정자 하나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여진 곳은 아니라네. 자연이 만들어낸 '병대', 수십길 절벽을 사이에 두고 만들어진 세상의 끝 '몰운대'. 절벽으로 몸을 던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세상 속으로 쉽게 떠날 수도 없는 서러운 곳이 몰운대라네.

그래서였네. 정선에 탯줄을 묻은 박정대 시인은 몰운대를 이렇게 노래했다네.

세상의 끝을 보려고 몰운대에 갔었네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사랑보다 더 깊은
눈이 내리고, 눈이 내리고 있었네
강물에 투신하는 건 차마 아득한 눈발뿐
몰운대는 세상의 끝이 아니었네
눈을 들어 바라보면 다시 시작되는 세상
몰운리 마을을 지나 광대골로 이어지고
언제나 우리가 말하던 절망은 하나의 허위였음을
눈 내리는 날 몰운대에 와서 알았네

꿩 꿩 꿩 눈이 내리고 있었네
산꿩들 강물 위로 날고 있었네
불현듯 가슴속으로 밀려드는 그리운 이름들
바람이 달려가며 호명하고 있었네

세상의 끝을 보려고 몰운대에 갔었네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사랑보다 더 깊은
눈이 내리고, 눈이 내리고 있었네
강물은 부드러운 손길로 몰운대를 껴안고
그곳에서 나의 그리움은 새롭게 시작되었네
세상의 끝은 또 다른 사랑의 시작이었네
- 박정대 시 '몰운대에 눈이 내릴 때' 전문

박정대 시인은 세상의 끝을 보려고 몰운대를 찾았다네. 시인은 몰운대에서 '사랑보다 더 깊은 눈이 내리고, 절벽 아래로 투신하는 것은 아득한 눈발뿐, 몰운대는 세상의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노래했다네.

그대 힘드신가. 몰운대에 서서 칼 바람 맞으며 몰운을 바라보면 '우리가 말하던 절망이 허위'였음을 알 수 있다네. 시인이 그렇게 말했다네.

내일은 시월의 마지막 날이네. 바바리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종종 걸음으로 걷는 도시인들에겐 늦가을의 쓸쓸함으로 다가오는 시월의 마지막 날. 이런 저런 노래와 옛사랑이 생각나는 날이지만 곧 헐릴 '열차집'(교보문고에서 시작되는 피맛골에 있는 선술집)에서 빈대떡 한장 시켜 놓고 막걸리 잔이나 비워야 할 고독한 날이기도 하다네.

선경을 지나면 또 하나의 선경이 다가오는 몰운대.
▲ 몰운가는 길에서 만난 풍경. 선경을 지나면 또 하나의 선경이 다가오는 몰운대.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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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이네. 휘황한 밤의 세계가 빨아당기는 유혹을 피해 몰운대로 오게나. 내일 몰운대에서는 시인과 소설가, 음악인들이 모여 '몰운'을 노래한다네. 세상의 끝을 보려했지만 까마득한 벼랑 아래로 투신할 수 없는 곳인 몰운대에서 절망보다는 희망을 노래하자는 것일세.

시월의 마지막 날 몰운에서 시인 작가들이 희망가를 부른다

내일, 시월의 마지막 날은 쓸쓸한 사람들이 가녀린 등 대고 온기를 나누는 희망의 시간이라 말해도 좋겠네. 피곤한 다리와 힘든 어깨 잠시 쉬게 할 수 있으니 모처럼 '삶의 여유'를 부려보는 호사도 좋겠네.

는적거리는 두부 한 입 베어 물고
삶의 부챗살에 옴팡지게 달라붙은 악몰(惡沒)을 매어달고
길을 떠나야만했던 일이 있다
그 길에서 몰운대를 만난 일이 있다
어서 가야한다는 시늉으로 가던 길은 왼굽이 오른굽이 몸을 비틀었지만
마음은 어느새 몰운(沒雲)이 되어
한 깃 새털로 날고
다시 내 나이 스무살 무렵의 화선지에는
바람처럼 구름처럼
몰운대란 이름 하나 환하게 새긴 일이 있다
- 윤일균 시 '몰운대란 이름 환하게 새긴 일이 있다' 중에서

또 그래서이네. 서울 을지로 6가에서 순대국집을 하던 윤일균 시인은 '는적거리는 두부 한 입 베어 물고' 길을 떠아냐만 했던 적이 있다고 했네. 그렇게 떠난 길에서 시인은 몰운대를 만났다고 하네. 세상의 끝을 찾아 떠난 사람이 당도하는 곳인 몰운대는 상처입고 아픈 영혼을 구름으로 바람으로 맞아준다네.

추락하는 주가와 깡통이 된 펀드를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세상은 충분히 살기 어렵다네. 하루를 살아내기에도 벅찬 사람들에게 떨어지는 주가와 오르는 환율이 무슨 '생의 지표'라고 달러 한 장, 주식 하나, 잘 나가던 중국 펀드 하나 없지만 뉴스 시간만 되면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고 하네.

