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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에서 학생들이 신나게 공을 찬다. 체육시간, 아침엔 잔뜩 몸을 웅크리고 등교를 하더니만 날이 좀 풀리자 축구시합을 하는 모양이다. 남자중학교에서 축구는 최고 인기종목이다.

 

"그래, 너희들 참 대단하구나!"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젊음의 숨소리를 듣고 있는데, "똑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전국장애학생음악콩쿠르 사물놀이부문에서 입상한 반가운 얼굴들이 교장실을 찾아왔다.

 

"교장선생님, 저희 잘 다녀왔어요. 아이들이랑 함께 인사드리러 왔어요. 우리 친구들 칭찬 좀 해주세요."

 

특수학급 이지은 담임선생님과 '도움실' 학생 4명이 들어왔다. 특수학급 보조 선생님과 풍물을 지도하신 강사님도 함께 자리를 했다. '도움실' 식구 모두가 교장실에 모인 셈이다.

 

늠름한 표정이다. 씩씩한 홍석이가 한 줄로 늘어선 친구들에게 "교장선생님께 경례!"를 외친다. 나는 한 사람 한 사람 손을 잡아주며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정말 자랑스럽다.

 

"야! 너희들 대단해! 내 상 받고 올 줄 알았어!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데 우리 실력을 몰라주면 이상하지! 안 그래? 자신감 있게 했지? 물론 장단을 잘 맞췄으니까 좋은 성적을 거두었을 테지만. 전국에서 2등이 어디야! 사설을 할 때 크게 소리 지르라고 했는데, 목청껏 했지?"

 

모두 "크게 했어요!"라고 입을 모은다. 녀석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뭔가 열심히 하고난 뒤, 뿌듯한 기쁨을 맛보는 것 같다. 의젓해 보이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홍석이가 말문을 열자 저마다 한마디씩 한다.

 

"선생님, 저는요. 얼마나 떨었는지 몰라요. 글쎄 처음엔 앞이 캄캄하더라고요. 그런데 얼마 지나니까 마음이 차분해졌어요. 그래서 힘껏 북을 쳤어요."

"꽹과리를 치는 태진이가 잘 이끌어주었어요. 늘 하던 대로 하니까 크게 떨리지 않던데요."

 

"민준이 있죠? 징을 칠 때 채를 돌리며 신이 났었어요. 연습할 때보다 목소리도 크게 지르고요."

"전 장구를 어떻게 세게 두들겼는지 끝나니까 몸에 땀이 범벅이더라고요. 정말 재미있었어요."

 

꽹과리로 장단을 이끄는 키가 큰 태진, 리듬을 타며 장구채를 잡는 남규, 팔에 힘을 주어 북을 치는 홍석이, 그리고 장단 강약을 조절하며 징을 치는 민준이가 오늘의 주인공들이다.

 

천사 같은 선생님의 지도로 결실을 보다

 

내가 근무하는 검암중학교에는 특수학급 사물놀이패 '검바위'가 있는데, 정말 큰 일을 해냈다. 지난 11월 3일부터 4일 양일간 대전광역시 평송청소년수련원에서 실시된 제1회 전국장애학생음악콩쿠르(대전방송 주관, 교과부 등이 후원)에서 전국의 내로라하는 팀들과 당당히 겨뤄 은상(2위)을 차지한 것이다.

 

우리 특수학급에는 4명의 학생들이 있다. 4명 모두 2학년으로 동급생이다. 늘 밝은 표정으로 옷차림이 항상 단정하다. 일반학생과도 잘 어울리고, 학교생활에서도 모범적이다.

 

특수학급을 지도하는 정말 '천사' 같은 이지은 담임선생님이 있다. 선생님은 궂은 일, 힘든 일 마다하지 않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에게 삶의 꽃을 피워주기 위한 조력자의 역할을 다한다. 따뜻한 마음으로 학생들을 대하고, 열과 성을 다해 지도를 한다. 그래서일까? 우리 특수학급 학생들은 담임을 닮아 얼굴 표정이 항상 밝다.

 

이 선생님은 생각이 깊다. 언제 특수학급 학생을 지도하는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 적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아야 할 인권이 있지요. 장애인에게도 일반인들과 똑 같은 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이를 위해서는 장애인이 편히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사람마다 개성이 있잖아요. 장애도 본인들이 가진 하나의 개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특수교사로서 우리 '도움실' 학생들이 일반학생과 똑같이 생활하고, 학습할 수 있도록 충실한 조력자가 되고 싶어요."

 

이 선생님은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곰곰이 생각을 하였단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온몸을 움직이며 가슴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음악치료의 한 방법으로 학생들에게 사물놀이를 가르치기로 했던 것이다.

 

사물을 처음 대할 때, 학생들은 '제대로 장단을 맞출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을 가졌다. 4명 중 장애등급 1급이 1명이고, 3급이 1명으로 장단 익히기를 무척 어려워했다. 처음에는 싫증을 내고, 게으름을 피우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 장단을 익히고 나서부터는 스스로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영광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 법. 실습할 수 있는 마땅한 장소가 없어 컨테이너교실에서 비지땀을 쏟아가며 연습에 연습을 하였다. 담임선생님은 '우리도 노력하면 뭔가 할 수 있다'는 독려를 아끼지 않았다.

 

기능적인 면은 외부강사의 힘을 빌렸다. 조수민 강사님은 하루하루 달라져 가는 아이들의 눈빛을 보며 한 단계 한 단계 수준을 높여나갔다. 학교축제 때는 시범연주를 선보여 공연에 따른 두려움을 없애기도 하였다.

 

그리고 인천시 학생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중학생 특수학급작품발표회에 멋진 모습으로 공연을 하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수많은 청중 앞에서 자기들이 갈고 닦은 기량을 실수 없이 맘껏 발휘하였던 것이다. 다만 사설을 외울 때 목소리가 작아 부족한 점이 있었지만, 나는 학생들의 열정에 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열심히 하면 우리도 할 수 있다

 

한 달 전쯤이다. 이지은 선생님이 결재를 받으러 나를 찾았다.

 

"교장선생님, 전국장애학생음악콩쿠르가 있어요. 우리 애들을 출전시키려고 하는데 괜찮죠? 좀더 큰 경험을 심어주고 싶어서요."

 

나는 경험도 경험이지만, 우리 풍물패 '검바위' 실력이면 충분히 입상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흔쾌히 찬성하였다.

 

우리 학생들은 큰 무대에서 공연을 한다고 하니 더욱 신명나게 연습을 하였다. 사물을 다루는 데 힘이 들어갔다. 어깨를 들썩이는 폼도 붙고, 몸짓에도 흥이 묻어났다. 사설을 외치는 목소리도 커져 갔다.

 

결국, 학생들은 전국대회에서 자신들의 기량을 맘껏 뽐내었다. 아깝게 금상은 놓쳤지만 자랑스러운 은상을 차지한 것이다. 학교가 모두 기쁨으로 넘쳤다. 교문에 축하 현수막이라도 내다 걸어야겠다.

 

대회가 끝난 뒤, 상장을 받아들고 우리 학생들은 담임선생님을 얼싸안으며 말했다고 한다.

 

"선생님, 저희 1등이나 별 차이 없었죠?"

"내년에는 꼭 1등을 차지할 거예요."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죠?"

"교장선생님도 기뻐하실까요?"

덧붙이는 글 | 검암중학교는 인천광역시 서구에 있는 학교입니다. 글쓴이는 검암중학교 교장입니다.


태그:#검암중학교, #전국장애학생음악콩쿠르, #사물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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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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