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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4년 전 이맘때인 2004년 11월, 참여정부는 4가지 개혁 입법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것은 국가보안법(폐지)과 사학법과 언론관계법과 과거사관련법이었다. 열린우리당은 이를 추진하며 4대입법이라고 불렀는데, 이에 대해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대한민국이 망하는 4개의 망국법'으로 규정했다.

 

당시 박근혜 당 대표와 김덕룡 원내대표 등 주요 당직자 및 소속 의원과 당원 등이 대거 참여한 토론회에서 박 대표는, "우리당이 추진하는 4대법안의 대응에 당의 운명을 걸고 나라를 지킨다는 비장한 각오로 임할 것"이라고 하면서, "만일 여당에서 밀어붙이면 우리는 국민과 함께 싸우겠다"고 결전 의지를 피력했다. 토론회가 열린 회의장 양쪽에는 '민생외면 국정파탄' '국민분열 4대악법 철폐하고 반성하라'는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다음 달 12월 5일, 시청 앞에서는 '4대악법저지 전국민궐기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당시 한나라당의 이규택 최고위원은, "(참여정부가) 남한의 친북·간첩 세력이 해야 할 적화통일작업을 대신해 주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나라당과 합세한 자민련 김학원 대표는 4대입법 중 하나인 언론관계법을 진시황의 분서갱유에 비유했다. 그들은 하나 같이 보수 세력의 결집을 촉구했는데, 이 자리에는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와 이철승 자유민주민족회의 상임의장도 참석해 한 마디씩 거들었다. 또한 그들은 좌익 인사였던 대통령의 장인 권오석씨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기도 했다.

 

열린우리당의 비극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일부 견해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북송금특검법은 방임하고 4대입법 반대 투쟁에는 굴복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노무현을 '입만 진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가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측으로 주행한다'는 말도 이때 생긴 것이다.

 

아무튼 참여정부의 회심작 4대입법은 와해되고 말았다. 개혁·진보세력은 빈사 상태에 빠졌고 참여정부는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에 자진해서 휩쓸렸다. 그리고 결과는 신흥보수를 표방한 이명박 정권의 탄생으로 나타났다.

 

부자천국, 서민지옥을 만들려고 하는 '이명박 법안'

 

역사는 반복되기도 하지만 반동하기도 한다. 그때 우리가 성취할 수도 있었던 4대개혁입법은 불과 4년 만에 이제 흔적조차도 없어졌다. 대신 이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성격을 가진 법안이 출현하고 있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관철시키려고 하는 131개 법안이 그것이다.

 

이른바 '이명박 법안'이라고 불리는 이 법안들은 청와대에서 77개, 한나라당에서 54개를 마련한 것이다. 한나라당에서는 이를 두고 '정상화'라고 말한다. 반면 민주당에서는 '과거로의 회귀'라고 주장한다. 정상화건 과거로의 회귀건,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 법안들 어디에도 서민을 위한 것은 없다. 다시 말해 이 사회의 가장 심각한 화두인 양극화 문제가 도외시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법안들에는 독재정치에 대한 향수가 깃들어 있다. 이 점에서 '과거로의 회귀'라는 민주당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131개나 되는 법안이지만 골자는 4개로 압축된다. 그것은 부자감세법, 재벌비호법, 방송장악법 그리고 신공안법 들이다. 반대자의 입장에서 굳이 이름 부른다면 이것 역시 또 하나의 '4대악법'인 것이다. 이렇게 됨으로써 참여정부의 4대악법은 역사에서 눈처럼 녹아 없어졌고, 이명박 정부의 '신 4대악법'을 직면하게 되었다. 때문에 지금 역사는 바야흐로 반동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는 부자감세법이다. 정부는 한국의 조세부담률이 높아 성장률이 떨어지고 양극화가 심화됐다는 논리를 편다. 그런데 정부의 감세안에 따르면 부자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도록 되어 있다. 소득세의 경우 1억 이상 소득자는 1인당 근로소득세가 대략 연간 172만 원 가량 줄지만 중산층과 서민의 경우에는 1회에 그치는 유가환급금 정도가 고작이다.

