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산악회 11월 정기산행(제122차)은 영취산(681.5m)이었다. 그런데 창녕지역에서는 ‘영취산’보다 ‘영축산’으로 고착되어 불리고 있다. 때문에 영취산은 영축산으로 혼용돼 알려져 있다. 전국에서도 여러 명산에 ‘영취산’이 붙여져 있다.
영취산(靈鷲山)은 석가모니가 최후로 설법한 인도의 영취산에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고 한다. 독수리 서식지인 이곳을 독수리 취(鷲)자를 써 영취산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영취산의 불교식 이름이 바로 영축산이다. 이번 산행지인 경남 창녕의 영취산도 인근 사찰에서는 대부분 영축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통도사가 자리한 영축산이나 진달래 군락지로 유명한 전남 여수의 영취산도 그 이름의 유래는 같다.
영축산은 영취산의 또 다른 이름
일행은 스물한 명. 창녕군 계성면 사리마을 법성사에서 영취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이 길은 산&산팀이 개척한 코스. 전체적인 거리가 길지는 않으나, 암릉(巖陵)을 타는 구간이 많아 쉬는 시간을 뺀 걷는 시간만 해도 4시간 정도 소요되는 산행으로 하산은 보덕암 주차장이었다.
산행출발지점(화왕산군립공원 매표소로 가는 1080번 지방도상의 사리마을)에서 산행대장(조우열)으로부터 개략적인 설명을 들은 후 사리마을버스정류장 앞의 법성사 빗돌 옆에서 마을길로 올랐다. 산자락 위치한 단아한 마을 전체가 가을빛으로 완연했다.
마을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는데 길을 잘못 들었다는 초로의 노인 한 분이 길 뜸을 해준다. 바튼 걸음에 때늦은 아침 쌈 거리로 한손에는 무 한 뿌리, 다른 한 손에는 배추 한포기를 뽑아들었다. 그 모습이 참 정겹다.
“그길로 가면 안 되여. 돌아서 샛길로 가. 아까 오른 사람들도 그랬구먼. 길이 희미하니 조심혀. 찾는 사람들은 많은데 아직 등산로 안내 표지판이 없어. 곧장 올라가면 돌로 쌓은 축대가 나타날 거야. 그라고 조금만 더 올라가면 무덤이 보여. 거기서 왼쪽으로 돌아가.”
초입부터 등산길을 가팔랐다. 이어 산길로 진입하니 부산일보가 등산안내 표식으로 매어둔 노란 시그널이 보인다. 곧 솔밭 길로 접어들었다. 길이 희미하니 주의해야 한다는 노인의 말씀에 신경을 곤두세워 한 마장쯤 걸었더니 돌을 쌓은 축대가 나타났다. 다시 10여분을 올라가니 무덤 세 기를 만났다. 멧돼지 출몰이 잦은 탓인지 무덤하단은 돌로 쌓았다. 특이한 봉문이었다.
무덤 왼쪽으로 가파른 산길을 허겁지겁 20여분을 올라가니 바위구간이 턱하니 버티고 섰다. 일행은 잠시 숨을 고르면서 사위의 가을정취를 만끽했다. 올 같은 가뭄에도 영축산의 가을빛은 그저 탄성을 자아낼 만큼 완연했다. 다시 발품을 팔았다. 희끄무레했던 날씨가 후드득 빗방울을 뿌린다. 그러나 누구하나 개의치 않았다. 산을 오르는 그 자체만으로도 흡족했기 때문이리라. 바위구간이 끝나자 뚜렷한 능선길이 나타나고 곧 급경사 구간이 시작되었다
다시 10여 분을 오르니 병봉(倂峯)이 저만치서 반긴다. 양 옆으로 탁 트인 조망이 시원하다. 왼쪽으로 절벽 밑에 지어진 구봉사가 눈에 들어온다. 위태롭게 절벽에 붙여 세운 모습이 볼 만하다. 구봉사에 들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산행길이 아니라 그냥 눈요기만 한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암릉구간이 시작된다.
하지만 산정 곳곳에 산불로 거슬러진 시커먼 고사목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8년 전, 창녕송이 버섯 채취권을 놓고 누군가 산불을 낸 때문이라고 한다. 산불로 죽은 나무들의 모습, 화마가 스쳐간 자리는 마치 지리산 제석봉의 고사목 평원과 비슷하다. 나무들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자연의 복원력은 왕성했다. 산주위에 산재한 기암괴석들과 곳곳에 피어난 억새가 산을 다시 살려내고 있었다.
