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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에 민주당 오바마 후보가 당선되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문제가 현실적 문제로 닥쳐왔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한국 국회의 선비준으로 미국의 재협상 요구를 막아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 지도부는 12일로 예정된 공청회 이후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상정을 강행할 뜻을 밝히는 등 강경 드라이브에 나섰다. 물론 여권 수뇌부의 이같은 방침이 그대로 관철될지는 미지수다.

 

여권 내에서도 농촌 지역 의원인 송광호 최고위원 등을 비롯하여 '선비준론'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홍준표 원내대표도 절차적으로는 여야 합의에 의한 의사진행을 말하면서 물러서는 듯하지만, "우리가 먼저 비준하면 한미간 FTA는 국제조약이 되고 미국은 일본, 유럽, 한국 같은 동맹국과 조약을 파기한 전례가 없다"고 강변하는 자세는 변함 없다.

 

선비준론은 일방적 희망

 

그러나 선비준론은 너무나 순진한 일방적 희망이고 수출 대기업의 이익만 고려한 주장일 뿐이다. 오바마는 선거방송 토론회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미간에 자동차 수출입 불균형이 너무 심하므로 불공정한 무역이라고 주장해왔다. 당연히 공약을 지키려 할 것이다.

 

게다가 대선과 함께 치러진 이번 의회 선거로 상하원 모두 민주당 의석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에 재협상은 필연적이라고 봐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먼저 비준해도 미국이 비준을 하지 않고 재협상을 요구해오면 결국 재협상은 불가피할 것이고, 집권여당의 정치적 무능만 드러내게 될 것이다. 

 

이 기회에 한국도 전략적으로 재협상에 임해야 한다. 한미FTA로 피해를 볼 계층과 부문을 자세히 조사해 이것을 재협상에 반영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취약한 자동차산업과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자동차 수입관세율 인하폭과 속도를 낮추고, 한국도 농산물 수입 개방 폭과 속도를 조절해 취약한 농업과 농민을 보호하는 내용을 주고받을 수 있다.

 

근본적으로 변화한 협상여건

 

한미FTA 재협상의 필요성은 사실 오바마의 재협상 요구에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협상당시와 현재의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 데서 찾을 수 있다. 한미FTA 협상이 시작된 2006년과 타결된 2007년에는 세계 식량위기와 금융위기가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부시 미국 행정부와 노무현 정부 모두 농산물 무역까지 포함하여 자유무역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고,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규제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그 후 2007년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식량부족과 식량가격 폭등 등 세계 식량위기 속에서 수출국가가 수출을 규제하거나 금지하는 새로운 사태가 나타났다. 필리핀 등 일부 식량수입 개도국은 식량폭동과 같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조건 변화 속에서 한국과 같은 식량 대량수입 국가가 너무나 낮은 식량자급률을 일정한 수준으로 높일 권리를 주장하고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것은 마땅하다.

 

또한 금융규제 완화는 파생금융상품의 폭발적 증가와 과잉달러의 미국 환류, 주택대출거품을 일으키고 결국 버블이 꺼지면서 전세계적 금융위기와 파급에 따른 실물경제 위기를 초래했다.

 

이렇게 금융규제 완화와 금융세계화의 모순이 확연히 드러났으니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에 대한 규제도 다시 강화해야 할 것이다. 또한 투자와 서비스 부문에서 문제가 되는 투자자-국가소송제와 역진방지조항 등 대표적인 독소조항도 당연히 삭제해야 할 것이다.

 

한미FTA를 당면한 실물 경제위기 대응책의 차원에서 따져보자. 공산품 수출을 늘려서 경제위기를 수습해보자는 입장은 현재 상황에서는 맞지 않다. 미국 자체가 실물경기의 침체를 겪고 있다. 공산품은 소득탄력성이 높아 경기가 침체되면 소비가 상대적으로 크게 줄어든다.

 

그러나 농산물은 기초 생필품이라 가격이 올라도 일정한 수요가 있다. 경기침체기에 한미FTA가 발효되면 공산품의 대미 수출은 크게 위축될 수 있다. 반면 값싼 미국산 농산물에 대한 수요가 늘어 국내 농가는 미국산 농산물 수입 증가로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자유무역 확대는 양극화와 경제불안, 환경파괴의 길

 

한미FTA로 공산품 대미 수출을 늘리기 위해 농업과 서비스산업 개방 확대의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도 세계경제의 재생산 위기 속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수출을 계속해서 늘리는 것은 이제는 어렵고 바른 길도 아니다.

 

한국은행 발표에 의하면 지난 2·4분기 우리나라의 국민총소득(GNI) 대비 수출입 비중은 117.7%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2003년에는 75.8%였다. 수출의 성과도 몇몇 재벌 대기업이 거의 독식하고 중소기업경영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구조로는 양극화와 경제불안 심화의 악순환만 낳게 된다.

 

또한 에너지 위기는 식량위기와 맞물려 있고 생태환경 파괴로 인한 지구온난화 문제도 심각하다. 자유무역은 자국의 자원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싼 것이면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 확보하는 논리를 내재적으로 품고 있어서 전세계 자원을 무한정 파괴하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따라서 양극화, 경제 불안, 지구환경 파괴를 초래하는 자유무역을 더욱 밀고 나가는 한·미FTA를 원점으로 되돌려야 한다. 대신 내수를 중시하여 중소기업 보호와 비정규직 보호를 통해 국내 수요와 민간소비의 비중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한미FTA 재협상에서 미국이 한국의 요구를 완강하게 거부한다면 한국은 개도국의 입장에서 FTA보다 유리한 WTO 다자간협상을 통해 우리의 요구를 관철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WTO 도하라운드의 타결을 막는 핵심적 요소는 미국의 농산물 수출 확대 의지이다. 중국, 인도, 브라질 등 개도국과 연대하여 이를 극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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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장상환 교수는 경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태그:#한미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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