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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자의 삶과 색'전이 열리는 고양아람미술관 입구 설치홍보물
 '이숙자의 삶과 색'전이 열리는 고양아람미술관 입구 설치홍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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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자의 삶과 색: 한국채색의 재발견'전이 12월 14일까지 고양시에 있는 아람누리아람미술관에서 열린다. 보기 드문 초기작부터 근작까지 100여점을 감상할 수 있는 회고전 성격의 전시회다.

작가 이숙자는 일본이 진주만공격을 한 1941년 그 다음 해 서울에서 태어났다. 참으로 암담한 시대였으리라. 직접 뵈니 그런 모습은 안 보이고 소녀처럼 맑기만 하다. 삶의 우여곡절이 많았겠지만 이를 그림으로 승화시킨 것 같다. 그를 잘 이해해주는 남편임에도 작업실에서 새벽 2~3시까지 귀가가 늦어지면 시부모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가부장제가 유별난 한국사회에서 11남매가 있는 장남의 며느리 자리가 가볍지 않음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꿈을 놓지 않고 전업 작가로 자신의 세계를 이루었다는 점에 존경심이 간다.

작가의 작업과정을 볼 수 있는 '작가의 방'

'작가의 방'과 그 주변 모습. 아래는 작가가 쓰는 붓과 물감
 '작가의 방'과 그 주변 모습. 아래는 작가가 쓰는 붓과 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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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방'이 전시팀에 의해서 기획되었다. 작품 뿐만 아니라 작가의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보여준다. 방 한가운데 캔버스가 있어 작가의 작업하는 모습도 엿볼 수 있고 그림을 그려볼 수도 있다. 채색작가답게 여러 색도의 안료도 벽에 걸려있다.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관객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배려하였다.

또 한쪽에는 작업하는 작가의 대형사진과 함께 그림에 쓰이는 붓과 물감도 한 눈에 볼 수 있어 작품 감상에 있어 생생함을 더해준다. 또한 그림에 나오는 가구와 그의 작품을 소개한 국내외 잡지, 사진 등 여러 자료들도 같이 전시하고 있다.   

어떤 때는 28시간을 쉬지 않고 그리기도

'작가의 방'에 한쪽 벽에 붙어놓은 작가의 20대부터 60대까지의 사진
 '작가의 방'에 한쪽 벽에 붙어놓은 작가의 20대부터 60대까지의 사진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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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 기획자 중 한 사람인 이지윤씨는 작가가 어떤 때는 28시간을 쉬지 않고 그린 적이 있다고 전한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사람이 행복하다면 그런 면에서 이 작가는 지극히 행복한 사람이다.

그는 2000년에는 남자들도 하기 힘든 무려 높이가 2.27m나 되는 150호짜리 8개로 연결된 초대형 백두산을 완성하기도 했다. 받은 감동이 컸기 때문이리라. 하여간 그는 투철한 장인정신을 가진 사람처럼 어깨와 손이 아프도록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데 그림에 몰두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피곤감이 쾌감으로 바뀌며 심신이 풀어진단다.

작가는 초기에 한국적 이미지가 담긴 탈, 도자기, 고가구 등을 전통채색화로 그렸다. 당시 화단은 채색화는 왜색이라는 분위기로 수묵화가 주류였으나 이숙자씨는 오히려 채색화가 한국화의 원류임을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평양에 본 전통채색화의 원형이라 할 고구려의 '강서고분 청룡도'를 직접 재현해 보기도 한다.

보리밭, 우리정서의 핵심

'바람결 이는 푸른 보리밭' I 순지 5배접 암채 333×248cm 1994. 70년대부터 수많은 보리밭연작이 있지만 이것은 90년대 작품이다.
 '바람결 이는 푸른 보리밭' I 순지 5배접 암채 333×248cm 1994. 70년대부터 수많은 보리밭연작이 있지만 이것은 90년대 작품이다.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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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전통채색화에 관심을 두던 그가 1977년 어느 날 포천근처에 스케치여행을 갔다가 보리밭을 보고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온 몸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엄청난 감동을 받고 전율을 느꼈단다. 그 이후로 보리밭과 열애에 빠진 사람처럼 그것을 그린다. 작가가 고향이 서울이라 자연에 대한 갈망이 더 컸는지 모른다.