8 년 전, 영취산 산불로 죽은 나무들의 모습이 안타까워
다시 한참을 오르니 암릉길, 그 자체가 전망대다. 10여분을 더 오르니 탁 트인 전망대 바위를 만날 수 있다. 전망대에서 곧 눈에 띄는 게 솟은 남근석 모양의 기암, 일명 미끄럼 바위로 남근석은 정상으로 향하다 돌아보면 한 개의 바위가 다른 한 개의 바위 위에 불안하게 서 있는 모습이란 걸 확인할 수 있다. 주위를 조망해 보니 멀리 화왕산의 억새밭이 손에 잡힐 듯하고 그 너머 펼쳐진 평야까지 훤하게 볼 수 있다.
영취산 정상에는 맥봉산악회가 1991년에 세운 작은 표지석이 자리하고 있다. 땀범벅이 된 얼굴로 기념촬영을 했다. 다들 나잇살이 들었어도 앙증맞은 표정은 산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었다. 정상에서는 남쪽으로 낙동강과 그 뒤의 낙남정맥 흐름을 그대로 감상할 수 있었다. 저만치 구계리 마을과 영산면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평화롭다.
정상을 내려와 시장기를 채울 장소를 물색했다. 다들 너럭바위를 고집했지만, 산행대장이 배부르면 산을 못 탄다고 꾸역꾸역 제2의 산정까지 내달린다. 동행했던 학동들 몇몇은 배고프다고 연방 볼멘소리를 해댄다. 아침을 부실하게 챙겼던 나는 더했다. 그 모습을 보고 아내가 사뭇 지청구를 해댔다. 직업이 직업인만큼 어딜 가나 ‘초딩’ 수준을 못 벗어난다는 얘기다.
푸짐하게 배를 채우고 다시 산등성이를 따라 나섰다. 산행 중반부터 시작해 하산 길 중반까지 줄기차게 이어진 바윗길을 헤쳐 가는 코스다. 암릉에서 좌우로 펼쳐진 조망을 만끽하고 등산로 곳곳에 솟은 기암괴석들의 오묘한 자태를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이 길은 암릉이지만 크게 위험한 구간이 없고 미끄러운 바위가 아니어서 누구나 도전해볼 수 있다.
힘들지만 어렵지도 않은 바위길, 정겨워
잠시 쉰 뒤 다시 등산로를 따라 걷는다. 등산로 옆에 허물어진 산성이 있다. 영산산성이다.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산성은 높은 곳이 1m 정도이고 마치 허물어진 돌 담 같다. 더구나 키보다 웃자란 억새로 뒤덮여 있어 초행길 등산객이라면 그냥 돌무더기로 생각하였을 정도다. 두어 구비 암봉을 거쳐 제2영봉에 도착했다. 이 봉우리는 국도5호선을 타고 영산면내에 들어설 때 보이는 높다란 산정이다. 정상보다 더 사방이 훤하게 내려다보인다.
모두들 주변 경치를 담느라 부산한데 산행대장이 하산을 명한다. 하산 길은 오를 때와 달리 내리막길이다. 근데 가도 가도 끝 모를 길이다. 이런 길을 올랐다고 생각하니 야트막한 중봉이라도 등산의 소소한 맛을 다 안겨주는 산이 영축산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 남짓 터벅터벅 걸어 보덕암에 도착했다. 오후 3시 무렵이었다. 전체 산행은 다섯 시간 정도 소요됐다.
등산의 소소한 맛을 다 안겨주는 산, 영축산
이번 산행을 통해서 볼 때, 영축산은 산행 안내 표식이나 등산로 불비로 많은 애로점이 있었다. 인근 비슬산이나 창원 마산, 그보다도 군립공원 화왕산에 비하면 안전한 등산을 위한 배려가 너무 열악했다. 이 점은 창녕군이나 영산면에서 보다 대승적인 견지에서 보완을 해야 할 사항이다. 산이 거기에 있어서, 산이 좋아서 산을 찾는다지만, 산다운 산을 만드는 것은 신심어린 선정(善政)의 몫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