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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산 단풍으로 물든 수락산 정경
수락산단풍으로 물든 수락산 정경 ⓒ 김철관

가을 단풍을 만끽하기 위해 모처럼 등반을 떠났다. 서울 인근 수락산이었다. 올해 들어 첫 등반이라서 그런지 조금 힘들었다. 힘든 이유는 작년에 비해 나이가 한 살 더 들었다는 점과 몇 달 전 오토바이 사고로 몸을 추스르느라 운동을 전혀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 종합건강진단을 받았는데 작년에 비해 5kg 체중이 늘었다. 이런 체구로 3~4시간을 등반을 했으니 지금도 양쪽 다리 관절이 욱신거린다.

 

1일 오전 평소 호형호제한 '박보형'이라는 후배와 함께 아침 9시 수락산을 향했다. 당고개역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수락산 입구에서 등반을 시작했다. 이곳은 서울 노원구 상계 3동과 4동에 속한, 마지막 서울 달동네로 알려진 곳이다. 최근 뉴타운으로 지정돼 구역마다 경축을 알리는 재개발 건축조합 현수막이 여기 저기 나부꼈다. 이곳 수락산 입구는 다른 입구에 비해 등산객들 움직임이 한산했다.

학림사 학림사 경내에 있는 탑
학림사학림사 경내에 있는 탑 ⓒ 김철관

입구에 들어서자 불교 현수막이 나왔다. '살아 있을 때 선행을 행하지 않으면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 노자가 없어 고생한다'고 쓴 글 밑에 대한불교조계종 수락산 학림사라고 써있었다. 조금 지나자 부대 공고문이 나온다. 빨간 글씨에 '거수자 및 간첩용의자' 신고 안내 표지판이었다. 간첩신고 포상금 최고 1억원, 좌익사범 포상금 최고 3천만원, 밑에 육군 제1039 부대장이라고 적시했다. 그러나 간첩신고 포상금과 좌익사범 포상금 문구가 왠지 신경이 쓰였다. 역사 과제인 민족화합과 민족통일을 저해하는 문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 현수막에서 800m 정도 걸어가니 학림사라는 절이 나왔다. 학림사(鶴林寺)는 마치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학지포란(鶴之抱卵)에서 유래됐다. 학림사는 1300년전 신라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서, 고려 공민왕 때 나옹화상이 일신 중수해, 기도와 수도도량으로 혜명을 이어왔던 곳이다. 조선 선조 때인 1597년 정유병화로 소실돼 인조 때인 1624년 무공화상이 중수했다. 그 후 여러 차례 부수가 이루어졌고, 현재 주석하고 있는 도원 스님과 덕오 스님이 일신 중수 불사한 곳으로 알려졌다.

 

멋진 기념촬영 후배 박보형 씨가 멋진 포즈를 취했다.
멋진 기념촬영후배 박보형 씨가 멋진 포즈를 취했다. ⓒ 김철관

궁금해 잠시 학림사로 들어갔다. 경사진 계단 입구 건물에 '수락산 학림사'라고 쓴 한자 글귀가 선명하게 들어왔다. 경내에 들어서자 대웅전이 나왔다. 청학루, 오백나한전, 선불장, 약사전, 선불각 등을 둘러봤다. 경내에는 스님과 불공을 드리려온 불자들이 여기 저기 보였다. 울긋불긋한 절 주변의 운치가 마음에 와 닿았다. 특히 사찰 내 진열된 노란 국화꽃 꽃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경내에서 사진도 몇 장 찍었다.

 

함께 간 '박보형'이란 후배는 등산을 자주 한 사람이었다. 그는 등산을 통해 몇 번이나 들른 사찰이라는 이유로 절 입구에서 기다렸다. 홀로 관람을 마치고 경사진 절 계단을 다시 내려와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는 가는 도중 여러 차례 중국 고전을 들려줬다. 중국고전을 섭렵한 웬만한 전문가 뺨칠 정도였다. 수북이 쌓인 낙엽과 솔잎을 밟고, 가을 향취를 마시면서 계속 걸었다.

 

숲 풀림 한 가운데 '접근금지'라고 쓴 특고압 전선로인 철탑이 나왔다. 자연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철탑은 흉물로 보였다. 철탑을 지나 얼마 정도 갔을까. 용굴암 입구가 나타났다. 이곳에도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무자년 동안거 백일기도 입재'라고 쓴 문구 밑을 보니 2008년 11월 12일부터 2009년 2월 9일까지 대한불교조계종 용굴암에서 100일 기도가 열린다는 의미였다. 용굴암은 1878년 고종 15년 창간된 사찰이다.