작가는 보릿고개라는 말도 있지만 보리는 민초들의 한과 애환이 거기에 서려있고 한국적 정서를 대변할 수 있기에 더 좋았나 보다. 이보다 더 원초적 생명력을 강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의 작품을 보면 극사실(세밀)주의 풍으로 붓질의 정교함과 섬세함이 처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만큼 작업시간도 많이 걸릴 것이다. 일 년에 두 작품밖에 못할 때도 있었단다. 극사실주의는 차갑게 느껴지기 쉬운데 그의 그림은 오히려 포근하다. 바느질하고 뜨개질하는 그런 모성의 힘을 여기서도 느낄 수 있다.

작가의 기질은 보리의 끈기 있고 질긴 생명력과 많이 닮았다. 그는 한눈팔지 않고 줄기차게 40년간 보리밭을 그려오지 않았던가. 보리밭작가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 쉬워보여도 사실은 얻기 힘든 명성이다.

싱그러운 초록빛, 눈부신 황금빛, 원숙한 은빛

'맥추' I 순지 5배접 암채 145×112cm 1978
 '맥추' I 순지 5배접 암채 145×112cm 1978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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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추'에서 보는 것 같은 보리밭의 황금빛 물결과 바다의 일렁이는 파도 같은, 하늘을 흘러가는 구름 같은, 짜릿한 연인의 터치 같은 보리밭바람이 작가의 몸에 마음에 스치면 자신도 모르게 황홀경에 빠져 환희와 희열을 맛보게 되는 모양이다.

보리는 계절마다 색깔을 달리하는 색채의 마술사다. 봄과 여름의 싱그러운 초록빛, 가을의 눈부신 황금빛, 겨울의 원숙한 은빛 그리고 보리수염의 연둣빛이나 보랏빛까지 '빨주노초파남보'가 거기 다 있다. 보리밭은 이렇게 회화적일 줄 누가 알았으랴. 작가는 이렇게 보리밭의 아름다움에 맹아였던 우리의 눈을 뜨게 해주었다.

소와 보리밭의 극적인 만남

'황금보리밭의 소들' I 순지 5배접 암채 227×728cm 1988
 '황금보리밭의 소들' I 순지 5배접 암채 227×728cm 1988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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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만 그리던 작가는 어려서부터 좋아한 소를 등장시킨다. 한국적인 것을 추구하는 작가로서 마음에 꼭 들었을 것이다. 순박하지만 힘이 넘치는 소, 죽어서도 모든 걸 내주는 소는 분명 작가에게 매력적 소재이고 이는 보리밭그림에 지친 작가에게 활력을 준다.

작가는 당시의 심정을 그의 수필집 <이브의 보리밭>에서 "80년대 중반 보리밭을 떠나려는 갈등은 '소'라는 테마를 만나면서 풀기 시작했다. 소의 우직함이나 끈기는 우리 서민과 함께 동거 동락하는 동지라는 이미지가 나의 애정을 끌었다"라고 적고 있다.

보리밭이 주는 한의 정서와 소의 우직한 힘이 합쳐지면서 그의 작품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그리고 소 그림으로 더욱 빛의 하이라이트와 어둠이 겹쳐지는 음영이 그림 속에서 빛을 발한다. '황금보리밭의 소들'을 보면 그 은은한 빛과 색채의 농담이 참으로 정겹다.

이후 그의 보리밭연작은 소뿐만 아니라 아래처럼 누드와도 결합된다. 이뿐만 아니라 80년대, 90년대에는 보리밭에 방독면, 하회탈, 석보상전, 훈민정음, 단군 등과 도입하여 다양한 변화를 시도한다. 그런 것들은 한국적인 이미지나 근현대사와 관련이 있어 흥미롭다.

여체의 누드가 바로 보리밭 아닌가

'이브의 보리밭 89' I 순지 5배접 암채 150×200cm 1989
 '이브의 보리밭 89' I 순지 5배접 암채 150×200cm 1989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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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보리밭'과 자신의 내적 자아를 담긴 '이브'를 합친 연작으로 돌풍을 일으킨다. 이런 발상은 국문학자 동료교수가 일러준 보리밭과 관련된 "비단속옷 입고 보리밭 매러간다"와 같은 속담에서 착상되었단다. 이런 속담을 추리컨대 당시 양반들이 기방을 드나들었다면 일반 민중들은 보리밭에서 로맨스를 나눈 것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이렇게 원시적이고 서정적이고 한국적인 '보리밭'과 도발적이고 현대적이고 서구적인 '이브'를 나란히 놓아 그의 작품세계를 한 단계 높인다. 하긴 인간도 하나의 자연이고 보면 보리밭도 누드도 둘이 아니고 하나다. 그림 속에서 두 소재가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적인 에로티시즘이 탄생된다. 