 

이것은 총 감세 혜택의 4분의 1 이상이 0.7%밖에 안 되는 고소득자에게, 5분의 4 정도가 10%밖에 안 되는 상위 소득자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극화 해소를 위한 감세 정책'이라는 정부의 말에는 다분히 기만성이 있어 보인다.

 

경제 수장이라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아예 노골적으로 부자 편을 든다. 그는 10월 29일 언론사 경제부장들과의 간담회에서, "현 정부를 자꾸 상위 2%만을 위한 정부, 강부자 내각이라고 비난하는데, 지금까지 부자들한테 혜택을 주는 실질적인 정책은 나온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하고, "이번 세제개편안이야말로 새 정부 들어 (실시한) 부자들을 위한 첫 정책이라고 지적 받을 수 있다"고 실토했다. 

 

정부는 세금 부담을 줄여 투자와 소비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런데 이것은 돈 잘 버는 사람들에게 더 많이 벌게 해 주어 더 많이 소비하게 함으로써 저소득층은 그 떡고물이나 챙기라는 식의 편파적인 발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 저소득층을 경제 주체에서 소외시키는 정책인 것이다.

 

법인세 인하가 기업을 위한 정책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양도소득세를 인하하는 것은 부동산 보유자를 위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부자 감세 정책은 종부세 완화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종부세란 기껏해야 전체 가구의 2%에 해당하는 세금이다. 이런 점으로 보아 정말 감세 정책으로 서민 경제를 살리고 싶다면 다수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부가가치세를 인하하는 것이 온당하다.

 

둘째 재벌비호법이다. 한국 재벌은 복잡한 출자 관계를 이용하여 계열사 중의 하나만 장악하면 나머지 회사를 다 장악할 수 있었고, 적은 지분으로 전권을 행사하면서도 계열사에 문제가 생길 때에는 직접적인 책임을 모면해 왔다. 그래서 생긴 것이 출자총액제한제도이다. 이것은 자산 규모 5조 원 이상 대기업 집단이 순자산의 25%를 초과하여 다른 국내 회사에 출자하는 것을 제한하는 제도이다.

 

2004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삼성의 이건희 일가가 실제 보유 지분보다 17배가 넘는 왜곡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최근 이건희 삼성 전 회장은 무수한 불법과 탈법 사실이 증명되었는데도 실형을 살지 않는 불가사의한 저력(?)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이런 재벌에게 더 힘을 보태준다고 한다. 그래서 정부· 여당은 공정거래법을 개정하여 재벌의 출자총액제한제를 폐지하려고 한다. 가뜩이나 이 제도는 재벌들의 줄기찬 요구로 많은 예외조항을 두어 약화된 상태인데 이마저 폐지한다면 재벌들의 문어발식 지배 행태가 재현될 것이고 이에 따라 망국적인 정경유착이 유발될 것이다. 설마 이명박 정부가 은연중 정경유착을 바라고 있을 리는 없다고 본다.

 

또한 정부·여당은 재벌로 하여금 은행을 소유하게 하는 금산분리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금산분리완화는 최근 도산한 미국의 리먼 브러더스와 같은 대규모 투자은행을 만들겠다는 한물 간 경제 지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촛불시국을 공안정국으로 잠재우겠다는 이명박식 발상

 

셋째는 방송장악법이다. 정부 여당은 재벌이 방송을 소유하게 하는 신종 방송법을 준비하고 있다. 이 법은 방송통신위원회 스스로도 "대기업의 방송 진출을 위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상공회의소 공청회). 여기에다 정부· 여당은 신문이 방송을 겸업할 수 있는 신문법 개정도 서두르고 있다. 한국의 조중동은 이미 언론의 영역을 넘어 재벌의 범주에 드는 회사들이다. 이른바 언론재벌이라는 것이다. 만약 이런 법이 통과된다면 재벌과 조중동이 합작으로 방송을 좌지우지하는 사태가 초래된다.