 

수행납자 스님들이 자연동굴 나한전에 16불상 기도 정진을 하는 자그만 토굴로 내려오다가 구한말 1882년 고종 15년 임오년에 대원군의 섭정에 밀려난 명성황후가 칠일 기도 치성을 드리고 가 다시 집정을 하자 그 공덕을 기리기 위해 조정에서 하사한 하사금으로 현재 대웅전 자리에 법당을 지었다. 6.25 동란을 겪고 나 폐사 위기에 있다가 최근에야 사찰 면모를 갖추게 됐다. 현재 주지 석각연에 의해 노원구 전통 사찰로 인정받았다.

 

여자 치마 모양을 닮았다고 붙인 치마바위를 지나자 서울소방재난본부 119 특수구조대의 비상구급 약품함이 눈에 들어 왔다. 혹시 등산을 하다가 부상이나 다친 사람들을 위한 간단한 응급조치 약이 들어 있는 약품함이었다. 얼마 걸었을까. 하강바위가 나온다. 하강바위는 참 신기하게도 남자 성기를 고스란히 닮았다. 그곳을 배경으로 많은 등산객들이 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다.

하강바위 하강바위는 남자 성기처럼 생겼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하강바위하강바위는 남자 성기처럼 생겼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 김철관

한참 걷다보니 코끼리 모양을 하고 있는 코끼리 바위가 나왔다. 잠시 이곳에서 휴식을 취했다. 첫 휴식이었다. 의정부 장암지구가 보였다. 이곳에서 바라본 주봉은 절경이었다.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함께 동행한 후배가 친구와 수락산 주봉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했기 때문이었다. 후배는 촬영을 하면서 쉬엄쉬엄 여유 있게 걸어가는 나에게 빨리 걸으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군인 철모를 닮은 철모바위를 지나 남양주시에서 만든 안내 표지판이 나왔다. 남양주 청학리 4.13km, 정상 0.51km 등이 적힌 표시판이었다. 목판 안내판에는 김용택 시인의 '방창'이란 시가 걸려 있었다.

 

방창

 

산 벚꽃 흐드러진

저 산에 들어가 꼭꼭 숨어

한 살림 차려 미치게 살다가

푸르름 다가고 반 삭정이 되면

하얀 눈 되어

그 산 위에 흩날리고 싶네

 

주봉 수락산 제일봉인 주봉에서 한 등반객이 어린애와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주봉수락산 제일봉인 주봉에서 한 등반객이 어린애와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 김철관

주봉에는 맥주와 막걸리를 파는 사람도 있다

 

이곳을 지나 수락산 최고봉인 주봉(637m)에 도착했다. 주봉 바위 맨 위에 태극기가 휘날렸다.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등반객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주봉에서 아래를 보니 어디서 많이 본, 익숙한 풍경이 나왔다. 내가 살고 있는 남양주시 청학리 모습이었다. 몇 커트 사진을 찍었다. 주봉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사람들도 많았다. 그중 어린 아이와 함께 주봉에서 사진을 찍은 사람이 돋보였다. 그 아이와 아이 아빠가 다정하게 포즈를 취한 모습을 한 컷 촬영했다.

 

이곳 주봉에서는 맥주와 막걸리, 각종 음료수 등을 파는 사람도 있었다. 출발할 때 음료수를 가지고 오지 않아 그곳에서 2000원(일반 수퍼에서 500원 하는)을 주고 물 한 병을 샀다. 그리고 꿀꺽꿀꺽 마셨다. 등반을 하는 동안 1시간여 물을 마시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타는 목 깊숙이 들어간 물은 오아시스도 없는 사막에서 마시는 꿀맛이었다.

 

곧바로 하산 길로 접어들었다. 지난 2006년 8월 6일부터 시행된 산림 자원 및 조성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위반행위 금지 문구가 나왔다. 의정부시장의 경고문이었다. 서울시에서 출발해 남양주시로 또 의정부시로 넘어온 것이다. 수락산은 서울, 남양주, 의정부 등 3개 지역이 함께 어우러져 있음을 알게 됐다.

 

안내표지판 안내표지판에 걸려있는 한편의 시가 돋보였다.
안내표지판안내표지판에 걸려있는 한편의 시가 돋보였다. ⓒ 김철관

의정부 장암지역을 향해 내려갔다. 남양주시가 마련한 표지판이 나왔다. 정상 소요시간 20분, 기차바위(흠통방위) 2시간 20분 산지정화 감시초소 1시간이라고 써 있었다. 그곳에도 한편의 시를 걸어 놓았다. 정약용 선생의 '백운대에 올라'였다.

