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환하게 웃고있는 사진작가 김지연씨 뒤로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의 모습이 보인다. 김지연씨에게 정미소란 물질적 풍요와 감정적 풍요의 행복한 느낌으로 간직된 소중한 추억의 공간이다.
 환하게 웃고있는 사진작가 김지연씨 뒤로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의 모습이 보인다. 김지연씨에게 정미소란 물질적 풍요와 감정적 풍요의 행복한 느낌으로 간직된 소중한 추억의 공간이다.
ⓒ 문지민

관련사진보기


정미소라. 정미소, 정미소. 이게 과연 무엇일까. 어렴풋이 감은 오는데 명확한 그림이 그려지질 않는다. 단어의 맛이 그다지 친근하지도 않다. 오히려 계속 생각나는 건 <오마이뉴스>에서 활발히 활동중인 인턴기자 정미소씨! 내가 이상한 걸까. 어쩔 수 없나보다. 태어나 도시에서만 자라온 청년뻘 나이의 내게 정미소를 머릿속에 그려내기란 쉽지 않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솔직히 말하면, "정미소=방앗간이래!"라는 말에 '바보냐? 뭐 그런 당연한 말을 해'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실은 마음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정미소가 방앗간이구나! 방앗간이라 하면 왠지 더 친근하다. '참새가 방앗간을…'을 통해 수도 없이 들었던 그 방앗간. 아니, 그런데 이를 어떡하나. 방앗간이 뭐하는 곳인지만 알았지 어떻게 생긴 곳인지 전혀 그림을 그려낼 수 없는 건 정미소와 마찬가지였다.

이런 나의 얕은 지식과 답답한 마음을 앞서서 헤아려주신 걸까? "어릴 적 할머니 손을 잡고 따라갔던 정미소는 참 풍족하고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있어요"라고 말하는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의 사진작가 김지연 대표는 우리 일행의 도착시간에 맞추어 너무도 달콤한 군고구마를 내어주었다. 과장이 아니고, 그렇게 아리따운 진노란색에 부드러운 감촉과 달콤함이 조화를 이룬 군고구마는 내생애 최고의 맛이라고 해도 될 듯하다. 마치 군고구마가 뱃속이 아닌 마음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듯한 느낌이랄까.

김지연 작가의 배려, 군고구마 덕에 정미소가 뭔지도 모르던 내가 감히 김 작가의 정미소 추억에 오롯이 공감하고야 말 것만 같았다. 지난 2일, 전남 진안군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를 방문하였다. 

'정미소'가 뭔지 모르는 청년, 계남 정미소에 가다

전북 진안군 마령면 계남마을. 마이산 남쪽자락에 자리 잡은 이 산간마을에 지난 2006년 5월 '공동체 박물관 계남정미소'가 문을 열었다. 이 박물관은 실제 정미소로 쓰였던 곳. 그런데 왜 하필 정미소일까? 앞서도 언급했듯 사진작가 김지연씨에게 정미소는 물질적 풍요와 감정적 풍요의 행복한 느낌으로 소중하게 간직된 추억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정미소는 흉물이 된 채 급속히 사라져가고 있다.

그녀는 따뜻한 추억이자 마을 공동체의 구심점이었던 정미소가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리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그래서 그 안타까움 속에서 실타래를 하나 잡는 심정으로 사라져 가는 정미소를 하나둘 사진으로 남기기 시작했고 그러던 중 한 곳이라도 내가 보존하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전국을 돌며 500여 곳의 정미소를 촬영하던 중 갓 폐업한 계남의 정미소와 인연이 닿아 기분 좋게 구입을 하고 박물관으로 꾸미게 되었다. 기능은 살리지 못할지라도 의미는 살리고 싶었다고 한다. 

"아, 그래서 이렇게 정미소에 박물관이 생기 게 되었군요. 그런데 선생님, 왜 굳이 계남정미소였나요? 이 곳에 연고가 있으셨나요?"
"아니오. 계남에 연고 같은 건 전혀 없었어요. 정미소를 사서 박물관을 꾸려야겠다고 한 3년을 생각하며 여기저기 여러 곳을 찾아봤는데요, 구입을 문의하러 가면 '저 사람이 무슨 사업적 가치가 있어서 사려나보다'하고 값을 비싸게 받으려고들 하더라고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요. 결국에는 어떤 힘이 작용했는지 이곳 계남정미소와 인연을 맺게 되었네요."

'정미소'에 '공동체박물관'이란 이름 붙인 이유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의 갤러리에서 찍은 박물관 내부 사진. 좌측 문 너머로 기계실이 보이고 그곳에 정미 기기가 자리를 잡고 있다.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의 갤러리에서 찍은 박물관 내부 사진. 좌측 문 너머로 기계실이 보이고 그곳에 정미 기기가 자리를 잡고 있다.
ⓒ 김지연

관련사진보기


그녀는 구입한 정미소의 건물 골격은 그대로 둔 채 양철 지붕에 칠을 하고, 내부를 개조해 전시공간으로 꾸며냈다. 건물은 크게 사진이 전시된 갤러리와 기계실, 두 공간으로 나뉘어있는데, 박물관의 한 쪽을 차지한 채 지금도 작동하고 있는 정미 기기가 있는 기계실 또한 그 자체로 하나의 가치있는 갤러리가 되었다.

"농촌의 현실 앞에서 오로지 추억 운운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정미소는 좀 나이 먹은 사람들에게는 쉽게 지나쳐가는 단어는 아닙니다. 바로 쌀이라는 매체가 개입돼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정미소는 나름대로 아픈 역사의 실타래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그냥 보내 버리기에는 아쉬운, 보상받고 싶은 시간의 상처이기도 합니다. 정미소는 마을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하던 곳이기도 했으니 마을 공동의 경험과 기억을 나누는 곳, 생활 속 문화를 담아내는 곳으로 지켜가고 싶습니다."

