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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 콘서트>
<한국사 콘서트> ⓒ 두리미디어
역사를 소재로 한 책의 출간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이 그만큼 역사에 집중되고 있다는 뜻이리라. 이번에는 어떤 책 속으로 역사 여행을 떠날까 고민을 해야 할 정도로 다양한 책이 새로 출간된다.

생각 같아선 그 많은 책들에 묻혀 며칠이고 지새고 싶지만 그 욕심 채우고 살만큼 팔자가 편하지 못해 아쉽다. 쟁점 한복판을 거침없이 파고들어 오랜 세월 덧씌워진 장막 속 속살까지 보여주는 책을 읽으면 가슴이 후련해진다. 새로운 각도에서 참신한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있는 책은 읽고 또 읽어도 재미있다.

<청소년을 위한 한국사>를 출간하여 스테디셀러를 만든 백유선이 <한국사 콘서트>란 책을 세상에 선보였다. '29개의 테마로 한눈에 보는 우리 역사'란 부제를 달고 있다. 테마 별로 한국사를 엮어 한 권의 책으로 출간했던 사례는 이미 많아 큰 기대 하지 않고 펼쳐본 책이다. 하지만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아, 옛날이여!

대명천지, 아주 환하게 밝은 세상을 뜻하는 말이다. 단지 환하고 밝은 세상만 뜻하는 게 아니다. 부정과 불의가 없는 세상이란 의미까지 담고 있다. 어떤 잘못이 있을라치면 사람들은 '대명천지에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개탄한다.

대명천지(大明天地)의 실제 의미는 무엇일까? <한국사 콘서트>에서 그 의미를 찾아보자.

명에 대한 맹목적인 사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대명천지'라는 말이다. 송시열은 화양동 계곡의 바위에 이 말을 새겼고, 선비들이 뱃놀이를 즐겼다는 경북 상주의 경천대 바위에도 이 말이 새겨져 있다. 다른 이들이 쓴 것도 종종 발견된다. …(중략)… 대명천지와 짝을 이루는 말로 '숭정일월'이 있다.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의 연호가 숭정이다. 그러니 결국 두 말은 모두 같은 뜻이다. 대명황제가 다스리는 밝고 환한 세상을 꿈꾸며 쓴 말인 것이다. - 책 속에서

대명천지는 조선시대 사대적 성향을 가진 선비들의 세계관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명에 의존해 살던 사람들은 대명천지가 가장 이상적인 세상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명과 아무 상관없이 사는 사람들조차 덩달아 대명천지의 주술에 감염되었다. 집단적 착시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조선시대 대외정책에는 친명사대의 원칙이 적용되었다. 조선 초 정도전에 의해 '요동정벌론'이 잠시 고개를 들기도 했었지만 정도전이 제거된 뒤 내내 친명정책이 유지되었다. 심지어는 명의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고, 청이 신흥 강대국으로 성장하던 상황에서도 친명의 명분에 매달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신흥 강대국 청의 성장을 외면하고 몰락해가는 명에 매달린 결과는 참담했다. 병자호란으로 국토가 유린되고 인조는 청 황제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세자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이 끌려갔다. 평범한 행복을 누리며 살기를 원했던 여성들의 삶이 송두리째 파괴되었다. 가까스로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여성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환향녀'라는 냉혹한 시선뿐이었다.

그런 모진 시련을 당한 뒤에도 대명천지라는 세계관을 바꾸지 못한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다. 청을 오랑캐라 비하하면서 대명천지 밝은 세상을 그리워했다. 아, 옛날이여!

냉전 질서가 그리운 사람들

조선시대 명이 대명천지의 상징처럼 인식된 것처럼, 현재 대한민국에서 미국에 대한 인식 또한 그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해방과 대한민국의 수립,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역할 중에 긍정적 측면만 부각시키려 애쓰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자칫 미국의 이미지에 흠집 줄만한 내용을 거론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해방 공간 속에서 미국은 우리에게 어떤 역할을 했을까? 다시 <한국사 콘서트> 속으로 들어가 보자.

미국이 한국의 신탁통치 문제를 처음 언급한 것은 1943년 루즈벨트에 의해서였다. 카이로 회담을 주도한 루즈벨트는 '한국에 40년간의 신탁통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는 이후 카이로 선언에서 '적절한 과정을 거쳐(in due course)' 한국을 독립시킨다는 완곡한 외교적 수사로 표현되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김구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 세력은 연합국의 정책이 한국으로서는 수치스러운 것이라며 맹렬하게 비판했다.

1945년 얄타 회담에서 한국의 신탁통치에 대한 미·소 정상의 구두 양해가 있었다. 이때 루즈벨트는 20~30년간의 신탁통치를 제안했고, 스탈린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전쟁이 끝나갈 무렵에는 신탁통치 문제에 대한 미·영·중·소 4개국의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것이 구체화되어 1945년 12월 모스크바 삼상 회의에서 '한국 문제에 관한 결정'으로 발표되었으며, 여기에서는 소련의 주장에 따라 신탁통치 기간이 5년으로 결정되었다.

즉 신탁통치 문제는 미국이 기본적 틀을 구상하고 소련 등의 양해를 구함으로써 합의된 것이다. - 책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사람들은 신탁통치는 소련이 주장했고, 미국은 즉각 독립을 주장했다고 잘못 알고 있었다. <동아일보>의 오보를 사람들이 그대로 믿었던 것이다. 더구나 <동아일보>가 내보낸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결의 사항이 신탁통치 문제의 일부에 불과했다.

해방 공간에서 미국과 소련은 모두 자국의 이익을 철저하게 추구했다. 그 결과 우리 민족은 냉전 질서의 포로가 되어 분단이 굳어졌다. 미국과 소련이 대립하던 냉전 질서는 이미 지나간 과거의 유산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분단된 한반도에는 냉전의 그림자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해방 후 미국의 역할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노력도 수용하지 못하고 삿대질 하는 이들도 많다. 그들의 생각은 여전히 냉전 질서 속에 머물러 있다. 대명천지 밝은 세상을 그리워했던 사람들처럼.

사람들은 왜 역사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걸까? 저자가 인용한 중국의 고서 글에서 답을 찾아보자.

역사를 아는 자는 무너지는 담장 아래 서지 않는다.(정관정요) - 책 속에서

덧붙이는 글 | 백유선/두리미디어/2008.10/13,800원



한국사 콘서트 - 29개 테마로 한눈에 보는 우리 역사!

백유선 지음, 두리미디어(2008)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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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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