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서포면 구평에 사는 서진백(41)씨는 지인들과 다솔축제에 놀러왔다가 갑자기 농민들에게 납치(?)를 당했다.
<밥상을 엎어라> 마당극에서 배우들이 모를 심다가 갑자기 서씨에게 다가가 심심하다며 노래 한 자락 뽑으라고 무대로 납치한 것이다. 아 그런디, 배우들에게 재빠르게 납치당한 관객이 더 능청스럽게 연기를 잘 한다. 마이크를 척! 잡더니 유창하게 '갈매기 사랑'을 부르더니, 어라~ 한곡 더 하겠다며 연이어 '소양강처녀'까지 냅다 내지른다. 거기다 몸도 흔들흔들~ 본인이 더 신났다. 우메, 내도 무대체질인가벼~
관중은 웃음을 참지 못해 난리났다. 오빠, 멋있어~ 짱이야~ 배우들이 일손도 모자라는데 모나 심어주고 가라니께 덥석 못줄을 잡고 모심는 흉내도 잘도 낸다. 아따, 요즘 세상 무섭구마이. 관객들이 배우보다 더 배우같으니께. 이러다 배우들 밥줄 끊어지겠소이. 우쨌든, 수고했으라. 주민들 우하하하~ 배꼽잡고 웃다가 턱 빠질 뻔 했으니께 책임은 지시고. 우째 책임을 지냐고. 앞으로 더 웃기라요. ^*^
마당극 <밥상을 엎어라>에서 동네총각 우식이는 '볶을머리 미용실' 영자씨를 좋아한다. 우식이가 멋지게 차려입고 영자씨 만나는 기쁨에 차를 신나게 몰고 간다. 그때 여자 배우가 노란 스카프를 들고 무대 아래로 내려가더니 어떤 아주머니 목에 스카프를 걸어 준다. 어, 와이라노… 당황한 기색이 뚜렷하다. 어쩔 줄 모른다. 관중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린다. 우째 될라나… 이내 배우가 손을 잡더니 아주머니를 무대로 데리고 간다. 어, 그때 우식이가 하는 말에 주민들 웃음보가 폭발한다.
"어, 영자씨. 지금 나올 때가 아닌디."
우메, 쪽발려! 이를 어쩐다. 아주머니 얼굴이 순간 홍당무가 된다. 아, 요게 진짜 '미스 홍당무'구나. 우식이가 기지를 발휘해 "아주머니 연기 잘한다"며 박수를 유도해 위기를 모면시켜준다. 관중들도 너무 웃겨 뒤로 넘어질 뻔 하다가… 발딱! 일어나 우렁찬 박수로 격려한다.
"농사꾼에게 내 딸 시집 안 보낸다"는 어머니의 반대에도 동네총각 우식이와 결혼식을 올린 영자씨(아주머니 관객)가 곤명면 추동리의 윤일남(58) 여성 이장이다. 이장님 연지 곤지 바르고 우식이와 혼례를 올린 뒤 관객들에게 큰절을 올린다.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웃음소리와 함께 관객석에서 요런 덕담도 흘러나온다.
"우식아 잘 살아라!"
"아따 이장님 좋것시유. 총각이랑 결혼도 하고."
흐흐흐~ 이장님 복터졌수. 정말 좋것시유 ^*^
하하하~. 너무 웃기고 재미난다. 배꼽 잡고 뒤로 넘어간다. 오늘 원없이 한껏 웃어 본다. 데리고 온 딸도, 따라 온 친구도, 함께 공연한 풍물단원들도 축제를 즐기며 호호호~가 아니라 우하하하~ 마음껏 시원하게 소리내어 웃어본다. 하도 웃어 턱이 얼얼할 지경이다.
농사의 시름도, 쌓였던 피곤도 이날은 한바탕 웃음소리에 놀라 모두 싹! 사라졌다. 요것이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주민의 축제'의 참맛 아니것소.
'사랑하는 나의 딸아, 니도 후제 커서 어른이 되걸랑 엄마 아빠보다 더 멋지고 재미난 멋들어진 축제를 연출해 보거래이.'
'하모예, 어머이'
활짝 웃는 모녀의 이심전심일까 ^*^
오후 5시, 한참 리허설 도중에 오늘 사회를 맡은 송림마을 이장 강위관(47)씨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곤명풍물패단원으로 막 예행 연습을 마친 아내에게 "집에 소가 새끼를 낳을 모양이다"며 "빨리 집에 갔다오라"고 다그친다.