김지연 작가가 말하는, 정미소에 '공동체박물관'이란 이름을 붙인 이유이다. 옛 정미소처럼 누구든 쉬어가고 놀다가라고 정미소 안에는 널찍한 평상도 마련해 두었다. 그렇다면 그녀의 바람처럼 이곳은 과연 마을 주민들의 삶과 함께 하고 있을까. 마을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이 되어가고 있을까.

"박물관으로 가다듬을 때에는 새로 물도 끌어와야 했고 전기도 들여놓아야했어요. 그 과정에서 반대하는 주민들도 있고해서 다툼도 있었지요. 지금은 많이 이해해주고 도와주시지만 그때만 해도 그분들이 이해를 못했거든요. '웬 낯선 사람이 와서 정미소를 뜯어고친다고 난리일까, 이 시골 마을에서 우리들 사진을 걸어서 뭘 어쩌겠다는 걸까'란 의혹의 시선이 많았어요. 아마도 마을분들을 이해시키고 동조를 얻는 과정이 가장 힘들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도 지금은 마을의 역사와 삶을 찾겠다는 저의 노력을 인정해 주시는 것 같아요."

초창기 소통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결국 그녀의 진심이 마을사람들에게 전해진 것일까. 이제 누군가는 탈곡기를, 어떤 이는 써레나 홀태 같은 옛 농기구를 기증하고 말 없이 나무를 심어놓고 가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물론 정미소 평상에 편안히 앉아 수다를 늘어놓다 가시는 할머님들도 빼놓을 수 없다고 한다.

자신이 가진 것 기꺼이 나눌 줄 아는 김지연 작가

그녀는 지금까지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에서 '정미소 개관전', '마이산으로 가다', '작촌 조병희 선생을 기리며', '마령초등학교 학생들이 촬영한 사진', '나는 이발소에 간다' 등의 전시를 통해 마을사람들의 기억과 경험을 함께 나누어 왔다.

사진작가 김지연씨의 <나는 이발소에 간다>중 한 작품. 그녀의 사진은 사람들을 아련한 추억에 잠기게 할 힘을 지니고 있다.
 사진작가 김지연씨의 <나는 이발소에 간다>중 한 작품. 그녀의 사진은 사람들을 아련한 추억에 잠기게 할 힘을 지니고 있다.
ⓒ 김지연

관련사진보기

그리고 "여기 걸린 사진은 지나간 '남의 이야기' 혹은 '타인의 추억'에 불과할 테지요.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타인의 추억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기억'을 읽어요. 그걸로 족하지 않을까요?"라는 그녀의 말처럼 사라져가는 옛것들을 담아낸 그녀의 사진은 사람들을 아련한 추억에 잠기게 할 힘을 지니고 있다.
또 그녀는 지역 노인 100여명의 영정사진을 찍어드리고 지역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사진 강연을 여는 등 마을 주민들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것들을 기꺼이 주고자 노력해 왔다.

그렇게 사라져 가는 소중한 것들을 함께 떠올리며 마을 주민들과 소통하는 마음. 그렇게 마을 주민들의 삶과 어우러지며 소통의 구심점이 되어가는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
이야기를 찬찬히 들으며, 그녀의 바람이 비록 100% 충족은 아닐지라도 충분히 기쁜 미소를 지을 수 있을 만큼 이루어져가고 있음을 느꼈다.  

"운영은 혼자하고 있고요, 좀 어렵죠. 수익은 없습니다. 정미소를 통해 고구마, 감자, 쌀 등 지역주민들의 물품 팔아드리고 있지만 제가 받는 건 단 100원도 없습니다. 제 노후자금을 써가며 홀로 동분서주 운영하고 있는 비영리 공간이죠."

전주에 거주하는 그녀에게 계남정미소는 차로 한 시간 여를 달려야 닿는 거리. 주말에도 정미소에 나와있다보니 가족에게 쌓이는 미안함. 남편으로부턴 '왜 사서 고생을 하냐'란 말을 듣기도 한단다. 운영의 어려움과 가족에 대한 걱정 등으로 충분히 지칠 법도 하다.
그럼에도 "안 하는 것보다 나으면 하는 거다. 그래도 처음 생각보다 앞으로 많이 와 있는 것 같다"고 당차게 선언하며 편안한 미소를 짓는 김지연 작가.

그녀는 주부로 살며 3남매를 다 키워놓은 50세 즈음에야 비로소 카메라를 손에 잡았다고 한다. 사진은 그 때부터 처음 배우기 시작했다고. 늦은 꿈, 늦은 도전. 치기인지 열망인지 고민했으나 '나를 찾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를 믿었고 마지막 도전이라 생각하며 카메라 셔터에 열정을 담아온 그녀.

난 너무 늦었다는 생각을 이겨내고 내면의 소리를 용기있게 진솔히 따라, 물질적 이득보다는 정신적 풍요를 찾아, 나만의 기쁨보다는 우리의 기쁨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그녀. 그녀가 손수 쪄준 달디단 고구마를 먹으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난 어느덧 정미소란 곳이 참 푸근하게 느껴졌다. 내 마음에도 그녀처럼, 정미소란 공간이 따뜻한 추억으로 새겨질 것만 같다.

덧붙이는 글 |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 누리집: www.jungmiso.net
관람시간: 화~일요일, 오전11시~오후5시.

11월19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룩스에서 <우리동네 이장님은 출근중>이란 테마로 김지연씨의 사진전이 열린다.



태그:#계남정미소, #김지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