벌거벗은 이브, 여성의 굴레와 인습에 대한 저항의식

'이브의 보리밭 4' I 순지 5배접 암채 162×130cm 1990
 '이브의 보리밭 4' I 순지 5배접 암채 162×130cm 1990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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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보리밭 속 누드가 단지 눈요기용이 아니라 내적 자아를 갖춘 여성으로, 당당한 대지의 여신으로, 생명을 낳는 존재로 읽혀져야 타당하다. 이브가 부끄러움 없이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는 모습이나 체모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이런 이브를 통해서 작가의 속마음을 드러낸다. 그의 수필 <이브의 보리밭>에서 "내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벌거벗은 이브는 내가 살아오면서 갈등했던 여성의 굴레와 인습에 대한 저항의식을 형상화한 것으로 내 내면의 자화상인지 모른다"라고 적고 있다.

작가는 학교 다닐 때는 전혀 몰랐던 여성이기에 당하는 남녀차별을 결혼과 사회생활 속에서 깨달았단다. 그래서 여성이 받는 이런 피해의식 혹은 종교적 죄의식 같은 것에서 자유롭고 싶어 이런 누드를 그린 것이 아닌가싶다. 

미술평론가 류석우씨는 이런 점에 대해 "이브는 홀로 삭였던 정한의 사슬을 끊고 속박과 금지로부터 너울을 벗은 자유여인으로 순수자연의 표상인 보리밭을 끌어들인다"라고 평했다. 사실 그의 누드는 남성에게 호감을 주는 것과는 반대로 근육질이고 그래서 공격적이고 반항적인 여자라는 인상까지 든다.

미술의 본질인 누드로 돌아오다

'이브-꽃처럼 나비처럼' I 순지 5배접 암채 112×145cm 2008. "나는 꽃처럼, 나비처럼 아름다운 자연의 일부로 누드를 생각한다"
 '이브-꽃처럼 나비처럼' I 순지 5배접 암채 112×145cm 2008. "나는 꽃처럼, 나비처럼 아름다운 자연의 일부로 누드를 생각한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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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나이 들수록 신작인 '이브-꽃처럼 나비처럼'에서 보듯 더 강렬한 색채와 초현실적인 화풍을 보인다. 보호막 같았던 보리밭마저 없어지면서 그의 누드는 이전의 누드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자유롭고 대담하고 독창적이고 환상적이다. 머리를 풀어헤친 채 눈빛은 더 차갑고 에로스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이런 작품은 40년 경륜을 쌓은 작가로서 또 다른 도전이자, 작가가 말하는 삶의 3요소인 이성(로고스)과 열정(파토스)과 성애(에로스)를 하나로 융합한 그만의 에로티시즘 미학을 꽃피운 것이 아닌가싶다.

하여간 그는 이렇게 보리밭작가에서 누드작가로 거듭나고 있다. 또한 한국의 전통채색화가 21세기에는 세계적으로 더 빛나기를 바란다. 그리고 작가는 이제 동서양의 경계와 남녀의 벽을 넘는 누드를 통해 창작의 행복과 삶의 열락을 향유하고 싶은지 모른다.

[작가의 사는 이야기] "난 그림 그릴 때가 가장 행복해요"
작품 앞에 선 작가 이숙자
 작품 앞에 선 작가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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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전의 성격은?

"저는 다작을 못하는 편이라 5년 간격으로 정식개인전은 12번 정도한 것 같은데 작년에 개인전을 했고 고양문화재단의 요청도 있고 해서 전시할 작품을 많이 준비 못해 거의 회고전 형식으로 초기 작품부터 2008년 작품까지 총망라했어요"


- 40년간 그림에만 몰두하는 힘은?

"저 경우에 그림 외에 다른 것 하고 싶은 것이 없어요. 어려서부터 만화인지 동화인지 <엄지공주>가 있는데 하늘을 나는 그림이 너무 환상적이었어요. 글보다는 종이에 그림으로 보는 것이 더 좋았어요. 그리고 제가 초기에 교사를 했는데 교육자로서 보람이 전혀 없었어요. 물론 직업인으로써 최선을 다 했지만 직장생활을 하자니 먹고사는 것이 문제고 그림을 택하자니 교사생활을 그만두어야 하고 고민하고 갈등하다 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걸 하기로 결심하고 직장을 그만 두었죠. 지금 생각해도 참 잘 한 것 같아요. 그렇게 난 그림 외엔 아무런 취미가 없어요"