옆에서는 "아, 바쁜디. 소새끼 보고 내일 나오라고 그래라" "퍼뜩 나오라고 물 떠놓고 빌어야 되는거 아이가"라며 거든다. 후다닥 차를 몰고 달려갔던 아내, 잠시 후 돌아와 "어미소가 숫소 새끼를 낳았다"며 기뻐한다. 축제진행을 앞두고 새끼소가 우메~하며 세상에 태어났으니 왠지 시작부터 조짐이 좋다. 강이장님 오늘 힘 받것소. 잘 될 것이요.
강이장, 행사를 앞두고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고 정신이 없다"면서 "작년에는 어떻게 진행해야 되는지 몰라 시껍했다"고 슬쩍 미소를 짓는다. 작년에는 사회를 보는 중에 자신도 모르게 "어, 이게 아닌디…"가 자꾸 튀어 나왔다. 관객들은 그게 재미있다며 손뼉치고 난리났다. 사회자의 진행이 다소 서툴고, 더듬고, 순서를 뒤바꾸고, 엉뚱한 멘트를 날려도, 그대가 우리의 이웃이요 친구라 오히려 그 모습이 김치국처럼 정답고 구수하다.
"어르신들, 날씨가 찹찹한디 뒤에 따끈따끈한 녹차가 준비되어 있으니 한 잔 하세요."
"쪼깨만 있으면 공연이 시작되는디, 심심하시죠. 여기 음악 좀 주이소."
"박수도 에끼시면 안됩니더."
멘트에 사람냄새가 난다.
앵콜! 앵콜! 계속 소리친다.
"앵콜로 한곡 하는 줄 알았더니만 10곡 해버리네. 으와~ 이러면 오늘 하루종일 가버리는데 우짤거나."
관중의 박수와 환호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에고, 모르것다. 가자!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모두 엉덩이가 덜썩덜썩, 어깨도 으쓱으쓱, 얼씨구나 지화자 좋다~
"이런 무대에 서기는 처음"이라며, 축제에 해학과 재미가 있고 풍요로운 느낌이 든다는 향토가수 한빈씨. 자신도 "고성군 시골에서 자란 농군의 아들"이며, 이런 분위기의 축제는 "그냥 필요한 것이 아니라 농민들의 삶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고 더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트로트가 서민음악인데 축제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울린다. 저도 즐겁다"며 밝은 미소를 띈다.
쌀쌀한 가을 저녁, 따끈한 오뎅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친구야, 출출한데 오뎅이랑 소주 한잔 할까. 함께 구경나온 동네이웃이랑 친구랑 어울려 소주잔을 기울인다. 포장마차엔 솥에서 김이 하얗게 피어오른다. 탁자에 둘러 앉아 술잔을 주고받는 사람들. 입에서 침이 고인다.
아, 친구가 보고프다.
마음은 이미 뜨끈한 오뎅국물과 정겨운 소주향기에 취해버렸다.
"우리 곤명풍물패는 낮에는 농사 짓고 밤에 짬짬이 시간 내 연습해서 사천시에 초청받기도 했습니다. 어깨를 덩실덩실, 궁둥이를 실룩실룩, 신명나는 풍물공연을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의 소개에 정이 듬뿍 흥이 담뿍이다.
도시에서 살다가 삼정리로 들어온 지 8년이 되는 곤명풍물패단원 최경숙(43)씨는 "풍물을 배운 후로는 마을에서 개최하는 정월대보름날 지신밟기 행사는 자기 가족들 차지"라며 "남편과 큰딸, 아들 가족 4명이 모두 풍물패가 되어 온동네를 휘저으며 신나게 논다"고 한다. 사람들과 어울려 "풍물을 치면 무료하지도 않고 피로도 풀어진다"며 자랑을 늘어 놓는다.
순수농업인들로 구성된 곤명풍물패는 매년 신입회원들이 들어와 지금은 30여 명으로 늘어났다. 젊은 사람들이 많고 또 부부가 절반이상이다. 부모따라 아들 딸들이 풍물을 배우는 가정도 많다. 풍물을 통해 부모 자식간 대화가 이어지고 가정도 화목해졌다.
작팔리에 사는 조숙자(68)씨는 공연을 보고 "너무 잘한다. 참 재미나고 좋다. 내년에도 하면 좋겠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곤명사람 만세,
'밝은땅 다솔축제' 만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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