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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 자서전 <동행> 출판기념회 초대장 겉그림
 이희호 자서전 <동행> 출판기념회 초대장 겉그림
ⓒ 이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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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 안경집에 가다

그 언제부턴가 나는 돋보기안경이 없으면 한 줄의 글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게 되었다. 그저께 내가 부주의한 탓으로 안경다리를 부러뜨렸다. 내가 사는 산골마을과 가까운 안흥 장터마을에는 안경집이 없는 탓으로, 외출차비를 하고 안경을 맞춘 횡성읍내에까지 가고자 버스를 탔다.

만일 부러진 안경다리를 고칠 수 없다면 이참에 하나를 살 셈으로 농협에 들러 빈 지갑을 채웠다. 횡성읍내 단골 안경사에게 다리가 부러진 안경을 꺼내놓자 그는 고칠 수 없다고 딱 잘랐다. 그래 값을 물었더니 새로 안경을 맞추려면 5만원이 든다고 하였다. 꼭 일 년 새 1만 5천원이 인상됐다.

애초에는 다시 맞춰 쓸 생각으로 안경점을 들렀지만 순간 물가가 너무 오른 게 내심 화가 났고, 그대로 버릴 안경알이 아까워 안경테만 바꿔달라고 했더니, 그것은 가능하다고 했다. 안경테를 바꾼 뒤 1만 5천원을 주고 안경점을 나오자 안흥으로 돌아오는 버스가 막 출발하여 다음 차까지 한 시간 남짓 남았다.

집에서 떠날 때는 돌아오는 길에 안흥장터에 내려 단골 이발관에서 머리를 깎기로 하였다. 그런데 차 시간이 한 시간이나 더 남아 시간을 보내는 방법으로 그만 횡성에서 이발하기로 하였다. 안흥 단골 스마일이발관 이발사에게는 좀 미안했지만…. 언젠가 한번 머리를 손질한 적이 있는 횡성군청 앞 궁전이발관을 찾았다.  이발사는 나를 용케 알아보고는 주말에 뭔 좋은 일이 있느냐고 꼬치꼬치 물었다.

나는 속마음을 숨긴 채 그냥 차 시간도 남고, 머리가 길어 자른다고 건성으로 대답해 버렸다. 사실은 오는 11일 저녁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열리는 한 출판모임에 초대받았기에 미리 이발을 하는데, 그 사연을 그대로 이야기하면 강원도 산골 노인이 별 실없는 말을 하는 사람으로 비칠 것 같아 머리를 손질하는 동안 내내 날씨와 올 가을 추수 이야기만 나눴다.

사람 팔자 알 수 없다

지난달 월말 버스 안에서 손 전화를 받았더니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 자서전 출판준비위원이라는 분이 "이희호 여사가 정중히 우리 부부를 초대한다"며 초대장을 발송하려고 하니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며칠 후 안흥 내 집으로 초대장이 왔다. 아내는 예상대로 참석치 않는 게 좋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즈음에는 연탄불 가는 일에, 고양이 밥 주는 일 등, 어느 한 사람은 집을 지켜야 한다. 사실 그동안 숱한 학부모가 우리 부부를 점심이나 저녁에 초대했지만 동행한 적이 거의 없었다. 언젠가는 택시기사 학부모가 아들 대학합격에 감격해 내 집까지 차를 몰고 와 간청해도 끝내 사양했다.

내가 세상을 오래 산 탓인지 참 세상은 변화무쌍하고, 사람 팔자 알 수 없다. 땔감이 없어 낫을 들고 구미 금오산 기슭으로 푸나무를 하러 가서 다 떨어진 고무신을 패대기치며 신세타령을 하던 어떤 아낙네가 몇 달이 지나지 않아 국무총리 장모에 대통령 형수가 되어 고래 등 같은 대저택에서 여러 하인들을 두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끗발 좋게 사는 것도 봤고, 사형수 아들이 대통령의 아들이 되고, 나는 새도 떨어트릴 대통령이 푸른 수의를 입은 일도 보았다.

그뿐인가. 잘 나가던 고관이 줄줄이 굴비두름에 묶이듯 묶여 교도소로 가는가 하면, 전현직 지자체 단체장도, 심지어 전직 대법원장까지도 한강에 투신했다는 보도도 봤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는 어떤 지위에 올랐다는 게 중요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왔으며, 어떻게 인생을 마무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런가 하면 등록금이 없어 학교를 중퇴한 가난한 제자가 많은 세월이 지난 뒤 내 앞에 왕자처럼 나타나 쥐구멍을 찾고 싶도록 부끄럽게 만든 적도 있었고, 낯선 LA 공항에 카메라를 메고 취재 나온 제자도, 일주일간 일본측의 초청 귀빈 여행에 안내자가 된 제자도 있었다.

