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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내린다

붉은 입술을 하고

모악산 대원사 오르는 길

빈 몸으로

먼지 폴폴거리며 걷는데

뒤따라오는 아들 녀석

구시렁댄다 재미없다고

내 마음은

가을빛에 붉게 물드는데

아들 녀석은

또 구시렁댄다 팍팍하다고

 

 

산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복장을 온전히 하지 않고 산에 오르는 것은 산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그 친구는 낮은 산을 가든 높은 산을 가든 초등학교 1학년 만한 배낭을 메고 온갖 장비를 다 갖추고 산을 오른다. 그의 산을 오르는 방식은 앞만 보고 달리는 형식이다. 땀을 쭈~욱 내야 산에 올랐다고 말한다. 산을 오르는 게 목적인지 땀을 빼는 게 목적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난 정반대이다. 그저 느리게 느리게 달팽이처럼 오른다. 팍팍하면 쉰다. 아름다운 곳이 있으면 멍하니 바라보고 느릿느릿 오른다. 그렇게 느릿하게 오르다가도 숨이 차면 철푸덕 앉아 숨을 돌리기도 한다.

 

점심 무렵, 주말이면 가끔 찾는 전라북도 완주군 모악산에 아들 녀석과 갔다. 산에 오른다기보단 그저 바람을 쐬러 갔다고 하는 편이 나을성싶다. 주차장은 자동차들로 만원이다. 축구장에선 동호회 회원들끼리 축구 경기가 한창이다. 아들 녀석이 잠시 구경하고 가자고 한다. 그러자고 했다. 요즘 축구에 열의를 보이고 있는 녀석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주차장에서 대원사까지의 길은 평탄하다. 그래서 모악산을 찾는 사람들은 산 정상에 오르기보단 대원사까지만 갔다 오기도 한다. 전북 완주군 구이면에 위치한 대원사는 진묵대사가 20여 년간 수행했던 사찰로 알려진 절집이다. 크지도 작지도 않지만 곳곳에 진묵대사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은 곳이다.

 

봄엔 이곳에서 화전을 부쳐 먹고 사생대회도 열린다. 여름엔 대원사 계곡에 발을 담그고 물놀이도 즐긴다. 겨울엔 설경에 취하고 이따금 나타나는 산토끼를 구경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가을의 맛을 한층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이곳이다.

 

또 하나, 이곳 대원사는 증산교를 창시한 강일순이 수행하다가 도통을 한 곳이기도 하다. 강증산이 이곳 한 암자에서 수행도중 큰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 증산교의 성지로 추앙되고 있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진묵대사의 흔적을 보기 위해, 강증산의 도통을 알기 위해서 대원사를 찾는 것은 아니다. 나와 아들도 마찬가지이다. 일상에 지친 심신을 새롭게 하거나,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자 모악산을 찾고 대원사에 오른다. 휴일에 모악산에 가보면 어린 아이들이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오르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다른 산에 비해 가족들의 등산로로 사랑받는 곳이 모악산이다.

 

가을의 끄트머리쯤에 서있는 지금 대원사 오르는 길은 온통 울긋불긋한 빛이다. 오랜 가뭄 탓에 계곡의 물은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촬촬거리며 흐르는 물소리와 이따금 들려오는 새소릴 들으며 등산객들은 가을을 만끽한다.

 

그래서 단순히 등산을 하러 왔다가 뜻하지 않은 단풍의 아름다움에 빠진 사람들은 걸음을 떼지 못하고 그 아름다움에 취한다. 지나가는 누군가는 '가을 선경에 빠진 것 같다'고 한다. 낙엽 위에 뒹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가까운 계곡 저편에선 연인인 듯한 두 사람이 낙엽을 뿌리며 웃는 모습이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내내 뒤따라오며 팍팍하다고, 재미없다고 투덜대던 아들 녀석도 붉은 단풍과 떨어진 낙엽에 빠져 장난을 친다. 이때만큼은 아들 녀석도 작은 자연이 된다.

 

붉게 떨어진 낙엽과 아직 나무에 매달려 붉은 몸짓을 하고 있는 나뭇잎을 보고 감상하고 있으려니 이런 싯구가 떠오른다.

 

단풍은 나무들의 마지막 편지

초록의 먹을 갈고 갈다

다 갈고 나 더 이상 갈게 없으면

붉은 사연 맑게 써서

지상으로 내려보낸다

스스로 부스러져

하얀 잠에 빠질 때까지

 


태그:#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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