 

백운대에 올라

 

어느 누가 세모꼴로 교묘히 깎아

우뚝하게 이대를 세워 놓았나

흰 구름바다처럼 깔려 있는데

가을빛은 하늘에 충만하구나

천지사방은 둥글어 가을 아침 없건만

천년세월은 넓고 멀어 아니 돌아오네

바람을 쏘이면서 휘바람 불며

하을 땅을 둘러보니 유유하다오

 

약속을 한 친구하고 연락을 해야 할 후배의 휴대폰 배터리가 소진됐다. 내 휴대폰 배터리도 눈금이 하나밖에 없었다. 다행히 내 휴대폰으로 통화가 됐다. 하지만 친구 위치가 우리와 정반대편이었다. 후배는 장암 방향 길목에서 만나자고 약속하고 하산을 재촉했다. 기차바위(흠통방위)가 나왔다. 기차바위는 경사가 급하여 등반시 각종 안전사고 위험이 있으므로 가급적 우회로(신설로)를 이용하라는 안내문이 보였다. 경사진 바위에서 밧줄 하나에 의지해 내려가야 하는 기차바위. 기차바위에서 밑을 내려다보니 아찔했다. 그곳에서 본 먼 풍경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우회로인 신설로를 이용할 수 없었다.

 

기차바위 경사진 기차바위를 올라가고 있는 등산객.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어린 아이를 앞에 두고 따라간 아빠의 모습이 보인다.
기차바위경사진 기차바위를 올라가고 있는 등산객.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어린 아이를 앞에 두고 따라간 아빠의 모습이 보인다. ⓒ 김철관

언제 이곳에 또 와 체험할 수 있을 지는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결심을 했다. 후배가 먼저 밧줄을 탔다. 곧바로 나도 따라 출발했다. 밧줄을 가랑이에 끼고 내려오는 도중 다리가 떨렸다. 군인 시절 유격훈련이 생각났다. 하지만 아무 사고 없이 성공했다. 기차바위를 등지고 얼마 갔을까 무속인들이 제를 올리는 성황당 나무를 발견했다. 나무에는 오색 무늬가 펄럭였다. 그곳을 지나 얼마 동안 걸었을까 만나자고 했던 친구가 한 등반객과 기다리고 있었다.

 

등반객과 나란히 앉아 사과를 나눠 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산 속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친구라는 어느 책 구절이 생각났다. 4시간 동안 500ml 페트병에 들어 있는 물에 의지해 등반을 했던 후배와 함께 친구가 건넨 사과 한 조각이 구세주와 같았다. 사과를 먹은 후, 곧바로 걷자 의정부 장암 마을이 나타났다. 완전히 하산한 것이었다. 오른쪽 다리 관절 부위가 욱신거렸다.

 

시냇물 수락산 골짜기에서 고인 시냇물.
시냇물수락산 골짜기에서 고인 시냇물. ⓒ 김철관

그래도 배가 고픈 탓에 이곳 마을 한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백세주와 청하 그리고 엄나무 백숙을 시켰다. 근처 상계동에 있는 '원종환'이라는 후배도 불렀다. 함께 어울린 네 사람은 엄나무 백숙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면서 모처럼의 회포를 풀었다.

 

따스한 날씨에 식당 주변 탁자에 앉아 졸고 있는 등반객들, 모기장을 멍석 삼아 말리는 빨간 고추, 화분의 노란 국화꽃, 맑은 시냇물,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니는 강아지 등 모습은 어릴적 시골 모습을 연상하게 했다. 허기진 배를 백숙과 술로 채웠다. 식당을 운영하는 후배의 친구가 미리 음식 값을 계산했다. 너무 미안했다.

 

후배를 통해 평소 알고 지낸 그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사형수나 불쌍한 사람을 돕는 등 많은 선행을 하면서도 알리기를 꺼려 하는 그런 거룩한 사람이었다. 식당을 찾는 손님들에게도 남다르고 독특한 친절을 베푸는 등의 식당경영 방식은 현재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도 식당을 잘 버티게 하고 있었다.

 

가을고추  모기장에 가을 고추를 말리는 의정부 장암마을.
가을고추 모기장에 가을 고추를 말리는 의정부 장암마을. ⓒ 김철관

이 날은 아름다운 산과 함께 좋은 사람을 만나고 나누고 대화하는 정말 멋진 하루였다.


#수락산 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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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미디어에 관심이 많다. 현재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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