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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의 달 10월 마지막 날 아내와 함께 ‘임피 향교’에 다녀왔습니다. 바람이나 쐬고 오자는 아내의 제의에 붉게 물들었을 내장산이 떠올랐으나 시간이 늦을 것 같아 근교 명소를 돌아보기로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첫 방문지를 임피면에 있는 임피 향교로 정하고 차를 몰았습니다. 가을걷이가 끝나가는 들녘과 선홍빛으로 변해가는 산야를 감상하며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니까 답답했던 가슴이 시원하게 트이면서 기분이 상쾌하더군요.

 

운전 면허증이 없는 저는 아내와 나들이를 할 때마다 도우미가 됩니다. 1996년에 출시된 티코를 운전하느라 고생하는 아내의 말동무가 되어 안내판을 읽어주고 고속도로 통행료를 챙겨주는 착하고 재치 있는 도우미가 되려고 온 힘을 다하고 있지요.

 

집에서 승용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군산시 임피면은 널리 알려진 역사와 문화의 고장입니다. 백릉 채만식 생가와 채만식 도서관,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임피역 등을 꼽을 수 있겠는데요. 조선 초기(태종 3년)에 창건한 임피 향교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백릉 채만식 형제들도 다녔다는 ‘임피 향교’

 

 

임피 향교는 임피면 읍내리에 위치한 채만식 생가에서 5분 정도 거리에 있습니다. 채만식 모교인 임피 초등학교와 채만식도서관(구 임피도서관) 뒤편 경사진 언덕 기슭에 자리하고 있어 깊은 가을 냄새와 더불어 채만식의 체취가 물씬 풍기고 있었습니다. 

 

채만식도서관 입구에서 임피 향교를 바라보면 산뜻하게 단장된 기와 담벼락 아래로 옛 현감들과 군수들의 공덕비가 세워져 있고 중앙에는 붉을 칠을 한 홍살문이 서있어 시계를 조선시대로 돌려놓은 것 같았습니다.   

 

가운데에 태극문양이 새겨진 홍살문은 효자·충신·열녀들이 살던 마을 입구 또는 살던 집 앞에 그들의 행실을 널리 알리고 본받도록 하려고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오른쪽 기둥 밑에 ‘개하마(皆下馬)’라고 음각한 작은 돌비석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향교 입구에는 문이 세 개라는 뜻의 외삼문(外三門)이 있고 명륜당과 대성전 사이에는 내삼문(內三門)이 있는데,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서 왼쪽 문으로 나온다고 합니다. 오직 신(神)만이 드나들 수 있기 때문에 대제 지낼 때만 열어놓는 가운데 문은 일반인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하는데요. 공자 추모정신이 얼마나 깊은지 엿보이는 대목이었습니다.

 

 

외삼문(外三門)을 지나 무청(시래기)을 매달아놓은 빨랫줄 옆 우물가와 오래된 사찰의 기와지붕에서만 자란다는 와송(瓦松)에 카메라 앵글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옆집 아저씨처럼 넉넉하고 푸근하게 생긴 아저씨 두 분이 다가오시더군요. 4년 전부터 향교를 관리하고 있다는 오정일(68세), 이영일(69세) 아저씨와 인사를 나눴는데 연세에 비해 젊어 보였고 안내도 친절하게 해주셨습니다.

 

 

대부분 우물이 오염된 지금도 샘물을 끌어올려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기에 뚜껑을 열어보니 얼마나 깊은지 바닥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땅속 15m 깊이에서 솟는 물이어서 생수보다 수질이 좋다고 하기에 호기심이 동했으나 빈병이 없어 다음으로 미뤘습니다.

 

홍살문 오른쪽 기둥 밑에 새워진 돌비석에 음각한 ‘개하마(皆下馬)’ 의미는, 아무리 지체가 높은 양반이 가마나 말을 타고 왔어도 홍살문 바깥에서 내려 경건하고 참된 마음으로 공자를 모신 사당(향교)에 들어와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했습니다.   

