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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르는 일을 정말 싫어한다. 군대 생활 중 하루에 400고지를 3~4번씩 올랐기 때문에 건강에 좋다는 어떤 말을 들어도 귀를 닫아 버렸다. 그러니 아이들과 함께 등산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없다. 함께 공부하는 목사님들이 등산을 가잔다. 그것도 가족끼리. 다들 간다는데 나 혼자만 빠질 수 없는 노릇이다. 아이들에게 등산간다고 하니 마음이 하늘을 찌를 듯이 좋아했다. 저리 좋아하는데 한 번쯤 산에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라 비가 오네, 내일(8일) 등산 가기 힘들겠다."
"아빠, 등산하고 비오는 것 하고 무슨 상관인데 비가 오면 못가요?"
"김막둥. 산은 흙과 돌이 많다. 요즘은 나뭇잎도 많이 떨어져 미끄럽다. 또 오르막이라 더 미끄럽지. 비오는 날 산에 안 가봤지. 아빠는 군대 있을 때 산에 많이 갔다. 얼마나 미끄럽는지 몰라."

"…! 아빠 우리 어떤 산에 가요?"

"와룡산."

 

막내는 아쉬움이 많은 모양이다. 비가 많이 와 등산이 취소되면 좋겠다는 은근한 마음이 생겼다. 정말 산은 싫었다. 하지만 하늘은 내 마음보다는 아이들 기다림과 설레임을 택했다. 아이들은 엄마가 만든 초밥, 사과, 바나나를 바리바리 챙겨 자기 가방에 챙겨넣기 바빴다.

 

먹구름 때문에 가을 하늘 본래 모습은 기대할 수 없었지만 산은 콘크리트와 매연에 찌든 마음을 확 트이게 했다. 나무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매연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상쾌했다. 산을 왜 싫어했는지 조금 후회되기 했다.

 

 

"너희들 천천히 가야지. 꼭대기까지는 멀다. 지금 빨리 가면 나중에 힘들어서 못 간다. 특히 김막둥 너 천천히 가라. 나중에 엄마에게 업혀가지 말고."
"아빠 알았어요. 천천히 가요."
"여보 이것봐, 나무 무더기가 있다. 등산로를 만든다고 나무를 베었나?"

 

 

조금씩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군대 생활 생각하지 말고, 뒷산이라도 자주 가야 될 것 같다. 정상까지 갈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와룡산은 경남 사천시에 있는 산으로 용이 누워있는 형상이라고 해서 와룡산이라 부른다. 고향 동네에서 보면 돌 무더기가 비탈져 있다. 바위는 없고, 돌 무더기 비탈져 있는 모습은 신기하다. 어떤 사람들은 화산 폭발로 돌무더기 비탈이 생겼다고 하지만 정확한 것은 잘 모르겠다.

 

 

남쪽에 있는 와룡산에도 단풍이 들었다. 설악산과 내장산보다는 못하지만 단풍은 아름다웠다. 특히 먹구름과 안개 때문에 단풍은 더욱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붉게 타 들어가는 단풍은 없지만 자연 그 자체가 주는 아름다움은 사람이 만들 수 없는 색깔이다.

 

 

"엄마 힘들어요. 먹을 것 없어요?"

"아빠가 꼭대기에 가서 먹는다고 했잖아."

"엄마 그래도 배고파아요. 좀 먹으면 안 돼요?"

"물만 마셔."

 

산에서는 밥을 해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초밥을 조금 만들었다. 산 중턱에 오르자 아이들을 벌써 밥을 찾는다. 초밥을 만들어 왔지만 아무데서나 먹을 수 없기 때문에 함께 모여 먹기로 했는데 참지 못하고 밥을 먹자고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물만 마시기로 했다.

 

 

물 한 모금 마시자 아이들은 금방 생기가 돈다. 아빠와 엄마는 벌써 지쳤지만 물 한 모금 마시고 신나게 오른다. 딸 서헌이는 왜 지금까지 등산을 하지 않았는지 불만을 토로하는 것처럼 잘도 오른다.

 

"서헌이 힘들지 않아?"
"힘들지만 재미 있어요. 아까 돌비탈길 오르다가 발도 끼었어요?"

"다치지 않았어?"
"괜찮아요?"

 

 

"야 철쭉이다. 철쭉!"

 

정말 철쭉이었다. 가을을 모르는 것있일까? 아니면 봄에 피었다가 아직도 지지 않고 그대로 꽃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일까? 단 한송이었다. 봄에 와룡산 철쭉은 굉장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입동을 하루 지난 날 철쭉을 볼 수 있다니.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한 겨울도 버틸 수 있을까?

 

 

드디어 정상이다. 799m, 민재봉. 800m에 1m 모자라지만 와룡산은 바다와 접해 있기 때문에 밑에서 보면 매우 높다. 쉽게 말하면 1m부터 오른다고 생각하면 된다. 민재봉에 소나무가 있었다. 모진 바람을 이겨내고 서 있는 모습은 왠지 소나무가 지닌 올곧음을 느꼈다.

 

산에 오르는 자 꼭대기에서 사진 한 번찍지 않으면 산을 오르지 않는 것과 같다는 생각에 가족이 찍었다. 온 가족이 함께 산에서 찍은 유일한 사진이다. 꼭대기에 오른지 5분도 되지 않았는데 추워 내려가기 바빴지만.

 

 

민재봉을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다시 오를 수 있을까?' 아이들은 말했다. "다시 오자고." 답을 주었다. "그러자고." 가족과 함께 산에 오르는 일이 이렇게 기쁠 줄은 처음 알았다. 그래 다시 오르자. 뒷산이라도.


#가족 등산#와룡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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