 

이미 거의 모든 방송사에 이명박 대통령의 특보 출신을 심어 놓은 정부는 또 무엇이 모자라 방송법까지 손보려고 하는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KBS를 장악하고 MBC를 주눅 들게 했으며 YTN을 와해하고 있는 처사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는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복안이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언론관장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에는 민주언론의 기본 개념도 정립되어 있지 않은 장관과 차관이 자리를 잡고 있다. 국감장에서 사진기자들에게 욕지거리를 내 뱉은 유인촌 장관과 대통령에게 KBS 사장 임명권이 있다는 주장을 편 신재민 차관이 그들이다. 그들을 가리켜 우스갯소리로 '욕설장관'과 '팔짱차관'이라고 하는데 이보다는 그들의 성을 따서 차라리'유신문화부'라고 하는 것도 더 잘 어울림직도 할 정도이다.     

 

넷째는 신공안법이다. 131개의 이명박 법안에는 인터넷포털규제 신설법과 불법집단행위 집단소송제법, 그리고 통신비밀보호법 등이 들어 있다. 이 세 법안 모두가 정부에 반대하는 국민을 염두에 두고 만들려는 법처럼 보인다. 이것은 만약 촛불 시위가 없었더라면 이런 법을 만들려고 했을까 하는 의문을 자아내게 한다는 것이다.

 

혹시 이명박 정부는 '적은 인터넷에 있다'는 신조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나 않은지. 그동안 이 대통령은 누차에 걸쳐 인터넷의 해악을 '정보 전염병' 운운하며 거론해 왔다. 그들은 아무런 근거 없이 인터넷상의 건전한 정책 비판 시민과 최진실 악플 행위자를 동일시한다. 그러니까 이른바 '최진실법'이라는 용어도 그들 스스로 먼저 만들어 사용한 것이 아닐까.

 

또한 불법행위 집단소송제법은 시위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이다. 이것은 집단 시위로 인해 손해가 발생할 경우 그 원천적 책임은 원인 제공자(주로 정부)에 있음을 간과한 데에서 나온 것이다. 게다가 시위대가 장악한 현장에서 손해를 발생케 만든 시위자를 기술적으로 가려내기도 어렵다. 그럴 경우 그 시위를 주도한 단체에 무조건 피해 보상을 물림으로써 시위 주도 세력을 무력화시키겠다는 이중적인 의도가 내재해 있다.

 

사실 최고의 악법은 통신비밀보호법이다. 이 법은 시민·인권 단체들로부터 '조지오웰의 <1984년>에 나오는 '빅브라더'를 등장하게 하는 법',  또는 '전 국민의 사생활을 기록으로 남기는 악법'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로 인해 모든 휴대전화와 인터넷 감청이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문자통화와 전자우편이 공개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또한 신용· 버스카드의 이용 내역도 샅샅이 조회된다. 이것은 '통신비밀보호법'이 아니라 명백한 '통신비밀침해법'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덧붙이자면 북한인권법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자기 일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일수록 남에게 잘 간섭한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사례인 것 같아 씁쓸하다. 이명박 정부 들어 한국 국민의 자유는 제약되었고 인권은 약화된 게 사실이다. 요컨대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후퇴시킨 정부가 북한의 인권을 간섭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꼴이어서 민망하다. 

 

레이건과 전두환의 단점만 골라서 하는 이명박 정부

 

감세정책의 1인자는 28년 전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었다. 그는 부유층에 대한 세금을 대폭 내려서 경기 활성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지금 미국이 당면하고 있는 금융 위기는 레이건이 만든 것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그는 미국에 막대한 재정· 무역적자를 안긴 장본인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풀 크루그먼 교수는 "미국 중산층이 붕괴한 것은 레이건 이후의 감세 정책 탓"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하지만 레이건은 공안 정국을 조성하지는 않았다. 공안정국의 1인자는 레이건과 동시대의 한국 대통령 전두환이었다. 그는 공포정치의 대명사였다. 그렇지만 전두환은 부자나 재벌을 위한 정책을 노골적으로 펼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부자나 재벌을 위한 정책과 공안정국을 동시에 펼치려 한다. 다시 말해 레이건의 단점과 전두환의 단점을 동시에 본뜨고 있는 것이다. 이럴 경우 이 나라가 어찌 될 것인지는 불을 보듯 훤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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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필자 김갑수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제국과 인간>을 연재 중입니다.


#이명박 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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