 

‘개하마’에 대해 설명을 듣자니까 남에게 모범이 되어야 할 국회의원과 장·차관들이 탈법과 불법을 저지르고도 큰소리치는가 하면, 자연환경과 문화재 보호를 위해 차량출입을 금지한다는 팻말을 달아놓고 자기들은 보란 듯이 고급승용차를 타고 안으로 들어가는 종교 지도자들이 떠올라 입맛이 씁쓸했습니다.

 

조선시대부터 지방교육기관으로 역할을 해온 임피 향교는 조선 태종 3년(1403년) 임피면 교동에 창건했는데, 인조 8년(1630년) 현 임피면 미원리 서모마을로 이건 되었고, 숙종 36년(1710년)에 현 위치로 옮겨와 지금까지 보존 관리되고 있다고 합니다. 

 

 

매주 일요일에는 초등학교 학생들이 명륜당(明倫堂)에 나와 예절과 한문공부를 하는데 퇴직교사 네 분이 교대로 가르치고 있으며 책자는 성균관에서 지원해준다고 합니다. 전북 한문 자격시험에서 1등을 한 학생을 많이 배출했고, 며칠 전에는 1백여 명의 유림이 경로잔치를 열어 마을 노인들을 기쁘게 해드렸다며 자랑을 곁들였습니다.  

 

청소년들의 윤리와 예절교육이 목적인 일요학교는 1983년부터 운영해오고 있다고 하는데요. 왼편 기둥에 걸려 있는 액자에 ‘진충보국(盡忠報國), 효친경장(孝親敬長), 탐구면학(探究勉學)’이라고 적힌 교훈(校訓)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청계천 공사를 보면 박정희 제자 같고 방송언론을 장악하는 요령을 보면 전두환 제자 같아서 헷갈리는 이명박 대통령이 떠올랐는데요. 삽질로 경제를 살리려는 무지한 대통령과 국민을 우습게 보는 청와대 땅 수석들이 주일마다 열리는 임피 향교의 일요학교에 입교해서 진정한 호국정신과 효친경장 사상을 익히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대통령 눈치나 살피며 자리를 지키고, 주구노릇을 하기로 작정한 일부 줏대 없는 위정자들이 매년 받아야 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좋겠습니다. 그들이 전국 각지에 남아 있는 향교를 찾아다니며 교육을 받으면 정치문화는 물론, 지역경제발전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되기에 건의하는 것입니다.

 

 

임피 향교의 주요 건물로는 공자를 모신 대성전(大成殿), 명륜당(明倫堂), 동재(東齋), 서재(西齋)와 관리사, 내삼문(內三門), 외삼문(外三門)이 있습니다. 1975년에는 문화재 자료 제95호로 지정되어 군산시의 지원과 유림의 정성, 독지가들의 지원 아래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시대에는 향교에 공자를 모신 사당을 두고 유학을 장려했는데요. 대성전 중앙에 공자의 위패를 모시고, 동·서로 맹자 등 네 성인, 주자 등 중국 송나라 때 유학자 네 사람을 함께 모셨으며 신라시대 설총을 비롯한 우리나라 유학자 열여덟 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차분하면서도 열정적으로 설명해주시던 관리인 아저씨는 임피 향교에 소속된 군산, 익산, 대야, 나포 개정 등의 유림 400여 명 가운데 97세 드신 분이 최고령자라며 지역문화발전과 예절교육에 일조하고 있어 자부심이 든다면서도 젊은이들이 시골을 떠나기 때문에 향교를 계승 유지할 젊은이들이 없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임피 향교를 둘러보고 느낀 점이 있는데요.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고라도 출세만 하면 떠받드는 사회에서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문화가 제대로 계승 발전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와 시골의 작은 문화재인 향교를 보존하려고 몸과 마음을 다하는 관리인 아저씨들에게 경외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태그:#임피 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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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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