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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은 이만큼의 빼빼로를 가져가더니 비슷한 만큼의 빼빼로를 다시 가져왔다. 며칠간 우리집 아이들 간식은 빼빼로다.
아이들은 이만큼의 빼빼로를 가져가더니 비슷한 만큼의 빼빼로를 다시 가져왔다. 며칠간 우리집 아이들 간식은 빼빼로다. ⓒ 박미경

발렌타인데이니, 화이트데이니, 삼겹살데이니, 사과데이니, 오리데이니 하는 수많은 날이 있다.

 

발렌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는 사랑하는 연인들이 서로 초콜릿을 주고받는 날이니 제쳐두고 삼겹살데이나 사과데이, 오리데이는 굳이 사랑하는 연인이 아니더라도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날이어서 꼭은 아니지만 한번씩 생각이나면 챙기곤 한다.

 

하지만 11월 11일 빼빼로데이는 챙기자니 그렇고 그냥 지나치자니 또 그런 날이다. 좋아하는 이들이 서로 빼빼로처럼 날씬해지자며 빼빼로를 주고 받는 날이라는데 제과회사의 상술에 넘어가는듯해 챙기면서도 웬지 화가 난다.

 

주고 받는 것이 제과회사에서 만들어낸 ‘빼빼로’라는 과자에 국한되다보니 서로 주고받는 것들이 모두 같다. 하긴 언제부터인가 누드빼빼로와 아몬드빼빼로가 나오면서 조금은 다양해졌다고 볼 수도 있긴 하겠다.

 

서로서로 주고받다보니 빼빼로데이가 끝나면 집안은 온통 빼빼로 천지다. 한동안은 간식으로 빼빼로만 입에 물고 있어야 한다. 그럴 때마다 제과회사의 상술에 놀아나는 것 같은 불쾌한 감을 영 떨칠 수가 없다.

 

평소 우리집은 빼빼로를 즐겨 먹지 않는다. 어쩌다 간식거리로 하나두개 정도(애들이 셋이라 한아이가 하나씩 집어도 세 개가 된다) 살 뿐. 그런데 빼빼로데이랍시고 수십개의 빼빼로를 한번에 살라치면 기분이 묘하다. 이걸 꼭 챙겨야하나, 매출을 올리기 위해 제과회사에서 만든 기념일을 챙기자고 빼빼로를 사기 위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내 꼴이 우습기도 하다.

 

물가가 뛰다보니 예전에 200원하던 빼빼로는 700원, 누드빼빼로나 아몬드빼빼로는 한 개에 천원정도 한다. 대형마트 등에서 할인해 판다고 해도 보통빼빼로가 한 개에 500원, 누드빼빼로와 아몬드빼빼로는 700원에서 800원에 판매된다.

 

하지만 아이들의 손은 누드빼빼로나 아몬드빼빼로로 향한다. 보통빼빼로보다 이런저런 재료를 가미해 맛도 더 있지만 상대적으로 포장이 허술한 보통빼빼로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아서다. 빼빼로는 그저 다같은 빼빼로라며 대충 싼걸로 사라는 엄마의 아우성과 잔소리가 있어야 보통빼빼로에 손이 간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혜준이와 강혁이의 경우 한 학급 학생들의 수가 35~36명 정도다. 아이들은 모두 친구라며 한아이에게 하나씩 나눠주길 바란다. 500원짜리를 쥐어준다고 해도 한 아이당 족히 2만원 정도는 투자해야 한다.

 

문방구 등에서 파는 길쭉한 모양의 200원, 300원 하는 유사빼빼로도 있긴 하지만 굵은 밀가루방망이에 초콜릿을 묻힌 정도다 보니 맛이 없어 아이들이 받아도 잘 먹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의 경우엔 그렇다는 얘기다.

 

내 아이들도 맛없다고 먹지 않는 유사빼빼로를 다른 아이들 먹으라고 쥐어줄 수는 없어 결국 제과회사에서 만든 빼빼로를 사게 된다. 사면서 참 억울하다.

