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자리에 앉으라. 지금 당신의 마음이 달려가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그대로 적어 내려가라. 제발 어떤 기준에 의해 글을 조절하지는 말라. 무엇이 다가오더라도 지금 이 순간의 것을 잡아라. 손을 멈추지 말고 계속 쓰기만 하라.”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권진욱 옮김/한문화)는 몇 년 전에 도서관에서 대여해 읽었는데 항상 가까이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던 책이다.
이 책은 내게 신선한 자극이 되었고 글쓰기에 대한 책으로는 아주 친근하고 감동적으로 와 닿았었다. 글쓰기 방법과 그 기술에 대해 딱딱하고 교과서적으로 펴낸 책이 아니라 가슴을 파고들어 마음까지 책 속에 담그게 하는 책이었다.
글이 잘 안 써질 때, 안개 속처럼 희미하고 생생한 글쓰기가 되지 않거나 혹은 글쓰기 자체에 대해 가끔 회의가 물밀 듯 밀려오고 넌더리가 날 때, 편안하게 읽히면서도 가슴에 파고드는, 그런 위로와 힘이 되는 책이 아쉬웠다. 며칠 전, 부산에 나갔다가 서점에서 우연히 나탈리 골드버그의 책과 눈이 마주쳤다.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사실, 읽은 책을 다시 사서 읽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글쓰기의 게으름, 낯이 뜨겁다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새 책들이 있는데다가 그 많고 많은 신간 중에서 좋은 책을 골라 사는 것만 해도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망설임 없이 이 책을 샀다. 읽고 또 잊은 듯이 책꽂이에 꽂아 두었다가도 언제든지 다시 꺼내서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몇 년 만에 다시 읽는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깊이 내려가서 써라>,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동안 글쓰기에 얼마나 게으르고 나태했는가를 깨달았다.
막연하게 써야한다고, 쓰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쓰는 내용의 질이나 분량은 얼마나 형편없고 미적지근한지, 글쓰기에 대한 나의 나태함과 게으름을 발견하고 참으로 난감한 기분이었다. 내 책꽂이에는 여러 개의 노트가 꽂혀 있다. 그 노트마다 이름이 있는데, 독서일기, 갈멜 산행기(1.2권), 순례자의 일기, 만남일기, 기도일기, 들은말씀 등 내 나름대로 이름 붙여놓은 노트들이다. 그 중에서 나는 얼른 습작노트를 꺼내보았다.
세상에! 2008년도에 들어서 다시 산 노트인데 아직도 한권을 채우지 못하고 있었다. 난 도대체 뭘 썼을까. 얼굴이 화끈거렸다. 생각의 게으름, 책읽기의 게으름, 듣기의 게으름...이런 것이 결국은 글쓰기의 게으름이며 삶에 대한 게으름이 된 것이리. 이 책에서 나탈리 골드버그는 한 달에 한권의 노트를 의무적으로 채운다고 말한다. 물론 그녀가 글을 쓸 때, 글을 쓰는 행위, 노트 한권을 채우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집중해서 자신의 열정과 목숨을 투입하고 있는 시간일 것은 틀림없다.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글 쓰는 행위가 세상과의 단절이나 불통이 아니라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해 마음을 지속적으로 열어나가게 하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와 스스로에 대해 믿음을 키워 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글쓰기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글쓰기는 오직 글쓰기만을 통해서 배울 수 있으며, 글쓰기에 재능이나 잠재력을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운동이 그러하듯 글쓰기 역시 훈련을 통해서 실력을 쌓을 수 있다고 말한다.
‘육상선수들이 달리기가 힘들고 지겨워져도 달리는 행위를 멈추지 않듯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연습을 쉬지 않듯이, 가만히 앉아서 계속 달리고 싶게 만드는 뜨거운 열망이 찾아올 때를 기다리지 않고 연습하듯이‘ 글쓰기도 훈련을 통해 실력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깊은 자아를 믿게 되면 이제 그곳에는 글쓰기를 두려워하라는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설 자리가 없어진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자리에 앉아서 쓰라고 강력히 말한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훈련이다. 저자의 말대로 훈련은 언제나 잔인한 단어다. 우리는 자신 속에 있는 폭군과 저항군은 늘 싸운다.
“난 글 쓰고 싶지 않아.”
“너는 글을 써야 해.”
“나중에 쓰겠어. 지금은 피곤해.”
“지금 당장 써야 해.”
이 싸움은 글을 쓰는 행위가 있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은 비단 글쓰기 뿐 아니라 인생의 모든 모험과 어떤 훈련이든 마찬가지다. 하얀 종이 앞에, 혹은 워드 앞에 앉았을 때 언제나 똑같은 싸움은 반복된다. 글을 써야 하는데, 막상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려 하면 가끔 내 마음이 저항하며 튕겨나가는 것을 경험할 때가 있다. 글쓰기의 중압감 앞에서 곧바로 글쓰기에 진입하지 못하고 엉뚱한 일로 시간을 보내거나 한다.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졸작을 쓸 권리가 있다
괜히 주방에 가서 커피를 타서 마시거나 냉장고 문을 열거나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빈둥거리거나 하며 자꾸만 글쓰기의 본질에 다가서지 못하고 그 주변에서 빙빙 돈다. 그 팽팽한 긴장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글쓰기에서 멀리 벗어나지도 못한다. 글쓰기는 숨쉬기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글로 풀어내지 않고는 계속 가슴이 답답하거나 마치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처럼 마음도 머리 속도 무겁기 때문에 완전히 벗어나지도 못하고 주변을 맴돈다.