- 선생님은 피곤한 작업에서 오히려 쾌감을?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해도 계속하다 보면 피곤하죠. 손으로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작가로서 창작해야 한다는 쫓김이나 중압감이 쌓이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괴롭죠. 150호 같은 그림의 경우 보리알을 수없이 그려야 하는데.그 수염을 언제 다 그리지 가슴 가빠지고, 그래서 딱 2시간만 아니 3시간만 그리고 그만두자 하다 금방 12시가 넘죠. 그렇게 피곤한데도 그림에 몰입하다 보면 신비하게도 마치 기도나 명상을 한 것처럼 답답증이 없어져요. 그리고 난 어떤 사람이 돈을 주고 이런 그림을 주문한다면 그건 못해요. 최악의 주문이죠. 나는 내가 좋아서 그려야 신바람이 나죠"

- 나이에 상관없이 소녀 같은 인상이신데?
"아 그건 작업하는 때는 물론 머리도 묶고 간편한 복장으로 하지만 나이 들어서는 외출할 때 남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고 성의를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나이 들어서는 최대로 멋을 내야 보통으로 보이잖아요. 그리고 저는 화가로 살다가면서 학교에서 학생을 만나거나 전시관계로 사람을 만나는 것으로 충분하지 그 외에 만남은 피하는 편이죠. 혹시 초대를 받아 가게 되어도 너무 긴장해 식사를 즐기지 못하고 그 다음날 아플 정도예요. 난 그저 그림 그릴 때가 가장 편하고 행복해요"

- 최근 근황은?
"내가 고대에서 작년에 정년퇴임을 했는데 새가 문이 열려야 밖으로 나가잖아요. 퇴임하는 날이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어요. 요즘 아침에 일어나면 아파트가 5층이라 창도 보이고 하늘도 보이죠. 야! 오늘도 저 하늘만큼의 자유를 가지고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생각하면 너무 즐겁죠. 어제께도 하루 종일 그림을 그렸지만 오늘도 내일도 그릴 수 있어 너무 황홀하고 행복하고 믿어지지 않죠"

- 끝으로 미술관 측에서 개구리추모비를 세웠다던데?
"아 그건 '보리밭-황금개구리'를 그리기 위해 인터넷에서 개구리를 주문해 그렸는데,  다 그린 후 보니 개구리 4마리 중 한 마리가 죽었어요. 그래서 내가 그림을 그리다 그랬으니 맘이 너무 아파 상복을 입고 개구리를 묻어주고 조의를 표하고 조사도 썼죠. 그리고 작은 돌멩이를 주어다 개구리 추모비로 만들었어요. 그걸 여기 '작가의 방'에 가져왔어요"(여성작가의 생명에 대한 감수성·경외감에 가슴 뭉클했다)"


보리밭작가 이숙자는 누구?
지향(芝鄕) 이숙자(Lee Sook-Ja, 1942~) 홈페이지 http://www.leesookja.com 서울 생. 2006년 파리 전에서 '문화적 대사건(UN EVENEMENT CULTUREL)'이라고 호평을 받음. 남편은 문학평론가 구중서
[학력] 1967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졸업. 1971 동대학원 졸업
[개인전] 2001 제 14회 '이숙자 작품전' 선화랑 초대, 선화랑(서울). 2006 제 19회 '이숙자' 에버아트갤러리(EVERARTS GALLERY) 파리 프랑스. 2006 제 20회 '이숙자-이브의 보리밭' EBS SPACE 초대(서울). 2007 제 21회 '이숙자 개인전' 선화랑 초대(서울)
[작품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호암미술관, 선재미술관, 고려대박물관, 홍익대박물관, 원자력연구소, 인터콘티넨탈호텔, 대한항공, 주택공사, LG본사 등 
[저서] '한국근현대동양화 연구', 미술문화원(1989). '이숙자-이브의 보리밭', 도서출판 나남(1991)
[수상] 1972 제21회 국전 특선수상. 1978 제1회 중앙미술 대전 장려상수상. 1979 제28회 국전 특선수상. 1980 제29회 국전 대상수상. 1980 제3회 중앙미술대전 대상수상. 1994 제5회 석주 미술상수상

덧붙이는 글 | 양아람누리아람미술관 교통: 지하철3호선 정발산역3번 출구에서 내리면 바로 아람미술관과 연결됨
입장료: 일반 5,000원 7세 이상 4,000원 20인 이상 단체 할인 3,000원
장애우, 국가유공자, 만3세 이하 및 65세 이상 무료. 매주 월요일 휴관
전시문의 및 예약: 1577-7766, 031-960-0180 www.artgy.or.kr



태그:#이숙자, #이브의 보리밭, #류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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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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