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내가 사는 정릉의 종점 선술집. 불황이라 일용 노동자들이 대낮부터 막걸리를 마시는 일이 잦다. 그러다 보니 취해서 소리 지르고 다투는 광경도 심심찮게 연출된다. 만취한 아저씨 한명이 들어오는 것을 주인아줌마가 저지했다. 과음한 사람에게 술을 주지 않는 것은 우리 동네 부처님인 종점집 아줌마의 확고한 정책.
서너번 저지당한 이 아저씨, 끝내 아줌마를 향해 '돼지 같은 X'이라는 욕설을 날렸다. 이 순간 아저씨가 선을 넘었다고 판단한 관객 한명이 분연히 일어났다. "돼지가 만취해서 난리 피우는 거 보셨수? 혼자 어렵게 장사하는 아줌마를 돼지가 괴롭히는 거 보신 적 있수? 아저씨는 돼지만도 못해요!" 거 참, 시원한 달변이었다. 취중에도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이 아저씨 꼬리를 내리고 물러섰다. 그 뒤부터 '돼지' 별명이 붙은 우리 동네 부처 아줌마는 이 관객을 각별히 친절하게 대해 주시더라는 얘기.
과음, 과식하는 동물은 인간 뿐이다. 당뇨 고혈압 같은 병 걸리는 몰지각한 동물은 인간 뿐이다. 일부 애완견이 애꿎게 당뇨에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먹이를 너무 많이 준 사람 탓이지 강아지 잘못이 아니다. 호랑이도 사냥감을 먹다가 배가 차면 남긴다. 하이에나가 뜯어먹어도 그냥 둔다. 돼지도 먹을 만큼만 먹는다. 돼지가 당뇨 걸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동물의 본성과 어긋날 정도로 많이 먹고 운동 안 하는 인간만 걸린다.
경제 한파는 가난한 사람에게 제일 먼저 찾아온다. 가스값, 전기료 인상 소식에 이웃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겨울이 코앞인데 불황 탓에 보육원, 양로원 지원이 거의 없다고 한다. 사람들 마음마저 얼어붙은 것 같아 씁쓸하다.
몇십억, 몇백억을 손에 쥐고도 이웃을 외면한 채 더 많이 가지려 하는 일부 상류층은 진정 돼지만 못하다. 한정된 재화가 극소수에게 집중된다는 건 누군가 덜 갖게 된다는 뜻이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기는커녕, 알량한 밥그릇마저 빼앗는 파렴치다. 혼자 잘 살려다가 남도 못 살게 하고 결국 자기도 파멸할 게 걱정스럽다.
법륜 스님은 한 강연에서 "너무 많이 먹는 사람에게 돼지 같다고 하는 건 옳지 않다. 너무 많이 먹는 돼지를 가리켜 사람 같다고 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백번 지당한 말씀이다. 사람이 돼지보다 나으려면 굶주린 사람을 먹이고, 아픈 사람에게 약을 주고, 외롭고 가난한 사람을 위로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나오는 음식 쓰레기만 모아도 아프리카 사람을 모두 먹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음식물 쓰레기가 전체 쓰레기의 28%라고 한다. 가격으로 따지면 15조원, 즉 정부 예산의 13%에 이르는 액수다. 극빈층 모두를 먹이고도 남을 음식이 버려지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30%라고 한다. 나머지 70%는 수입해야 하는데, 음식 쓰레기를 만든다는 건 달러를 쓰레기로 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수입을 많이 하게 되면 국제 식량가격이 올라가고, 그렇게 되면 가난한 나라들이 더 힘들어진다. 그리고 바로 이웃, 북녘의 아이들이 굶주리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