 

꼭 빼빼로를 줘야하는 아이들에게만 빼빼로를 주도록 하고 몇 개가 필요한지 물었다. 혜준이는 22개, 강혁이는 15개, 7살 남혁이는 3개가 필요하다고 한다. 3만원 가까이 된다. 한숨이 푹푹 나오지만 체념하고 빼빼로를 사들고 나오면서도 가슴 한편이 쓰리다.

 

그런데 중고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의 손에 들려진 빼빼로들을 보니 한숨이 더 나온다. 바구니에 곱게 포장된 빼빼로를 봉지 가득 양손에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아이들, 선물포장된 빼빼로의 경우 최하단위가 1만원선이니 아마도 몇만원어치는 족히 될 듯 싶었다. 꼭 저래야 하나, 제과회사가 만든 기념일에.

 

애들이 크면 빼빼로를 사는데 들어가는 돈의 단위도 커지는 것이 아닌가 걱정도 된다.

 

며칠전 큰 아이는 옆반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빼빼로 대신 가래떡을 가져오라고 했다며 신기한 듯 말했다. 잘됐다 싶어 빼빼로를 주고받기 보다는 생산하는데 드는 원가에도 못미친다는 쌀값 때문에 힘들어하는 농민들을 위해 쌀로 만든 가래떡을 나누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11월 11일이 농민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만들어진 농업인의 날이라는 말도 해 줬다. 지체장애인들이 세상을 당당하고 힘차게 일어서자는 뜻의 '지체장애인의 날‘이라는 말도 해 줬다. 하지만 아이 반응이 신통치 않다.

 

아이 왈. 다른 아이들이 다 빼빼로를 주고 받는데 어떻게 혼자 가래떡을 가져가느냐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학교 학생들 전체가 빼빼로대신 가래떡을 나눠 먹는다면 자기도 빼빼로 대신 가래떡을 가져갈 수는 있다고 말한다.

 

하긴 빼빼로 대신 가래떡을 가져간다고 해도 가래떡을 마련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게다. 동네 떡집들이 때맞춰 가래떡을 필요로 하는 모든 이들이 살 수 있을만큼 만들어놓고 팔지도 의문이다. 며칠이 지나면 팔 수 없을테니 떡집에서 기피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생각해 봤다. 학교 차원에서 빼빼로데이라는 제과회사의 상술로 만들어진 기념일을 학생들이 수만원의 돈을 써가면서 챙기도록 방관할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나서서 농업인의 날과 지체장애인의 날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도록 교육하면 어떨까 하고.

 

학교에서 급식으로 쌀로 만든 떡국을 주고 떡을 해서 간식으로 제공하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 보육시설에서도 쌀을 이용한 먹거리를 먹도록 하면서 농업인의 날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면 어떨까?

 

그리고 지체장애인들을 생각하며 그들도 우리사회의 한 일원이고 당당한 사회의 주인임을, 비장애인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조금은 불편을 겪고 있는 친구일뿐이고 원해서 그렇게 된것도 아니고, 비장애인들도 불의의 사고로 지체장애인이 잠정적인 지체장애인임을, 그렇기에 지체장애인을 껄끄러운 시각으로 바라봐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려주면 어떨까?

 

11일, 학교와 어린이집을 다녀온 아이들의 손에는 내가 아이들 손에 들려줬던 만큼의 빼빼로가 쥐어져 있었다. 결국 나는 빼빼로데이에 내 아이들이 먹을 빼빼로를 산 셈이다.

 

물론 작은 이벤트이고 아이들에게는 추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꼭 그래야 할까? 지난해에도 내년에는 절대로 빼빼로데이를 챙겨주지 않겠다고 했지만 올해도 역시 뻬빼로데이를 챙겨주고 말았다. 어쩌면 내년에도 나는 아이들 손에 빼빼로를 들려 보낼지 모르겠다. 웬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렇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sbs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빼빼로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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