저자 역시 그런 경험에서 예외는 아닌 것을 볼 수 있다. “마음은 항상 일과 집중력에 대해 저항하려 든다. 한동안 나는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마음이 글쓰기 대신 내내 이런 상태로 멍하니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 나의 의식이 점점 개화되고 있는 거야! 이것이 글쓰기보다 훨씬 중요하며, 또 글쓰기의 목적이 바로 이거 아니겠어?!’ 그런데 저자는 카타기리 선생에게 말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 그건 그냥 게으름일 뿐입니다. 어서 가서 일하세요.” 한방 먹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막상 글을 쓰려고 할 때 나타나는 문제들을 저자는 또 열거하고 있다.
“아이들이 빈 시리얼 상자를 흔들어댄다. 당신 지갑 속에는 1달러 25센트만 남아 있다. (...)개는 바깥으로 나가자고 성화이고, 냉동실에 들어 있는 닭을 꺼내 해동시켜야 하고, 보스톤에 있는 사촌에게 전화도 걸어야 하고, 백내장 수술을 받을 어머니도 걱정스럽고, 수퍼마켓에서는 참치 통조림을 세일하고 있고, 당신은 일감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고, 방금 구입한 컴퓨터를 풀고 설치도 해야 한다. 또, 제일 아끼던 만년필은 온데간데없이 보이지 않고, 고양이 새끼는 최근에 쓴 습작노트를 발기발기 찢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저자는 ‘그래도 또 다른 노트를 꺼내, 다른 만년필을 잡고, 쓰라. 그냥 쓰고, 또 쓰라. 세상의 한복판으로 긍정의 발걸음을 다시 한 번 떼어 놓아라. 혼돈에 빠진 인생의 한복판에 분명한 행동 하나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 그냥 쓰라. ’그래 좋아!‘라고 외치고, 정신을 흔들어 깨우라. 살아 있으라. 쓰라. 그냥 쓰라. 그냥 쓰기만 하라’고 강조한다. 앞으로 5년 동안 쓰레기 같은 글만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자신 안에서 울려나오는 자신의 글을 쓰라고 종용한다.
그 모든 것이 좋은 글쓰기의 퇴비가 될 것을 믿으면서 말이다.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졸작을 쓸 권리가 있다는 것을 믿고 나아가라고 말한다. 저자는 또, ‘종이 위에 안개를 옮겨놓지 마라’고 충고한다. 세부묘사의 중요성에 대한 말이다. 글쓰기에 관련된 오래된 속담이 있는데 그것은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는 것이다. 저자는 또 ‘사물의 이름을 붙여주라’고 말한다. 사물의 고유성, 그 이름을 불러줄 때 더 구체적이고 선명해진다는 것이다.
종이 위에 안개를 옮겨놓지 마라
윌리엄 블레이크는 ‘순수의 전조’에서 ‘한 알의 모래에서 세상을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고 했다. 사물들을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세상에 대해, 사람에 대해, 자연과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조금 더 따뜻하고 섬세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또 작가가 글을 쓰거나 사물을 바라볼 때, ‘먹잇감을 응시하는 고양이'처럼 되라고 말한다.
“방안에 있는 고양이가 움직이는 물건을 응시하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는가. 고양이는 아무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보고, 듣고, 냄새를 맡는다. 당신이 거리에 나가 배워야 할 것이 바로 그런 고양이의 태도다...고양이는 언제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튀어 오르게 할 준비를 하고 있다.”
“글쓰기는 안개에 싸여 있는 마음에 불을 지피는 행위다. 종이 위에 안개를 옮겨놓지 말라. 설사 확실하지 않을 때라도 자신이 그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표현하라. 이런 훈련은 문장을 훨씬 힘차고 생동감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실천적으로 글을 쓴다는 의미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 전체를 충실하게 살겠다는 뜻이라 하지 않았던가.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지금 당장 쓰는 것이다. 그냥 글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뼛속까지 내려가서’ 자기 마음의 본질의 외침을 듣고 적는 것이다. 어차피 글쓰기는 ‘매번 지도 없이 떠나는 새로운 여행’, 낯선 여행인 것이다.
"살아 있으라. 쓰라. 그냥 쓰라. 그냥 쓰기만 하라!"
작가이자 글쓰기 강사인 나탈리 골드버그는 미국인들의 글쓰기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켰다고 할 만큼 자신만의 독특한 글쓰기 철학을 담은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를 출간하면서 뜨거운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이 책은 백만 부가 넘는 판매를 기록하며 세계 각국으로 번역되었음은 물론, 글쓰기에 도전하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꼭 읽어보아야 할 새로운 바이블로 자리매김했다.
나탈리 골드버그는 이 책에서 그녀 자신이 25년 간 이어온 체험과 글쓰기를 접목시켜 개성 있는 글쓰기 노하우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출간된 지가 20년이 되었음에도 현재까지도 계속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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