몰운대에 반달 뜨면 그것은 타다 남은 그대의 '심장'

윤일균 시인이 삶터로 운영하던 순대국집을 순대국처럼 말아먹은 이유도 그러한 것이 아니겠는가. 숨통 좀 트이게 해달라고 발버둥쳐도, 죽어가는 목숨 살려달라 악을 써도, 세상은 변하지 않고 조금씩 목을 조여오는 이 땅의 몰상식들. 죄진 자가 더 큰소리로 악 쓰며 종횡무진하는 가진 자들의 폭력.

그럴 땐 몰운대로 오시게.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삶은 저물고, 몰운대 소나무 등걸에 반달 하나 뜨면 그것이 그대의 타다 남은 심장일 것이네.

나 오늘 몰운에 서서, 길을 떠나온 사람들에게 묻는다. 그대, 몰운에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그리하여 아침의 신선한 바람과 저물녘의 안개, 보랏빛 구름 뒤로 비상하는 새 떼의 물결… 분명 그 아침에 펼쳐지는 지상의 아름다움은 여행자를 위한 축제.

그러나 나 이제 지천명에 이르러 비로소 몰운대에 서서 몰운의 아름다움만 보지 말고 수십길 벼랑에 스며든 상처 입은 영혼을 보라고. 영욕과 연민, 과거와 현재의 혼돈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몰운의 길을 만나라고 말하고 싶다.
- 소설가 유시연의 산문 '내 생의 경계 구역에 서서' 중에서

몰운이 고향인 소설가 유시연은 몰운대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다네. 그가 이번 행사에 참여해 낭송할 글엔 생에 대한 깊은 사유가 담겨있다네. 힘겹게 살아가는 몰운의 사람들에게 몰운대는 오르지 못할 세상과 같다네.

지긋지긋한 몰운을 떠나기 위해 불면의 밤을 보냈던 어린 시절, 소설가의 눈에 비친 몰운대는 넘어야 할 거대한 산과 같았다네. 하여, 지천명이 된 소설가는 몰운대에 서서 몰운의 아름다움만 보지 말고 수십길 벼랑에 스며든 상처 입은 영혼을 보라고 말하고 있다네.

몰운대는 세상의 자궁 끝이다.
▲ 몰운대 가는 길. 몰운대는 세상의 자궁 끝이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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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스무살 시절, 비포장 도로를 오래 걸어 몰운에 간 적이 있었다네.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던 날이었고, 손에는 새우깡 한봉지와 4홉짜리 경월소주가 들려 있었다네. 비와 함께 몰려온 구름이 몸을 감싸 안았다가 물러나길 몇 차례. 나는 병나발을 불며 세상의 끝을 보았다네.

그대와 함께 몰운의 사랑을 이룰 겁니다

발을 한발짝만 움직여도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절벽엔 생과 사가 공존하고 있었고, 나는 그 경계에 걸터 앉아 가래보다 짙은 울음을 컥컥 토해내었네. 적멸과 소멸, 그리고 생성의 성지 몰운대에서 나는 새우처럼 등 굽은 채 오래 울었다네. 오래 전의 이야기라네.

나 지금 불어오는 바람이 두렵습니다
나 지금 몰아치는 눈보라가 무섭습니다
나 깊은 눈매 사라진 지 오래지만
죽어서도 당신 떠나지 않을 겁니다.
이 바위 벼랑에 내린 뿌리 거두지 않을 겁니다.
다시 몰운대의 한줌 바람이 될 때까지
당신과 함께 몰운의 사랑을 이룰 겁니다.
- 이정숙 시 '몰운대' 중에서

그대와 함께 끝내 이루고픈 사랑을 이정숙 시인은 몰운에서 찾았다네. 몰운대의 한줌 바람이 될 때까지, 바위 벼랑에 내린 뿌리 거두지 않을 거라고 시인은 노래한다네. 몰운은 그런 곳이라네.

그대, 몰운으로 오시게나. 시월의 마지막 날엔 찬바람 불고 가을비 촉촉 내리는 날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 날 '몰운 고해'를 노래한 손세실리아 시인도 몰운으로 온다고 하지 않던가. 그녀 뿐이던가. 바리톤 박선욱과 인디언 수니를 비롯한 음악인과 이승철 시인과 성희직 시인, 맹문재 시인, 유승도 시인 등 많은 시인 묵객들이 몰운으로 온다지 않은가.

세상의 끝자락인 몰운에서 우린 시월의 마지막 날 절망은 절벽 아래로 던져 버리고 생명과 희망을 노래해야 한다네. 그리하여 세상의 끝 몰운에서 새로운 희망을 가슴에 담아 세상으로 떠나야 한다네. 몰운에서만 가능한 일일 것이네.

'2008 정선몰운대문학축전' 행사 시작은 10월 31일 오후 5시라네. 몰운에서 펼쳐지는 '화암사람들의 희망이야기'에 그대를 정중히 초대하네. 그대, 시월의 마지막 날 몰운에서 만나세.

7형제 봉을 돌아가면 비로소 몰운대가 나온다.
▲ 휘감아 돌면 곧 몰운대. 7형제 봉을 돌아가면 비로소 몰운대가 나온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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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몰운 오는 길 : 강원도 정선 - 동면 - 몰운대
행사문의 : 016-380-1141



태그:#몰운대, #정선아리랑, #화암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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