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로 이성 혁명을 몰고 왔던 철학에 데카르트가 있다면 무용에는 “나는 춤춘다, 고로 존재한다”는 춤꾼 ‘피나 바우쉬’가 있다. 그는 독일 출신 여성 안무가로 춤, 연극, 노래, 미술의 경계를 허문 탈 장르 양식 ‘탄츠테이터’(tanztheater)로 20세기 현대무용의 흐름을 바꿨다.
2003년 아카데미 각본상과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 <그녀에게(Talk to her :2002)>는 피나 바우쉬의 작품 <카페 뮐러>가 열고, <마주르카 포고>가 닫는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그녀에게> 삽입된 피나 바우쉬의 <마주르카 포고>는 목가적 분위기와 고통에 찬 아름다움으로 나를 울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카페 뮐러>는 소통의 단절과 고통, 슬픔을 표현하였고, <마주르카 포고>는 강한 생명력, 기쁨과 희망을 전해주었다. 사람들은 그를 ‘현대 무용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라 부르는 데 <을유문화사>가 '현대예술의 거장 시리즈' 5번째로 <피나 바우쉬>-'두려움에 맞선 춤사위'으로 평전을 냈다.
현대 무용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우지만 그는 낯가림과 수줍움이 심한 내성적인 성격 소유자이다. <피나 바우쉬>는 낯가림과 수줍움을 가졌던 그가 어떻게 탄츠테아터라는 새로운 무용 세계를 어떻게 창조해갔는지 보여준다.
16장으로 구성된 <피나 바우쉬>를 한 장씩 읽어가면 "무대 위에서 예술적 목표를 관철시킬 때는 대단한 용기와 추진력을 드러내는 그가 실은 자신을 내보이는 것을 꺼리고 검은 복장을 즐겨 입으며 인도를 좋아하는 것, 겸손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평범한 거리의 사람들에게는 친절한 그가 이름난 비평가나 언론인 혹은 저명 인사들에게는 매우 유보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어떻게 인간이 움직이는가보다는 무엇이 인간을 움직이는가에 더 흥미를 느낀다." 이를 두고 <피나 바우쉬>를 지은 요헨 슈미트는 관객들이 피나 바우쉬 작품을 보고 당혹감을 가진다고 평했다.
"모든 사람이 적어도 가끔씩은 스스로에게 제기할 수밖에 없는 인간 실존의 핵심적인 질문들을 다룬다. 그것들은 사랑과 두려움, 그리움과 외로움, 좌절과 공포,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 어린시절과 죽음, 기억과 망각 등이다."(22쪽)
이렇게 그는 '인간'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졌다. 사람들은 자신 내면 속에 자리잡고 있는 사랑과 두려움, 그리움과 외로움을 드러내는 그를 통하여 당혹감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
사랑과 두려움, 그리움과 외로움, 좌절과 공포는 한 개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가 함께 가졌다. 두려움은 우리 시대 주요한 문제 중 하나이며, 좌절과 공포는 현재 온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금융위기, 테러와 전쟁 따위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신뢰가 붕괴된 사회, 믿음이 없는 사회가 던진 두려움을 그는 작품으로 표현했다.
"두려움은 이 시대의 주요문제 중의 하나로, 피나 바우쉬의 창작 작업에서도 역시 가장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그녀 자신의 두려움이며 그녀의 등장인물들 두려움이다. 그것은 사람을 마비시키고 공격적으로 만드는 두려움이며, 자신을 드러내고 그래서 상대편에게, 파트너에게 무방비 상태로 내맡겨지는 데 대한 두려움이다. 상대방의 반응들이란 신뢰할 수가 없다."(23쪽)
하지만 이 두려움은 사랑을 받고 싶은 강렬한 소망이다. 피나 바우쉬는 두려움과 사랑받고 싶은 강렬한 소망을 표현했다. 사랑받고 싶다는 것은 혼자가 아니라 다른 이가 존재함을 말한다. 두려움에 휩싸인 인간이 사랑받고 싶은 열망을 자신의 창작활동을 통하여 보여주었다. 일종의 보호자 역할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두려움에 맞선 춤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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