사형수의 아들

이대부고 재직시절의 필자
 이대부고 재직시절의 필자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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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 여사의 아들 김홍걸 군을 처음 만난 것은 1979년 3월로 그때 그의 아버지는 이름 석 자를 신문에 쓸 수 없었던 연금 정치인이었다. 곧 10 ·26 사태로 '서울의 봄'을 맞이하여 유력한 대권 후보자로 반짝하더니 곧 사형수가 되었다.

그는 언제나 말이 없었다. 머루빛 같은 눈망울만 초롱초롱할 뿐이었다. 그가 1-2반일 때 나는 1-3반 담임이었고, 내가 2-2반 담임일 때 그는 2-1반이었다. 하지만 나는 국어 교과를 지도했기에 단위수가 많아 거의 매일 수업시간에 그를 만났다. 내가 교과 이외 역사 이야기를 할 때는 그의 머루빛 눈망울이 더욱 반짝거렸다.

그가 2학년으로 진급할 때 1학년 때 내 반이던 '김대중' 학생이 하필이면 그의 반이 되었다. 그러자 그의 새 담임(고용우 선생)이 나에게 김대중 학생을 내 반으로 데려가고, 대신 다른 학생을 보내달라고 하여 개학 전에 두 학생의 반을 바꾼 적이 있었다.

그의 담임 고용우 선생은 생각이 참 깊었던 인격자로 지금은 보스턴 근교에서 호호 백발 노인으로 노후를 보내시고, 김대중 학생은 지금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때 나는 학교 교지 편집지도 교사였는데, 좋은 작품을 싣고자 1981년 가을에 교내 문예현상 모집을 했다. 공모 마감 전날 학교에 등교하자 내 자리에 흰 편지 봉투가 놓여 있었다. 그 봉투에는 대학노트를 찢어 거기다가 시를 두 편 써서 현상문예에 투고한 작품이 들어있었다.  

여수(旅愁)

고2 김홍걸

영원의 역전에서
완행열차를 기다린다.

빈 가방을 들고 서성대는 마음은
미지의 이웃과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저마다의 행로가 달라서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

영혼의 닮은 사람을 찾아
거울 앞에 서면

거울 속에서
낯익은 얼굴이 외면해버린다.

시간을 놓친 티켓처럼
인생이 쓸쓸해 웃는다.

가을

고2 김홍걸

무덤 뒤켠에 사는 시인은
거리에서 잔뜩 취하고는
곧잘 이곳을 지나간다.

그때마다 그는
들국화 따위를 짓밟고는
영원의 꿈에 젖고 싶었지만

그런 풍성한 가을은 이제
이 근처엔 없었다.

그 근처에 낯선 화가 하나가
맥 빠진 그림 같은 걸 그리고 있었다.

- <우리생활 17호> 1981. 2. 5

옛 스승의 당부

영부인 시절 친필로 보내온 연하장 겉봉투
 영부인 시절 친필로 보내온 연하장 겉봉투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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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 마감 날 작품을 추려보니 시 부분에 20여 편이 응모했다. 그날 나는 퇴근을 미룬 채 교무실에서 그 작품들을 읽는데 사형수의 아들이 자꾸만 눈에 어렸다. 그때 그의 아버지는 사형수로 언제 사형 집행이 될지 모를 명재경각에 놓여 있었다. 나는 그의 작품을 장원에 올려주는 게 사형수 아들에게 용기를 주고, 그를 구원하며, 어쩌면 장차 시인의 길로 인도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의 원고 위에다 붉은 사인펜으로 '장원'이라고 큰 글씨를 쓰고는 퇴근했다. 지금으로부터 꼭 28년 전의 일이다.

세상의 어머니는 자식 일이라면 모든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때 사형수가 대통령이 되고, 그 부인이 영부인이 된 뒤, 나는 두 번 연하장과 감사장을 받았다. 하지만 한번도 만나 뵌 적도, 볼펜 한 자루 선물 받은 적도 없다.

이번 초대에 나는 일찌감치 머리를 깎고 차비를 차리고 있다. 학생 졸업 후 28년 만에 학부모로부터 저녁 한 끼 대접을 받는 것은 아마도 흠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두보의 시구처럼 피차 꽃 지는 시절에 만나는 것은 낙조의 아름다움처럼 장엄하지 않겠는가.

만일 그날 그 자리에서 옛 제자 김홍걸 군을 만나면, 나는 그가 이 땅의 시인으로나, 아니면 통일운동가로 남북을 오가면서 통일을 앞당기는 그런 일을 드러나지 않게 하거나, 현대사 특히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는 그런 학자가 되기를 권유하고 싶다.

그래서 이번에 내가 펴낸 구한말 의병 이야기 <누가 이 나라를 지켰을까>와 지난번에 펴낸 중국대륙에 흩어진 선열들의 발자취 <항일유적답사기>를 초대에 대한 답례품으로 전할 예정이다.

그가 청출어람(靑出於藍; 제자가 스승보다 나음)의 문사나 학자가 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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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 자서전 동행 - 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

이희호 지음, 웅진지식하우스(2008)


태그:#이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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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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